▲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 스틸
㈜바이포엠스튜디오
왜 하필 하얀차일까. 도로 위의 하얀차는 검은색 차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고율이 낮지만 설원 위 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제든지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위증, 도피, 익명을 뜻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순수한 악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리다.
도경은 초반부터 언니라고 불렸던 미지의 여성과 한뜻을 품었다. 작가적 상상력과 개연성을 발휘해 철저하게 설계된 완벽한 계획을 벌였다.멀쩡한 사람의 말이라고 덮어놓고 믿지 말고, 멀쩡하지 않다고 해서 흘려듣지 말라는 말의 경중을 논한다. 결말을 알게 된 모두가 가해자와 피해자, 범죄자를 구분할 수 없어 모호하다. 이를 동력 삼아 끝까지 밀어붙이는 에너지가 발휘된다. 차마 이들을 쉽게 비난하거나 옹호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탄탄한 각본과 연기력으로 응집되어 있다.
영화는 다사다난한 가족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가족이 어떻게 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 뉴스를 접하다 보면 '가족이니까 더 살벌하지'라는 말이 수긍된다. 가족이란 이유로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난다는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기구한 사연이 모두 밝혀질 때면 사회적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된다.
집요한 심리 묘사에 중점 두며 기억의 불완전함, 진실의 모호함을 좇아간다. 정려원과 이정은의 밀도 높은 연기가 러닝타임을 채운다. 정려원은 최근까지 드라마를 통해 똑 부러지고 단단한 전문직을 맡아 왔다. 7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에서는 처연한 도경을 통해 불안정한 내면을 섬세한 표정으로 담아냈다. 억눌린 감정, 불안정한 내면, 마침내 맞게 된 해방감까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수시로 말이 바뀌면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선회하는 태도는 의심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도경이 뜨겁게 타오르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꽃이라면 현주는 차갑게 식어버린 장작 같다.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얼굴로 냉철하게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자,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이 트라우마가 된 참혹한 고통을 담담한 얼굴로 그려낸다. 실제 물 공포증이 있는 이정은은 현주를 해석하기 위해 욕조 장면을 감내하는 수고로움을 택하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순경에 이어 탐정 같은 의심과 추리를 펼친다. 실제 이정은은 예전 TV 시리즈 <제시카의 추리극장>을 좋아해 탐정물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단막극의 새로운 진화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 스틸컷차얀 차를 탄 여자
<하얀 차를 탄 여자>로 데뷔한 고혜진 감독은 JTBC 드라마 <검사내전>, <로스쿨>,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마이 유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조연출 및 공동 연출로 이름을 알렸다. 드라마 현장의 내공을 바탕으로 서자연 작가와 합심하여 <하얀 차를 탄 여자>가 시작됐다. 네 여성이 등장하고 감독, 작가도 여성인 트리플 F 등급을 달성했으며 14회차로 완성한 고효율의 팀워크도 자랑한다.
고혜진 감독이 밤새워 만든 편집 스킬과 각고의 노력이 빛났다.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 코리안 판타스틱 배우상 2관왕에 올랐고 국제 영화제의 수상 소식까지 더하며 영화적 순간을 모색했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개 후 3년 반 만에 개봉하게 되며 여러모로 경계선에 선 영화다.
2022년, 한창 코로나로 영화·드라마 현장이 폐쇄적일 때 단막극의 형태로 14일 만에 만들어졌다. 이후 고혜진 감독은 1,2부를 합친 형태를 편집해 그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했다.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던 때 숏폼 콘텐츠의 극장판 확산을 지켜보던 시기라 가능했던 선택이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살아날 것 같던 극장 사정은 회복되지 못했다. 영화는 3년 반이 지나 올해 극장 개봉을 확정했다. 러닝타임도 125분에서 108분으로 짧아졌다. 영화 산업의 전반적인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고무적인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콘텐츠라 불리는 범용적인 영상의 다양한 시도 중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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