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얀 차를 탄 여자>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드라마 <검사내전>의 인연이 있던 정려원과 <눈이 부시게>로 만난 이정은이 한마음으로 고혜진 감독을 돕겠다고 나선 결과다. 정려원은 영화제 버전과 개봉 버전을 본 소감을 밝히며 들뜬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샌디에고 영화제 버전은 1, 2부를 이어 붙인 느낌이었다. 영화로 편집된 개봉 버전을 보니 달랐다. 언론시사회 때 다시 보니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마법 같았다. 날것의 드라마에서 영화가 되어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는 감정이 고조되는 지점, 호흡이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는 (편집이 잘 돼서) 완만하고 잔잔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어 스트레스가 덜했을 것 같다. 조금은 안도했다. 이번 기회에 스릴러물의 장르성을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정려원은 조연출이었던 고혜진 감독과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말에 내적 친밀감이 들었고, 현장의 급변하는 상황을 매끄럽게 다듬는 수완이 좋은 친구라고 자랑했다.
"작은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도 애정이 컸다. 그 배우가 잘 못하니까 다가가서 귓속말을 하더라. 이후 신기하게 연기가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말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탁월하게 다룰 줄 아는 친구다. 현장마다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인복을 타고난 사람이라 생각했다"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어질 줄 알았다면 다시 생각했을 거라고 답했다. "무조건 출연하겠다고 말했지만 글이 좋아야 한다는 명확한 조건을 걸었다. (지나가는 말로) 미드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 같은 건조한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아이디어가 좋다고 독려해 줬다. 그리고 보여준 글이 <하얀 차를 탄 여자>였다. 글을 읽는데 내가 출연하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고생길이 열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회차도 짧고 정은 선배님이 합류해 주시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정은 선배님은 찐 어른이시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모두 한뜻으로 14회차 만에 완성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영화와 드라마를 병행해 온 그는 현장에 임하는 치열함은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독려하면서 재미있게 찍었고 다 불사르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고생한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는 뿌듯함도 있다. 2월이라 정말 추웠는데 스산함까지도 잘 구현되었더라. <하얀 차를 탄 여자>는 고효율의 팀워크가 잘 맞았다. 한마디로 엉덩이가 가벼운 현장이었다. 그게 작품에도 현장의 기운이 담겨 있다. 화목의 상징이었다"고 곱씹었다.
친분만으로 작품이 잘 되는 건 아니라면서 감독으로서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감독님은 철저하게 계획적인 사람이다. 첫 촬영이 감정 소모가 많이 되는 장면이었다. 신인 감독이고 저는 선배니까 눈치 보다가 말 못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리더십이 보였다. 가장 어려운 장면을 먼저 찍으니까 오히려 다른 장면은 수월했다. 그냥 천재 같았다"며 "기자간담회 때 예상 질문을 뽑아 와서는 달달 외우고 있었다(웃음). 뭐든 자기 의도에서 벗어나서 설명되는 걸 반기지 않는 성격이다. 준비도 많이 하는 친구다"라고 칭찬했다.
캐스팅 복으로 완성한 도경
7년 만에 영화로 복귀한 정려원은 최근까지 똑 부러지고 단단한 전문직을 연기했다. <김씨 표류기>의 목격자인 히키코모리 김씨가 떠오르기도 한데, 소외된 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취약한 여성으로 분했다. 특히 눈물 연기를 선보일 때면 묘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는 "사실 눈물이 많은 편이라 상황에만 몰입해서 과함을 덜어 내고자 했다. 억눌려 있는 감정이 조금씩 피어나는 해방감을 표현하려고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묘한 표정을 짓기 위해서도 노력했는데 언니로 나온 장진희씨가 너무 무서워서 몰입에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실제로는 살가운 친구인데 액션 소리만 나면 언제든지 돌변하는 매력적인 친구다. 캐스팅 면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도경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지만 조현병 병력으로 증언의 신빙성이 약해진다. 도경의 말이 수시로 바뀌면서 관객의 의심도 더해간다.
"한 공간에서 여러 상황을 반복해야 했다. 여러 캐릭터를 오가야 하니 세팅도 오차 없이 한 번에 진행했다. 보여주려던 연기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환자라고 봐주지 않고 그저 오랫동안 억눌린 사람의 시선을 보여주려 했다. 절대선과 절대악도 없다는 쟁점을 중심에 두고 최대한 치우치지 않고 어느 쪽도 정당화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누구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저 인간의 시선과 선택에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내외적인 성장과 동료애가 동시에 이루어졌던 작품이라 이야기했다. 스릴러 장르는 처음이라 레퍼런스가 없어 걱정했지만 새로운 도전에 만족했다고 전했다.
"전문직을 해보면 다음에 비슷한 역을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다. 레퍼런스가 없으니까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커리어가 신인 감독 손에 달린 불안감도 생겼지만 단순 내가 재미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은연중에 내려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배우로서 연기 자체만 신경 썼지 화면에 제가 어떻게 나오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려놔도 괜찮다는 용기를 준 작품이다."
한편,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는 10월 29일 개봉해 절찬상영중이다.
▲정려원 배우㈜바이포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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