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다" 희소병 극복하고 전설된 나달의 고백

[리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퀴즈 라파엘나달
유퀴즈라파엘나달TVN

"경쟁이 치열했던 시대, 테니스의 황금기에 페더러, 조코비치, 머레이 등 많은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했다. 저는 그 시기에 아마도 최고의 클레이 코트 선수였고, 조코비치는 하드 코트에서, 페더러는 잔디 코트에서 최고였다. 그런데 결국은 모두가 4대 메이저대회에서 그랜드 슬램을 이뤘다. 우리들의 경쟁은 정말로 힘들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아름다웠다. 저는 우리의 라이벌 관계가 건강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다."

10월 29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테니스 전설 라파엘 나달이 출연했다.

테니스계에서는 '신은 나달을 위하여 흙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클레이 코트의 제왕으로 불리우는 '흙신' 라파엘 나달이 12년 만에 방한했다. 나달은 지난 5월 은퇴식을 가지고 23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나달을 위하여 특별히 테니스 코트 모양으로 준비된 스튜디오를 찾은 나달은 "이 멋진 나라를 방문한 지 오래됐는데, 이런 대단한 곳에 함께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설렌다. 멋진 준비를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희소병 극복하고 최고의 선수가 된 나달

유퀴즈 라파엘나달
유퀴즈라파엘나달TVN

"은퇴 이후의 삶은 아주 만족스럽다. 정말 길고 성공적인 여정이었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제 몸이 '이제 할 만큼 했어'라고 말하는 순간이 온 거다."

나달은 3세 때 처음으로 테니스를 시작했다. 나달의 가문은 스포츠 엘리트 집안으로 유명하다. 큰삼촌 토니 나달은 테니스 코치였고, 막내삼촌 미겔 앙헬 나달은 축구선수로 스페인 국가대표까지 지냈다. 나달은 9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테니스 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고, 불과 15세에 처음 프로에 데뷔했다. 당시를 돌아보며 나달은 '제 삶의 여정이 시작된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어릴 때의 모든 일들이 빠르게 진행됐다. 열다섯에 프로가 되는 건 물론 큰 도전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할 신체가 100%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는 어릴 때 시작한 게 좋았다. 성공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나달은 프로데뷔 이후 불과 3년 만인 2004년, 17세 나이에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 로저 페더러(당시 23세)를 제압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불과 몇 년 전까지 TV로만 지켜보며 우러러봤던 대선배이자 세계랭킹 1위를 상대로, 아직 유망주에 불과하던 청소년이 승리한 대이변이었다.

"페더러는 우상이었고 제가 꿈꾸던 모습이었다. 그와 처음 경기했을 때 조금은 두려웠다. 근데 저는 잃을 게 없었다. 세계랭킹 1위인 최고의 선수와 겨룬다는 동기부여와 어린 소년의 에너지를 가지고 코트에 나섰다. 제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처음으로 거둔 거대한 승리였다."

하지만 초특급 유망주로 승승장구하던 나달에게 뜻밖의 시련이 찾아온다.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왼쪽 발뼈에 실금이 가면서 메이저대회에 한동안 참가할 수 없게 됐고, 나달의 세계랭킹은 35계단이나 폭락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시기에 한국 기업과의 오랜 인연이 시작됐다. 부상도 입고 랭킹도 떨어져 있던 시기에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나달에게 먼저 후원사를 제안하며 손을 내민 것이 바로 기아(KIA)였다. 나달이 부상을 털고 세계 최정상 선수로 등극한 이후에도 나달과 기아의 인연은 무려 21년째 이어지고 있다. 나달은 우승을 차지할 때마다 항상 기아를 언급하는 것을 빼먹지 않으며 '의리'를 과시했다.

"진심을 다해 말씀드리는데 기아와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열일곱 살 때부터 함께 해왔다. 심지어 스페인 기업도 아니고 한국 기업이지 않나. 지금까지 받은 모든 지지는 놀라울 따름이다. 부상도 겪고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사랑과 지지는 굳건했다. 저에게는 가족과도 같고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21년을 함께했고 앞으로 더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05년 19세의 나달은 부상을 털고 돌아와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이뤄내며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해에만 나달은 무려 11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나달은 이 시기에 또다시 왼쪽 발에 문제가 발생했다. 병원 검진 결과 나달의 병명은 뮬러 와이즈 증후군(족부주상골이 붕괴되는 퇴행성 희귀질환)으로 밝혀졌다. 나달의 희소병은 심각한 통증과 기형을 일으키며 선수생활 내내 그를 괴롭혔다. 나달은 "의사는 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세의 나이에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순간이었다"며 절망적이던 시기를 회상했다.

하지만 나달은 포기하지 않았다. 특수제작된 밑창과 진통제로 버텨내며 훈련을 계속한 결과, 나달은 희소병을 이겨내고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에서 무려 22회나 우승을 차지하며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흙신' 나달 그리고 '코트위의 신사'

특히 한국팬들 사이에서 나달은 '흙신'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나달이 역대 최다인 14회나 우승을 차지하며 강세를 보였던 프랑스 롤랑 가오스 대회의 경기장이 클레이코트(흙)으로 되어 있다는데서 유래했다. 경쟁자였던 페더러는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을 상대할 때마다 "나달의 뒷마당에 들어온 것 같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나달은 "클레이 코트가 제 플레이스타일에 잘 맞았다. 처음부터 이기고 또 이겨나면서 자신감이 많이 쌓였다. 상대방들은 거기에서는 저를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밝혔다.

한편으로 나달은 동시기에 함께 세계 테니스를 지배하며 경쟁했던 레전드들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도 드러냈다. 나달을 비롯하여 페더러, 조코비치는 테니스계 '빅3'로 불리우며 20년 넘게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나달은 세 선수가 각자 강점이 달랐지만 결국은 모두가 4대 메이저대회를 석권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경쟁은 힘들었지만 서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라이벌 관계였다"고 회상했다.

나달에게는 항상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수식어다.

"물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이루려 할 때 스트레스 없이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순 없다. 저희는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우리는 테니스를 향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결국 꿈을 이뤄낸 거다."

나달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의외로 단순하게,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스페인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인 마요르카 출신인 나달은 "유명해졌어도 집에 돌아오면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으로 나달은 '코트위의 신사'로도 유명하다. 강한 승부욕 때문에 종종 감정을 분출하거나 소위 '라켓 스매싱'을 하는 선수들도 많다. 나달 역시 경기장 안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승부욕으로 유명하지만, 감정적인 돌출행동이나 경기매너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나달은 경기에서 자신에게 패배하고 눈물을 흘리는 페더러를 위하여 자신의 세리머니 시간을 줄여가면서 상대에게 소감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주는가 하면, 실수로 자신의 공에 맞은 볼키즈 소녀를 세심하게 챙기고 격려하는 등 수많은 미담으로 유명하다.

"저도 가끔 라켓을 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건 자기통제의 문제다. 제가 어렸을 때 라켓을 부쉈다면, 아버지가 바로 코트 밖으로 내쫓았을 거다(웃음). 아버지와 삼촌으로부터 항상 감정을 통제하도록 교육받았다. 연습할 때나 일상적으로 좌절감을 통제하다보면 실제 경기에서는 훨씬 쉽다."

나달은 가장 기억에 남는 명승부로 2008년 생애 첫 윔블던 우승을 차지했던 페더러와의 대결, 부상을 극복하고 극적으로 참가하여 정상에 올랐던 2022년 호주 오픈 결승전을 꼽았다. 그리고 이처럼 선수생활 내내 나달의 영원한 라이벌로 꼽히던 로저 페더러는 2022년 9월 먼저 은퇴했다. 당시 페더러의 은퇴식에 참여했던 나달은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페더러는 제 인생의 중요한 일부였다. 커리어 초반에 만난 가장 큰 라이벌이었으니까. 페더러가 은퇴하니까 제 일부가 그와 함께 떠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감동적인 경기를 정말 많이 치렀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다시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까. 페더러의 은퇴식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그 자리에 함께해서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나달에게도 은퇴의 순간이 찾아왔다. 2025년 5월 25일, 나달이 무려 14회 우승을 차지한 롤랑 가로스에서 진행된 은퇴식에는, 페더러, 조코비치, 머레이 등 동시대를 풍미했던 '빅4' 선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감동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특히 페더러는 직접 편지를 작성하여 "라파, 너는 내가 테니스를 더욱 즐길 수 있게 해줬어. 네 오랜 친구가 언제나 응원하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해. 너의 팬 로저 페더러가"라고 진심어린 애정을 담은 응원을 전하기도 했다.

"저는 항상 그날(은퇴)이 올 거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그때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내가 테니스에 모든 것을 바쳤는지. 때로는 잘했고 때로는 못했고 어떨 땐 최악이었지만, 저는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노력했고 그게 스스로 자랑스럽다. 잊을 수 없는 날이었고 프로 테니스 선수로서 완벽한 종착지였다."

은퇴식 날, 롤랑 가로스의 코트 한쪽에는 나달의 발자국과 이름이 영원히 새겨지게 됐다. 나달은 당시를 돌아보며 자신이 꿈꿔온 테니스 선수로서의 가장 완벽한 피날레였다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가끔 아들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것 외에는 아무 걱정이 없다고 웃으며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만족감도 드러냈다. 자신의 분야에서 후회없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증명해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와 품격이었다.

"타이틀과 숫자들, 사람들은 그걸 기억하겠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기억되고 싶어요. 마요르카의 작은 마을에서 온 좋은 사람. 꿈을 쫓았고 그보다 훨씬 많이 이룬 사람이라고요." (라파엘 나달, 은퇴식에서)
유퀴즈 라파엘나달 로저페더러 테니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