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 라이드> 스틸컷
㈜쇼박스
03.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태국으로 떠나기 직전의 서사에서 주목해 봐야 할 지점들이 있다. 예정된 이민을 떠나게 된 연민을 제외한 나머지 세 친구가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앞서 설명했던 영화의 중심축, 현실적인 측면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불교 대학을 나온 뒤 사찰 한 구석에서 타투이스트 일을 하는 금복의 코미디적 서사나 수능 만점으로 서울대에 들어가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는 태정의 바쁜 현실에도 이견을 둘 곳은 없어 보인다. 도진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서로 다른 모습이기는 하나 각자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두 인물과 달리, 도진은 병원에 입원한 채로 정신적인 문제까지 보인다. 초반부의 설정에서 공부는 잘 못했지만 농구부 주장까지 맡고 DJ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인물의 10년 후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엔 쉽지 않은 상태다.
또 하나가 더 있다. 네 사람이 함께 떠나자고 약속했던 여행은 너무나 손쉽게 태정과 도진, 금복 세 사람의 여행에 연민의 사진이 프린팅된 대형 베개 하나의 여행으로 둔갑하고 만다. 서사 내부의 시대성, 현실성으로 보나, 영화 자체의 기술적인 문제로 보나, 호주에 있다는 이유로 아무런 연락 한번, 상의 한번 나누지 않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서사의 현실성으로는 화상 통화나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연락이 가능한 시대 배경이고, 그런 장면을 스크린 위에 이미지적으로 구현하는 일 역시 요즘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다.
04.
옥심이라는 인물이 세 남성의 여행에 합류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 중심의 우정 서사에 여성 캐릭터의 투입은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쪽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더 크다. 감정적 억압이나 일방적인 소비와 같은 방식을 통해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옥심은 단순히 유머를 이끌어내기 위해 소비되는 형식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들 사이에 깔려 있던 진심을 드러내게 만드는 촉매제로,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이를 위해 자신을 내던질 줄 아는 진취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서사의 핵심이 되는 스포일러이기에 직접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과거 특정 사건을 이유로 서로에게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맴도는 남성 인물들 사이에서 옥심은 그렇게 균형 속에 감춰진 위태로움과 틈을 흔들고 드러내는 역할을 맡는다. 일방적인 짝사랑과 같은 전형적인 여성상도 함께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렇게라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유일한 여성 캐릭터가 되었을 실비아(강지영 분)까지 오히려 더 소비적인 인물로만 그려지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 <퍼스트 라이드> 스틸컷㈜쇼박스
05.
"너 이 인형이 쪽팔려? 나도 쪽팔리고?"
태국으로 향한 일행이 주된 목적이었던 송크란 뮤직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전까지 몇 가지 에피소드가 제시된다. 어떤 부분은 극의 장르적 요소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고, 또 다른 장면은 마지막까지 감춰야 할 서사를 떠오르지 못하도록 누르기 위해 배치된다. 그중에서, 연민의 모습을 한 대형 베개 때문에 태정의 직업과 관련된 부분에 문제가 생기며 태정과 도진이 팽팽하게 맞서는 우중(雨中) 시퀀스는 이 글의 처음에서 이야기했던 영화의 중심축과 연결되며 관객들에게 중요한 물음 하나를 던진다.
어른이 된 우리가 지금, 우정이라는 단어가 가진 천진난만함과 격의 없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현실의 문제를 변명 삼으며 서로에게 당시와 같은 순수한 감정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만약 그것이 사회적 지위와 체면, 어른의 탈이 가진 무게 때문이라면 오랜 시간 함께 시간을 나누며 쌓아온 관계는 그보다 가볍고 덜 중요한 것인가 하는 물음. 극 중 서사로 보자면, 어린 시절부터 모든 면에 뛰어났던 태정과 그러지 못했던 다른 친구들 사이의 묘한 거리감이 '언젠가 하자'는 말 아래에 쌓인 미묘한 감정들을 터뜨리고 만 것 같다. 더 결정적인 이유 또한 후반부에서 직접 제시된다.
06.
"세상에서 나만 혼자 바보인 줄 알았는데, 너희들도 바보라서 고맙다."
아쉬운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영화의 모든 설정과 선택이 오롯이 납득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너무 쉽게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 <퍼스트 라이드>의 의의가 웃음으로만 소비될 법했던 유머를 관객들이 자신의 세계로 끌어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작품의 서사가 'Seize the moment', 혹은 'Carpe diem'과 같은 (미루지 말고) '현재를 즐기자'와 같은 메시지에 가 닿는 순간에, 영화는 관객에 의한 감정적 환기의 대상이 되며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형성한다.
남대중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 바 있다. 그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익숙한 공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그 불편함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영화적 선택마다 엿보인다. 그렇게 장면마다 드리운 웃음과 감동을 따르다 보면, 어느샌가 함께 추억을 쌓아온 오랜 친구, 더 나아가 그동안 우리가 만나온 수많은 관계의 무게에 대해 가만히 되짚어보게 될 것이다. <퍼스트 라이드>는 그런 힘을 가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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