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37년 겨울, 중국 난징은 문자 그대로 '지옥'이었다. 일본군의 중화민국 침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은 난징대학살이라는 인류사 최악의 비극으로 번져간다. 영화 <난징사진관>은 그 피비린내 나는 현장 한복판에서 시작된다.
젊은 우편배달부 수류창은 평소처럼 필름을 배달하던 중, 갑작스러운 일본군의 점령으로 피신하지 못한다. 하필 제복 차림이었던 그는 중국군 잔당으로 오해받아 총살 위기에 처하지만, 사진병 히데오의 눈에 띄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대신 그는 히데오의 명령에 따라 필름을 인화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문제는 그가 사진 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러나 지하에 숨어 있던 사진관 가족들의 도움으로 인화에 성공하고, 그 필름 속에 담긴 '진실'을 보게 된다. 일본군이 저지른 잔혹한 학살의 흔적이었다.
히데오는 그 끔찍한 장면들을 '전승의 증거'로 세상에 알리려 하고, 그 옆에는 일본군에 협력하는 통역자와 탈출증을 얻기 위해 부역하는 여배우가 얽혀 있다. 그들의 욕망과 공포, 생존과 배신이 교차하는 사진관은 곧 전장의 축소판이 된다. <난징사진관>은 거대한 역사적 비극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은 인간들의 이야기다.
기록이 된 생존, 생존이 된 기록
▲영화 <난징사진관>의 한 장면.
콘텐츠존
<난징사진관>은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니다. 피와 총탄이 오가는 전장의 스펙터클 대신 '사진'이라는 기록의 도구를 중심에 둔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한 폭력의 진실을 '기록하는 자'와 '기록당하는 자'의 시선으로 포착한다. 수류창은 처음엔 그저 살아남기 위해 필름을 인화한다. 그러나 점차 자신이 인화하고 있는 사진이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증명할 증거라는 걸 깨닫는다. 생존의 기술이 실존의 고뇌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은, 바로 이 '변화의 궤적'을 탁월하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수류창의 두 손은 처음엔 공포에 떨며 필름을 인화하고, 나중엔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떤다. 그가 인화하는 건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책임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언제나 '진실'을 담는 동시에 '조작'을 가능케 하는 도구였다. 히데오가 사진을 통해 승리를 선전하려 하는 것은, 전쟁이 얼마나 쉽게 진실을 왜곡하는지 보여준다. 반면 수류창은 그 왜곡의 틈에서 진실을 꺼내려 한다. 두 인물의 대비는 영화의 핵심 축이다.
그 사이에서 통역자와 여배우, 사진관 가족 등의 인물들이 각자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전쟁은 누구도 완벽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는 분명히 말한다. 인간이라면, 끝내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말이다.
거대한 역사 속 작은 인간들의 선택
▲영화 <난징사진관>의 한 장면.콘텐츠존
<난징사진관>이 중국에서 대흥행한 건 단순히 반일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난징대학살'이라는 소재가 지닌 정서적 자극은 크다. 일본군의 만행은 보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고, 인간의 탈을 쓴 괴물들이 벌이는 행위는 관객의 분노를 자극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분노에 머물지 않는다. 감정의 폭발 이후 남는 건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이다.
영화는 '작은 이야기들'의 집합이다. 사진관의 하루, 인화실의 어둠, 지하실의 숨죽임. 그러나 그 조각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 전쟁은 언제나 작은 인간들의 선택과 생존으로 이뤄진다. 수류창이 인화한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죽은 자들의 목소리다.
히데오 역시 단순한 악인이 아니다. 그는 승리를 증명하려는 집착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간다. 한편 통역자는 끝내 어느 편에도 설 수 없고, 여배우는 도망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팔지만 죄책감에 무너진다. 이들의 서사는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당신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오래 붙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난징사진관>은 단순히 일본군의 악행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묻는 철저히 윤리적 영화인 것이다. 촬영, 편집, 음악 모두 절제되어 있지만 묵직한 감정을 쌓아 올린다. 잿빛 톤으로 가득한 화면은 피와 연기의 냄새를 전해주듯 생생하고, 인화실의 붉은 빛은 죄와 기억이 교차하는 심리적 무대를 완성한다.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
영화의 마지막은 잔혹한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으로 끝난다.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수류창은 결국 사진으로 진실을 기록하고 자기 희생으로 세상에 알리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생존을 위태롭게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킨다. <난징사진관>은 그 과정을 잔혹하면서도 고요하게 따라간다.
결국 이 영화는 전쟁의 참상보다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역사 속 이름 없는 한 사람의 두려움, 망설임, 결단이 얼마나 거대한 의미를 지니는지 일깨운다. 피와 공포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이길 원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남은 인간다움의 흔적을, 필름 위에 조용히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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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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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 진실 담긴 필름, 일본군의 잔인함 목격한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