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K-엔터, 실상은 '관리감독 사각지대'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 연속기고 ②] 지속가능한 K-POP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조건

커져만 가는 K-POP 산업 속에서 외면받는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에 대해 4차례에 걸친 연속기고입니다. 두 번째 글은 노종언 변호사(법무법인 존재)의 글입니다.[기자말]

 2025년 10월 18일, 영국 런던에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조직된 K-pop 댄스 모임에 사람들이 모였다.
2025년 10월 18일, 영국 런던에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조직된 K-pop 댄스 모임에 사람들이 모였다.REUTERS/연합뉴스

이제 K-엔터테인먼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법조인으로서 마주하는 분쟁의 현장은 이러한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끊이지 않는 불공정 계약과 정산 갈등은 이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일부의 일탈이 아닌, 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의 '관리감독 사각지대'가 낳은 시스템의 실패라고 봐야만 한다. 성공의 이면에 가려진 그림자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구조적 문제 ①] 유명무실한 표준계약서

분쟁의 시작은 대부분 불공정한 계약이다. 2009년 도입된 '표준전속계약서'는 법적 강제성이 없는 '권고' 사항에 그쳐 실효성이 부족한 실정이다. 기획사들은 표면적으로 표준계약서를 따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속합의서'를 통해 과도한 위약벌이나 사생활 침해와 같은 독소 조항을 포함시키는 관행이 여전하다.

특히 불투명한 '선공제 후정산' 방식은 고질적인 문제이다. 소속사가 막대한 투자금을 먼저 회수하는 이 구조는 사업적 리스크를 아티스트에게 전가하고 있다. 아티스트는 수억 원대의 비용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검증할 방법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채, 리스크를 떠안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현실이다. 이는 신뢰 기반의 파트너십이 아닌, 정보의 비대칭을 이용한 착취 구조에 가깝다.

[구조적 문제 ②] 보호받지 못하는 구성원들

K-POP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는 사람을 '상품'으로 여기는 시선에 있다. 청소년 아티스트들은 보호하는 법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학습권 보장은 구호에 그치고, 정신 건강을 돌볼 체계적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필자가 담당하여 사건을 수행하였던 청소년 아티스트들의 경우 역시 과도한 통제와 정서적 압박으로 인해 공황장애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으나, 소속사는 이를 방치하고 오히려 활동을 강요한 경우가 다수였다. 자본주의적 무한경쟁의 굴레에서 이들의 학습권과 정신 건강 문제는 나중의 문제일 뿐이었다. 이는 청소년 보호법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무력화되는지 보여주는 비극적 사례이다.

국정감사 출석한 최휘영 문체부 장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 장관은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미등록 기획사 난립 관련 질의에 관리 소홀과 방만한 관리에 대해 인정하고 전반적인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국정감사 출석한 최휘영 문체부 장관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 장관은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미등록 기획사 난립 관련 질의에 관리 소홀과 방만한 관리에 대해 인정하고 전반적인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연합뉴스

[구조적 문제 ③] 실효성이 부족한 감독 체계

정부의 감독 시스템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고, 산업 '진흥'에 치우쳐 '규제'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였다. 불공정 행위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쳐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다. 업계의 자율 규제 역시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와 같은 사업자 단체는 공정한 질서 확립보다 회원사의 권익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최근 보상금 정산의 투명성 문제로 '보상금 수령단체' 지정이 취소된 사례는 내부 자정 능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속가능한 K-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제언

K-엔터테인먼트가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의 기형적인 구조를 바로잡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적인 감독기구와 당사자들의 집단적 교섭력이다.

먼저 독립적인 감독기구로 여러 부처에 흩어진 감독 기능을 통합하여, 산업 진흥 논리에서 자유로운 독립기구 설립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 기구는 강력한 조사권으로 불공정 관행을 상시 감시하는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집단적 교섭력이다. 미국의 배우조합(SAG-AFTRA)처럼, 아티스트와 스태프가 스스로 조합을 결성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K-엔터테인먼트의 진정한 경쟁력은 또 한 명의 월드 스타가 아닌, 창작자와 노동자 모두가 존중받는 건강한 생태계에서 나온다. 지금의 위기를 직시하고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만이 K-엔터테인먼트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협력 플랫폼 빠띠에도 실립니다.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는 언론, 방송, 노동, 법률, 인권 영역 등에서 활동하는 11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 중인 연대체입니다. 지난 활동은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anbit.center/popup2
케이팝 표준계약서 문체부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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