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원자> 스틸컷
(주)마인드마크
송지효는 2003년 신인배우의 등용문 <여고괴담 3: 여우 계단>으로 데뷔해 올해로 22년 차 배우다. 평소 아리 에스터의 <유전> 같은 미스터리한 공포 장르를 좋아한다며 소재에 매력을 느꼈다고 운을 떼었다. "사건사고가 벌어진 과정과 원인을 풀어내는 장르는 좋아했다. 끊임없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라며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구원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마치 '대가가 있는 소원을 준다면 받으실 건가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저는 위험 회피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일이 생긴다면) 덥석 받을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이유를 묻자 오래 고민하며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해 지금에 만족하려고 훗날 후회할 일을 하지 않겠다. 직업상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 속상했지만 이제는 최선을 다해 솔직하게 살자고 다짐했다"고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선희는 다리를 쓰지 못했던 아들이 다시 걷는 기적을 보고 본인의 욕심이 차오른다. 본인의 핸디캡도 고칠 수 있다는 생각 끝에 폭주한다.
송지효는 선희를 악인이라기보다 갈망하는 인물로 바라봤다. "선희는 모자람 없이 살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시력을 잃어 욕망하는 인물이다. 가장 불편한 것을 잃었기 때문에 신앙에 의지했다가 그 대상이 바뀌어 간다. 대상에게 집착하는 과정조차도 선희의 내면 변화라 해석해서 어느 때보다 잘하고 싶었다"며 캐릭터의 애착을 드러냈다.
그래서일까. 송지효의 진가를 발견하는 캐릭터가 '선희'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손으로 더듬거리면서도 단연코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 않는다. 돋보기를 쓴 탓에 답답함이 배가 되고 인물의 고집스러움이 드러난다.
그는 편집된 서사가 있었다며 인물 전사를 자세히 설명했다. "선희는 태어나면서부터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니다. 돋보기를 쓸 만큼 안 좋아졌다가 춘서를 만나며 다시 시력을 되찾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 그래서 지팡이보다 남편에게 의지하고 아들의 아픔도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의 반항에 다그치고 교육하려 한다기보다 포용하는 쪽을 택한다"며 욕망이 과해 집착하는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영화는 서로 다른 욕망이 부딪히며 세 배우의 치밀한 감정연기에 힘을 실었다. 송지효는 어디엔가 있을 법한 외모와 현실적인 연기로 선희를 만들어 나갔다고 전했다.
이어 "선희라면 한문 선생님 같은 안경을 쓸 것 같아 제안 드렸다. 측면에서 봤을 때 두께를 느껴졌으면 했다. 문제는 안경을 쓰면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고 뭐든 평면으로 보였다"면서 "시력이 좋아 불편함을 못 느끼다가 막상 돋보기를 쓰니까 잘 안 보였다. (웃음) 손으로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게 자연스럽게 전달되었다. 지문에 여보라는 대사가 없었는데 안경 쓰니 저도 모르게 의지하며 '여보'를 찾게 되더라. 디테일이 살아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 중 가장 '영범'인 김병철과 오래된 편안함과 가족 같은 동지애를 느꼈다고 말했다. "제가 감정 기복도 심하고 극단적인 표현도 자주 쓰는 스타일인데 그런 저를 분석해 주고 토닥여 주는 든든한 선배였다"며 스펀지 같은 팔색조라고 표현했다.
또한, 남편을 잃고 하나뿐인 가족인 아들이 갑자기 걷지 못하자 이유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인물 '춘서' 역의 김히어라를 향한 동경과 지지를 보냈다. 처음 <구원자>의 시나리오를 받고,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의 처절함을 표현하고 싶어서 춘서가 탐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애타는 춘서의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해야 하는 선희의 마음이 병원 장면에서 폭발한다. 선희는 기적을 얻었다는 기쁨 보다 가진 걸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지키려고 한다. 애타는 춘서의 마음을 알지만 피해야 했다"며 "역시 '좋아하는 것'과 '잘 어울리는 것'이 다름을 깨달았다. 춘서를 하고 싶었지만 감독님이 선희를 맡겨 주신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상대 배우와 케미를 곱씹었다.
런닝맨, 목소리 한계 극복
▲송지효 배우(주) 마인드마크
송지효는 예능인으로 보여준 밝고 경쾌한 모습을 버리고 진중하고 차가운 얼굴을 보였다. 최근 <만남의 집>의 교도관에 이어 <구원자>의 저시력증 엄마로 분해 어두운 이미지를 다시 꺼냈다. 15년 된 '런닝맨'도 하나의 작품이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런닝맨으로 예능인의 모습을 얻었다. 15년 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고 좋은 시간까지 보낸 애정하는 작품이다. <여고괴담> 이후 공포, 스릴러 등 어둡고 무거운 작품이 들어왔다. 밝은 작품도 하고 싶었는데 저를 제대로 봐 주지 않아 속상했다"고 털어놨다.
송지효는 "20년 전에는 저음이 환영받지 못했다. 눈 감고 들었을 때도 웃음이 나는 목소리가 트렌드였다. 제 목소리는 처지고 졸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나름의 노력을 했는데 타고난 목소리는 바뀌지 않더라. (웃음)"면서 "엉뚱한 목소리 나오기도 했는데 버텨 봤다. 그때 런닝맨을 제안받아 긍정적인 이미지로 평가받게 되었다. 예능 하나를 15년을 하다 보니 밝은 이미지가 생겼지만 반대로 어두운 작품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이미지의 고민보다 반대되는 이미지의 합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극 E 성향일 것 같지만 I 성향의 내향인이라 밝히며 마흔다섯 해를 살며 세상을 겪을 만큼 겪었기 때문에 선희를 이해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은 감히 어떤 위로로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스스로 치유되기 전까지는 불신이 커진다"면서 "그래서 더욱 후회 없이, 진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다. 치유의 시간이 지나면 한 단계 성숙해지는 건 맞지만 그 고통 때문에 방어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우에게 최고의 칭찬은 '네가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다. 어렸을 때는 도화지 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어떤 옷을 입혀 놔도 잘 어울리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데뷔 초부터 했다.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런 송지효의 인성은 춘서 역의 김히어라의 고움으로 드러났다. 김히어라는 "털털함을 넘어 너무 멋진 분"이라며 상대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까지 잘 챙기는 배려심을 가진 사람이라 감사를 표했고 송지효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타인을 챙기려는 건 온전히 에너지를 쏟으며 신경 쓰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한 촬영장에서 연기의 전환점이 된 일을 겪었어요. 누군가는 단역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제가 뭐라고 이렇게 살지 싶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포장마차 신이었는데 테이블에 소주를 가져다주며 '소주 나왔습니다'라는 대사를 하면 되었습니다. 단역 배우가 한마디를 하기 위해 3시간을 연습하셨던 거더라고요. 이 대사가 기회라고 생각하니 최선을 다하는 거라는 말을 듣고 제가 이 기회를 편하게 누려도 되나 생각해 봤어요. 저야말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채찍질하는 에피소드였어요. 연기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덕분에 뭐든 욕심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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