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추창민 감독 "'강약약강' 인물 무덕, 나랑 닮았다"

[인터뷰] 디즈니+ <탁류> 추창민 감독

디즈니+ 최초 오리지널 사극 <탁류>는 조선의 모든 돈과 물자가 모여드는 경강(지금의 한강 일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혼탁한 세상을 뒤집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각기 다른 꿈을 꿨던 이들의 운명 개척 액션 드라마다.

지난 21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추창민 감독을 만나 첫 시리즈 연출 소감과 배우 디렉팅 비하인드를 들어볼 수 있었다.

디즈니+의 첫 사극 시리즈라는 타이틀이 부담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디즈니+의 첫 사극이란 의미보다 <탁류>가 디즈니+의 여러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사극은 또 다른 SF"라며 "상상력을 극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흥미로운 장르다. <광해> 이후 흥미로운 사극 대본이 없었는데, 왈패 이야기에 호기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왈패들의 헤어스타일과 수염, 복식의 리얼리티를 살린 사실적 묘사는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 고증에 공들인 티가 났다.

그는 "사극 레퍼런스를 찾아보면 서민이나 하층민은 똑같다. 상투 틀고 이마에 하얀 띠를 두른 모습이다. 주인공이 아니라서 일률적으로 옷을 입혀 두었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머리에 다양한 것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라며 "저희는 두건과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썼다. 하층민의 경우 유니폼 같은 형식이 없어 훨씬 다양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약약강'은 우리 모두의 거울

 추창민 감독
추창민 감독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탁류>는 왕이나 양반 중심이 아닌 하층민 중 일꾼들을 고용하고 상인들의 질서를 정하는 집단인 '왈패'라는 무리의 이야기가 주다. 왈패는 청렴해야 할 포도청과 결탁하고 각종 이유로 세금을 부과해 권력을 휘두르는 현대의 조폭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추창민 감독은 "경강이 배경이라 그곳을 장악한 왈패의 존재와 마포 나루를 알려야 했다"며 주인공이 초반부터 등장하지 않는 독특한 연출 방식에 관해 영화를 예로 들었다. 추 감독은 "영화 <대부>는 30분 동안 결혼식 장면을 통해 잔인한 마피아의 세계를 보여준다. 조금은 지루할 수 있지만 이야기를 빨리 진행하지 않는다"며 "배우들의 연기 호흡과 디테일한 감정 표현에 주력했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에 따른 이야기의 힘도 강조했다. 그는 "인물과 인물 사이 감정이 쌓였을 때 이야기의 울림이 생긴다고 믿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 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며 "OTT 플랫폼의 공개라는 장점을 통해 과감한 실험을 해봤다. OTT 시리즈는 처음이고 영화감독 출신이다 보니 디즈니 쪽에서 어떠한 간섭이나 관습 없이 허용해 준 것도 있다"고 말했다.

로운, 박서함, 신예은 세 청춘과 박지환을 중심에 둔 왈패 조직의 끈끈함, 또한 북방 오랑캐 왕해 김동원까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성이 돋보였다.

추창민 감독은 "예은씨에게는 미안하다. 색보정 단계를 최종적으로 거칠 때 뽀샤시 필터를 빼 달라고 했다. 인공적인 광채를 넣지 않아도 배우 자체로 예쁘기 때문이다. 왈패 무리는 촬영 전부터 만나 친분을 쌓았다. 실제로도 친해져서 왈패의 분위기가 극 중에 그대로 살아났다"라고 답했다.

특히 김홍도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조선 시대 인물 자체였던 박지환의 연기를 두고 극찬 아끼지 않았다.

추 감독은 "배우는 예전에 맡았던 인물이 다른 역할을 맡을 때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박지환 하면 장이수의 얼굴로 각인되어 있지 않나. 봐 온 얼굴을 또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다른 연기를 원한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지금의 무덕의 얼굴이 나온 거다. 개그적인 표정은 탑재되어 있지만 페이소스와 감정이 담겨 있는 좋은 얼굴을 그동안 편하게 썼다는데 놀랐다"며 "무덕(박지환)이는 마치 저와 같았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우리 모두의 본성 같다. 시율(로운)처럼 강직한 인물이 드라마적으로는 멋지지만 우리와 닮은 인물에 유독 애정이 간다"고 설명했다.

분장, 액션, 언어까지 해야 했던 왕해 역의 김동원 배우를 두고 추 감독은 "악역을 자주 맡았지만 실제로는 선한 인상인 본모습에 반했다"라며 "왕해는 분장도 왈패들과 다르고 액션도 익히며 연기해야 했다. 몸을 잘 쓰는 액션도 탁월하고 언어를 능숙하게 연습하는 성실함도 남달랐다"고 귀띔했다.

부조리한 시스템에 맞선 개인의 사투

 디즈니+ <탁류> 스틸컷
디즈니+ <탁류> 스틸컷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탁류>는 조선의 모든 돈과 물자가 모여드는 경강을 둘러싼 부패한 권력과 서민의 질긴 생존도 다루고 있다. 여전히 부조리한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왈패의 이야기가 공감을 얻었던 부분이다.

추 감독은 "<탁류>는 병자호란 직후 혼란한 상황 속 임진왜란을 앞둔 조선 중기 고난의 시대를 다룬다. 어느 시대든 계급은 존재하고 강자와 약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존재했지만 악인을 그려내지 않으려고 했다"라며 "그때는 좋고 나쁨을 떠나 서민들은 생존의 문제였다. 쌀 한 톨로 싸워야 하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해코지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사회 문제와 이를 둘러싼 메시지를 던지려는 건 아니었다"며 "(제가) 메시지를 드러낼수록 잔소리 같고 어떤 식으로든 위험할 수 있다. 계급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탁류>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그는 첫 드라마 연출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영화로 치면 다양성이 필요한 것처럼,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 집중하며 진중히 볼만한 드라마, 시네필이 볼만한 OTT 시리즈가 <탁류>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꾸준히 작품을 해온 만큼 다른 작품을 만날 때까지 쉬고 있다. 불안한 미래는 프리랜서가 당연히 이겨내야 하는 거다. 다만 일할 때는 확실히 일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한편, 디즈니+ 오리지널 사극 <탁류>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이 초청되며 포문을 열었으며, 현재 9부 모두 스트리밍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더무비에도 실립니다.
추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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