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고 닳아 없어지고파" 신승훈의 '아름다운 하강'

[리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퀴즈 신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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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은 볼 빨간 아이가 그대로 자라서 숙녀가 된 걸 본다. 그 친구들이 어느 순간 안 보이다가 몇 년 뒤에 결혼하고 아이를 안고서 '오빠, 저 기억하시죠?'라고 다시 찾아온다. 엄마가 되었지만 저를 보는 표정은 그때 봤던 중학생의 그 모습이다. 저를 보면 추억이 생각나나 보다. 제가 그 추억 안에 '가수 오빠'인 것도 너무 좋다. 35년이면 참 의리있는 팬들이다. 잠시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회귀본능'에 감사드린다."

10월 22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영원한 발라드 황제' 신승훈이 출연했다.

신승훈은 1990년 11월 1일, '미소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하여 '보이지 않는 사랑', '아이 빌리브', '그후로 오랫동안'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가요계의 레전드 발라더로 자리매김했다.

10년 만에 정규앨범으로 돌아온 신승훈은, 가수 활동을 재개하면서 발라더만의 필살기인 '발라드 턱선'의 노하우를 강조했다. 곡을 쓸 때는 살이 쪄있지만 가수로 활동할 때는 다시 턱선이 돌아온다고.

"댄서분들은 춤으로 어필하지만 발라더는 목소리 밖에 어필할 게 없다. 노래 부르다가 적어도 15초 이상은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그럴 때 고개를 돌리며 턱선으로 여심을 베야 한다. 그게 저의 신조고 후배인 조성모, 성시경, 정승환 등에게도 전수하고 있다."

"공항에서 여행 짐 뒤져 녹음기에 급하게 멜로디 녹음하기도"

신승훈은 정식 데뷔 전부터 대전 일대에는 이미 유명한 가수였다. 지역에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받은 팬레터만 7000여 통이 넘었다고. 1989년 통기타 하나만 들고 서울로 상경한 청년 신승훈은, 이듬해 '미소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하여 당시 최고인기 가요프로그램이던 <가요톱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유재하, 김현식 선배님을 너무 좋아해서 그분들처럼 TV 활동을 적게 할까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데뷔곡 반응이 너무 좋아서 TV에 한번 출연했더니 사장님이 저를 보고 '카메라 빨이 너무 잘받아서 놀랐다'고 하더라. 그래서 '거봐요, 저 괜찮다니까요'라고 했다. 한 가요프로그램 대기실에서는 노사연 선배님을 만났는데 저를 보자마자 '너 뜰거야'라고 하시더라."

데뷔곡에 이어 신승훈을 명실공히 발라드 황제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2집 타이틀곡 '보이지 않는 사랑'의 대히트였다. 당시 '보이지 않는 사랑'은 가요프로그램에서 무려 1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한국 기네스 기록을 수립했다. 특히 베토벤의 클래식 가곡 'Ich Liebe Dich'를 삽입하여 한국 가요로 전환되는 독특한 도입부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등학교 때 베토벤의 가곡을 배웠다. 베토벤이 독일인이 아니라 소주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었다면? 도입부의 멜로디를 어떻게 이어나갈까 라고 상상하다가, 외국 공연을 위하여 나간 공항에서 문득 멜로디가 떠올랐다. 당장 여행 짐을 뒤져서 카세트 녹음기를 찾아서 멜로디를 녹음했다. 녹음기에 실수로 녹음이 안 돼서 까먹는 노래도 많다."

1990년대 초중반은 한국 가요계의 격변기이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터보, H.O.T 등 아이돌과 힙합 가수들이 잇달아 등장하며 댄스음악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신승훈은 댄스열풍 속에서도 인기 발라드 가수로 건재한 것은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 '엄마야' 등 댄스음악에도 도전하며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신승훈은 "댄스를 할 때 많은 분들이 웃으셨지만 저는 상당히 진지했다"고 웃으며 "댄스를 하면서 안무가들의 희열을 느꼈다. 내가 했던 동작을 오천 명, 만 명의 관중이 똑같이 따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래서 댄스가수를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과거에 신승훈의 노래를 좋아했던 소녀 팬들은 이제 어느덧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됐다. 신승훈은 신곡 'She was'를 열창하며 팬들에게 추억과 격려의 마음을 전했다.

"한때 '헤이걸'이라고 부르던 소녀들이 이제는 다 엄마가 됐다. 본인의 이름보다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게 익숙한 그들에게, 3분 40초의 노래로 위안을 주고 싶었다. 저의 의도를 팬들도 알았는지, 댓글을 보니까 '노래 가사를 들으며 눈물 흘리거나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이 많더라.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제가 노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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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은 자신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가수활동에 있어서 확고한 소신과 철학을 지닌 신승훈은 한창 전성기에도 광고나 예능 출연을 거절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게 슬픈 노래를 부르다가 광고에서 갑자기 음료수를 들고 '맛있어요' 하는 게 이미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미지에 도움이 되는 광고도 많더라. 그때도 저런 광고가 있었으면 100% 찍었을 거라며 후회도 된다. 예능 출연도 가수니까 노래부터 먼저하고 그 다음에 팬들에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번에 <유퀴즈>에 나온 것도, 노래하는 프로그램에는 다 나가고 나서 이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다."

한편으로 신승훈은 자신같은 중장년 가수들을 위한 방송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이제는 제가 노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아이돌이 나가는 프로그램에 나갈 수는 없고, 심야프로그램에는 나가도 너무 밤 늦게 방송해서 사람들이 못 보고 '신승훈씨, 요즘 뭐하세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오늘 <유퀴즈>에 나온 게 너무 행복하다."

'가수는 노래 제목을 따라간다'는 징크스는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슬픈 이별 노래를 많이 불렀던 신승훈도 징크스에 100% 공감한다며 자신이 여전히 '솔로'인 이유에 대하여 자학개그를 펼쳤다.

"어느날 제 곡목들을 쭉 살펴봤더니 하나같이 '보이지 않는 사랑', '그후로 오랫동안',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뿐', '전설속의 누군가처럼'으로 이어지더라. 그러니까 사람을 만날 수가 없는 거다. 제가 다 작사작곡한 노래들이니까. 그냥 제 업보다."

신승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더 신승훈 쇼'를 지금까지 1800회 이상 공연했다. 11월로 예정된 35주년 기념 콘서트도 전석 매진되며 여전한 발라드 황제의 위엄을 과시했다.

한편으로 신승훈은 35년간 오랜 세월에도 변함없는 성원들을 보내주고 있는 의리 넘치는 팬들을 향한 고마움을 전했다. 과거의 소녀팬들이 아이 엄마가 되어 다시 찾아온 일화. 성적이 오르면 이름을 기억해주겠다고 약속했던 팬이 전교 1등이 되어 당당하게 돌아왔다는 '지현씨'의 일화 등을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가수로서 모든 것을 이룬 레전드지만, 음악을 향한 신승훈의 열정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지금도 신승훈은 명곡을 만들기 위하여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고. 궁극적으로 발라드 황제가 꿈꾸는 앞으로의 최종 목표는 '아름다운 하강'이었다. 신승훈은 십 여 년 전 콘서트에서 "녹슬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닳아서 없어지는 가수 신승훈이 되겠다"고 했던 일화를 회상하며 "이제 정말 닳고 녹슬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됐다"고 자신을 돌아봤다.

"누군가 '신승훈 이제 한물갔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맞다. 그런데 저는 이미 옛날부터 하강을 준비해왔다. 떨어졌을 때 발버둥치지 않고 아름다운 하강을 하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왔다. 지금부터는 여태까지 쌓아온 내공으로 날개를 학처럼 우아하게 펼치면서, 하강이지만 사람들이 '멋있는 하강'이라고 박수쳐줄 수 있는 가수 신승훈이 되고 싶다."

신승훈은 20대 시절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잘해왔고 가끔은 네가 걸어온 길을 자랑해도 된다. 외롭기도 했겠지만 잘 견뎠다. 앞으로는 음악만 하지 말고 '인간 신승훈'도 생각해달라"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내 노래 중에서 한 곡이라도 당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면. 팬들에게 '목소리 유지해줘서 고마워요', '옛날 생각이 났어요'라는 반응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스럽다. 앞으로도 노래 한 곡을 듣고 '우리에게는 신승훈이 있었지'라며 추억이 되는 가수로 남고 싶다."
유퀴즈 신승훈 보이지않는사랑 데뷔35주년 SHE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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