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를 연출한 변성현 감독.
넷플릭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일본항공 351편이 일본 급진 테러단체 적군파에 의해 납치됐다. 도쿄에서 후쿠오카로 향하던 비행기를 평양으로 보내라 요구한 당시 사건은 당시 기장 및 한국 정부의 기지로 탑승객 전원이 석방됐고, 적군파 일부가 북한에 망명하며 일단락된다. 현대사에 남을 비행기 납치사건으로 기록된 역사를 변성현 감독이 변주했다.
지난 17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굿뉴스>는 그 만듦새와 영화적 재미를 인정받아 토론토국제영화제 및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그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길복순> <킹메이커> 등에서 액션과 현대사의 단면을 장르적으로 풀어온 변 감독은 해당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소화했다. 이 또한 감독에겐 첫 도전인 셈.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변성현 감독은 "여러 장르를 해보고 싶었는데 블랙코미디는 그동안엔 겁나서 피해왔다. 하지만 지금 정도의 경험치면 도전할 만하다는 생각이었다"고 운을 뗐다.
현대사의 재해석
구상은 영화 <길복순>의 촬영을 끝낸 직후였다. 평소 오전 라디오 뉴스를 즐겨듣던 변 감독은 사실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 진실과 다른 뉴스에 호도되는 현상에 짜증과 분노, 냉소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유명인들의 명언을 뒤집고 싶다는 생각에 명언집을 사놓고 이리저리 만지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발견한 게 1970년 일항기 납치 사건이었던 것.
"우선 인명 피해가 없는 사건이라는 게 결정의 큰 이유였다. 트루먼 셰이디라는 가상 인물의 가짜 명언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을 이야기 앞뒤에 배치해 놓고 우리가 아는 명언들을 부정하면서 사건을 구조화할 수 있겠더라. 사실이지만 진실이 아닌 뉴스들, 거기에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조장하는 권력이 있다.
얼핏 <킹메이커>의 협잡꾼 서창대(이선균)와 비교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그땐 치기어린 마음에 제 생각을 강요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피식거리게 하다가 뒤통수를 세게 때리고 싶었다. 명언이라는 건 어떤 권위라고 생각했다. 그걸 뒤집으면서 관료주의를 조롱하고 제가 느낀 짜증이나 분노를 자연스럽게 녹이려 했다."
<굿뉴스>를 이끌어 가는 두 캐릭터가 있다. 협잡꾼처럼 권력 뒤에서 온갖 사건을 만들어내고 조작하는 아무개(설경구)는 당시 중앙정보부와 정부 관료들 앞에서 대국민 사기극을 기획한다. 일본 승객을 구하고자 한다는 명목으로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에 한국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목표였다. 그 수단이 바로 서고명 중위(홍경)였다. 국내서 손꼽히는 레이더 관제사인 그를 통해 일본 비행기 통신을 가로채고, 적군파를 설득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겨 있다.
"서고명을 통해 관객들을 따라가게끔 하고 아무개를 통해선 관찰하게 하는 게 목표였다. 영화 도중 아무개가 카메라를 몇 번 응시하는 것도 그런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설경구 선배는 원래 <킹메이커>에서 협잡꾼 역할을 하고 싶어하셨는데 이번에야 드린 것이지. 더 남루하고 비루한 신세긴 했지만 말이다. 이름을 드높인다는 듯의 서고명과 아무개는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묘사했다.
많은 영화에서 보면 아무개나 서고명 같은 인물은 비극을 맞이하기 십상이다. 그걸 피하고 싶었다. 본래 현실에선 그런 굴욕을 겪어도 그냥저냥 살아가잖나.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그 개고생을 했지만 대통령 시계 하나 받고 끝난 듯 사는 게 더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사실 홍경 배우는 그 시계를 안 차고 싶어했다. 고명 입장에선 억울할 것 같다며 말이다. 제가 바로 그 기분으로 차라고 했다. 억울하지만 참고 차는 게 힘없이 이용만 당한 사람들이 택하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치밀했던 준비
▲영화 <굿뉴스> 스틸.
넷플릭스코리아
▲영화 <굿뉴스> 스틸.넷플릭스코리아
전작에서 보여 온 특유의 만화적 느낌이 이번 작품에도 있다. 조형래 촬영 감독, 한아름 미술 감독 등 소위 '변성현 사단'이 참여한 덕이다. 미국 서부극 <퀵 앤 데드> 등 변 감독이 좋아하는 작품들의 오마주도 스태프들 덕에 구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야마다 타카유키 등 일본 스타 배우가 합류하면서 스태프들의 규모 또한 커졌다. 변성현 감독은 "콘티 하나하나 오래 상의하면서 준비했고, 현장에서 의견을 수렴해 고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배우분들이 다행히 저란 사람을 알고 있어서 흔쾌히 합류했다. 큰 역할이 아님에도 야마다 타카유키는 출연해주셨다. 종종 일본 배우분들이 참여했을 때 어색한 경우를 봐와서 이번엔 배우들께 표현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준비했다. 음악도 김흥집, 이진희 감독님과 하면서 다른 제 영화보다 음악을 더 많이 사용하고자 했다. 비발디의 '사계'도 현악기 버전 등으로 편곡해주셔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불한당>을 비롯, 변 감독 작품에 네 번이나 출연해 페르소나와 다름 없는 배우 설경구와 <길복순>으로 인연을 맺은 전도연이 적은 분량에도 출연해 힘을 보탰다. 류승범도 중앙정보부 박 실장 역을 소화해 입체감을 더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 홍경의 확장된 면모를 보일 수 있음에 변성현 감독은 흡족한 듯 보였다.
"< 약한 영웅 Class >의 세 주인공 중 가장 안 도드라지는 캐릭터였는데 전 홍경 배우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몇몇 인터뷰 때 눈겨여보는 배우로 언급하기도 했다. 류승범 배우는 제가 어릴 때부터 팬이었고 우상이기도 했다. 어렵게 수소문해 출연을 부탁드렸는데 처음엔 거절하셨거든. 근데 제가 물러서지 않고 버티니 승낙해주시더라. 현장에서 보니 본능적인 배우이기도 하지만 대본이 무슨 고대 문서처럼 너덜거릴 정도로 준비가 철저한 배우이기도 했다.
경구 선배는 외부에 말할 땐 저와 안 친하다고 하는데 농담이고, 내적 친밀감이 상당하다. 근데 자주 보지 않는 건 맞다. 분기마다 소주를 마시는 사이인데 그때마다 틱틱거리며 말씀해주시는 분이다. 본래 제가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대 때 가장 좋아했던 배우 중 한 분이시다. 어떤 인터뷰에서 절 무슨 영화적 아버지라 농담하셨던데, 작은 삼촌 정도인 걸로 했으면 한다(웃음)."
공개된 <굿뉴스>의 반응이 심상 찮다. 캐릭터와 이야기 모두 호평받으며 순항 중인 것에 변성현 감독도 고무적인 마음을 드러냈다. "그간 장르 영화를 하면서도 조금씩 비틀어 왔는데 무슨 도장깨기는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스릴러나 멜로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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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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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변성현 감독 "뉴스에 대한 분노, 조소로 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