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몸"

[인터뷰] 아르코 댄스 UP:RISE 스테이지1 〈체화〉 민희정 안무가

 공연 연습사진
공연 연습사진민희정

한밤중,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모으던 어린 시절의 기억. 장례식장을 다녀와 문 앞에 소금을 뿌리던 몸짓. 돌탑 앞에 서면 꼭 돌을 얹고 눈을 감고 잠시 기도하던 습관. 오는 11월 12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개되는 민희정 안무가의 신작 〈체화〉는 바로 그 오래된 몸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지난 14일, 어느 대학로에서 그를 만나 공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을 움직이게 하죠. 어떤 믿음은 우리를 바쁘게 몰아세우고, 또 어떤 믿음은 끝까지 버티게 해요."

〈체화〉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몸, 그 믿음이 만들어낸 신체의 리듬, 반복, 균열과 회복의 감각을 무대 위에서 짚어간다. 무속의 기도, 조상의 숨결, 신앙과 미신, 얼·한·신명 같은 한국적 감각들이 우리 몸 안에서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민희정은 무용수의 신체에 새긴다.

"믿음은 특정한 종교의 개념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원초적인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중심 오브제는 '돌탑'이다. 무대 디자이너 송주호가 제안한 이 구조물은 실용적 기능이 없는 대신, 믿음의 축적을 상징한다. 반복되는 행위와 시간이 만들어낸 정신의 형상. 그리고 그 형상이 무너졌을 때, 탑의 꼭대기 돌 하나가 허공에 남아 흔들리는 장면. 민희정은 그 장면을 통해 믿음의 잔류, 정신의 여운, 집단 무의식에 스며든 얼의 존재를 시각화하고자 한다.

그녀가 믿음을 사유하게 된 출발점은 가족의 일상이었다. "할머니는 새벽마다 물을 떠놓고 달을 보며 기도하셨어요. 생일에는 팥밥을 먹어야 했고, 해마다 부적을 지갑에 넣어주셨죠. 누군가는 미신이라고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 믿음은 저에게도 자연스럽게 체득되어 있더라고요." 민희정은 그 오래된 신념의 습관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학습된 문화라기보다는 몸에 새겨진 전통이었다.

"이가 빠졌을 때 아파트인데도 창문 밖으로 이를 던졌던 장면, 문지방을 밟지 않는 버릇, 장례식 후 소금을 뿌리는 행위. 이런 것들은 모두 몸에 남아 있는 믿음의 흔적이었어요."

〈체화〉는 이러한 신념의 반복이 어떻게 형상을 만들고, 무너지고, 다시 여운으로 돌아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믿음은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았고, 무너졌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민희정은 그 여백을 무대에 꺼내 보인다.

전통에 대한 회의, 낯섦에 대한 애정 그리고 유머

 민희정 프로필 사진
민희정 프로필 사진민희정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잡으려고 해본 적은 없어요."

민희정은 단언하듯 말한다. 그는 전통을 경외의 대상으로 두지 않는다. 오히려 낯섦과 유머를 입혀 '살아 있는 전통'을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낯선 이미지, 유머, 유쾌함.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소예요. 공연의 정서뿐 아니라 구조적 리듬을 조절하는 장치로도 쓰이죠. 앞부분이 너무 팽팽하면 중간에 가볍고 의외의 순간이 필요해요. 거기서 긴장과 즐거움이 생기거든요."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무용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실기 석사를 마쳤다. 전통춤에 대한 깊은 수련을 거친 그는 어느 순간, 그 전통이 자신의 몸을 규정짓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고 회고한다.

"한때 전통춤은 제 몸의 속성을 부정하고 특정한 틀에 넣는 작업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물처럼 제 몸이 사용되는 느낌.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몸, 개개인의 루틴과 수련 과정에 집중하게 되었죠."

〈한국무용?〉(2021)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다큐멘터리 댄스 드라마다. 무용수 자신의 경험으로 '호흡'과 '팔사위'를 다시 정의하고, 자신만의 춤을 길어 올리는 작업이었다. 〈고고苦苦〉(2022)는 삶의 순례자적 고통을 다루며, 그는 이 작품으로 대전뉴댄스페스티벌 차세대 안무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민희정은 "그렇게 대단한 상도 아니고, 작품도 여전히 미흡하다"며 스스로를 낮춘다.

이어지는 〈한국춤의 맥〉(2023)에서는 전통과 자신 사이의 거리감을 정면으로 탐구한다. 전통을 '한 사람의 계보학'이라 정의하며,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습관, 훈련이 만들어내는 몸의 자연스러움에 주목했다. 2024년의 〈팔춤〉은 팔사위의 움직임을 통해 청년 세대의 '자리잡기'를, 〈신무와 도구들〉은 전통과 현대, 실험과 혼종 사이의 새로운 춤 언어를 시도한다.

민희정의 작업은 일관되게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 어떤 전통을 몸에 새기고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답을 먼저 내리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해요. 그리고 작업을 끝내고 나서야 '아, 내가 이런 걸 찾고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죠. 관객도 저처럼 그 질문 위에서 각자 다른 해석을 찾아가면 좋겠어요."

그의 무대는 매끄러운 메시지보다 불편한 질문으로 남는다. 그 지점에서 민희정은 타협하지 않는다.

이제는 당사자가 아니라 관찰자로

 〈체화> 공연 포스터
〈체화> 공연 포스터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는 지금 자신을 "한국춤의 당사자라기보다는 제3자에 가까운 관찰자"라고 말한다.

"한국춤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저는 이제 한국춤을 관찰 대상처럼 봐요. 생명체 같아요. 변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죠. 그 변화 속에서 이 생명체가 동시대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지켜보려 해요."

지난해 서울무용센터 입주 예술가로 선정되었지만, 그는 "별다른 교류는 없다"고 쿨하게 말한다. 오히려 그런 고립 속에서 자신의 궤도를 정비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공부가 절실하다는 걸 느꼈어요. 이 문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해온 것들과 이제 처해진 환경 사이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더라고요."

〈체화〉 이후의 계획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전혀 모르겠어요. 제가 장기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계획성과 유동성이야말로 지금 민희정이 춤추고 있는 무대다.

민희정의 춤은 불완전한 상태로 우리 앞에 놓인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믿음이 무너질 수 있음을 아는 사람만이, 그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끝까지 바라볼 수 있다. 민희정은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아르코 댄스 UP:RISE>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 무용 창작자들의 예술적 성장과 터닝포인트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2024년 <아르코 댄스&커넥션>에서 출발해, 올해 그 취지를 더욱 분명히 하고자 <아르코 댄스 UP:RISE>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아르코 댄스 UP:RISE>는 창작 초연 작업을 지원하는 ‘스테이지1’과 그 초연작을 1시간 분량의 완성작으로 발전시키는 ‘스테이지2’로 나뉜다. 일시적인 제작 지원을 넘어, 지속적인 예술 성장의 발판을 제공하기 위한 구성이다. 올해 ‘스테이지1’에는 5월 공개 모집을 통해 최종적으로 김영찬, 정찬일, 박유라, 민희정 네 명의 안무가가 선정됐다.
민희정 체화 공연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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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