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학영재 형주> 스틸컷
인디스토리
03.
두 가지 목적 사이의 변화는 중심인물인 형주가 경험하게 되는 것, 증명하는 일과 직접 경험하는 일 사이의 전환 속에서 이루어진다. 명확한 계산을 통해 모든 것이 측정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는 존재에 대한 기억과 애도, 관계성이 개입되며 점차 무력해져 간다. 단단하게 느껴지던 그의 표정이 엄마의 일기장을 뒤지고 옛 단서를 수집하는 과정 속에서 처음으로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상실과 두려움의 맥락이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스스로의 정의에 대한 과제에 있다. 서사는 그렇게 친부 규명을 위한 추적극(trace)에서 자신의 기원을 찾기 위한 추적극(look back)으로 전환된다.
한편, 그런 형주 가까이에 존재하는 인물 모두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시키는 존재가 된다. 아버지 민규와 친구 지수(김세원 분)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존재는 중심인물이 경험하기 이전부터 이미 유사한 '오류'를 마주하고, 끌어안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일종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성과 감정, 혈육과 식구, 증명과 경험 등, 일종의 대립으로도 읽힐 수 있는 서사적 긴장감과 과도한 심리적 충돌을 다소 누그러뜨리게 만드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영화적 목적의 전환 역시 이들을 통해 훨씬 더 자연스러울 수 있게 된다.
04.
"니는 내가 낳은 자식이다. 니 태어날 때부터 옆에 있었던 건 내다."
이 영화에는 분명 헐거운 지점들이 존재한다. 메타포로 삼고 있는 수학적 개념들이 극 내부에 (공식이 그러하듯이) 정교하게 밀착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 몇몇 설정이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기 위한 시도처럼 보인다는 점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닿고자 하는 자리가 기원의 재서술을 통한 오류에 대한 실패와 수용, 한 인물의 성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틈은 도리어 형주라는 인물에 가깝게 여겨지기도 한다. 논리적 사고를 버리고 감정적 서사를 받아들이고 배워나갈 한 인간의 모습이다. 영화 또한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그런 인물의 표정을 깊고 오래 들여다본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분명 친부를 찾기 위한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닿게 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가치를 더 신뢰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병준(이기문 분)과 범호(서석규 분), 동섭(김일두 분)의 이야기를 지나는 동안 영화는 사랑과 가족, 혈연과 관계와 같은, 전통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 사이에 놓인 개념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물론 영화는 친자 감별 유전자 검사를 위해 세 사람의 머리카락을 얻는 장면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실제로는 결과를 구하지 않고 삶의 불확실성을 인생의 상수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실패와 성공과 같은 수학적 답안에 의한 끝맺음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가는 존재의 지속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 영화 <수학영재 형주>는 정답을 구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문제를 안고 살아내는 법을 연습시키는 영화에 더 가까운 셈이다. 그리고 그 연습은 상실 이후의 혼란과 공백을 버티고 살아내게 만들 것이다.
▲영화 <수학영재 형주> 스틸컷인디스토리
05.
영화의 첫 신이다. 아주 멀리서부터 스케이트보드에 몸을 맡긴 형주가 카메라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온다. 이후에도 몇 차례, 그는 땅의 지면이 아닌 흔들리는 보드에 몸을 맡긴 채 어두운 거리를 내달린다. 형주의 그런 모습과 행동이 내게는 처음부터 어떤 '오류'처럼 보였다. 엄마의 죽음과 연관된 유전병의 확률에는 그렇게 두려워하던 이가 스케이트보드의 사고 확률에는 어떻게 그리도 태연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이미 그의 삶은 오류와 틈으로 가득 차 있었음이 분명하다. 수학영재라는 타이틀이 그의 이름을 따라다니고 있었을 뿐, 치기와 변명, 탓으로 가득찬 아직 어리고 여린 소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한 사람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형주의 모습으로부터 다시 시작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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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