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 문 닫는 때 개관 90주년 맞은 광주극장

[현장]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 개막 행사...김동호 감독 "광주극장은 문화적 자산"

 17일 저녁 광주 충장로 광주극장에서 열린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 개막 축하공연
17일 저녁 광주 충장로 광주극장에서 열린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 개막 축하공연성하훈

지난 17일 저녁 광주극장에서는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의 개막 행사가 흥겨운 공연과 함께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경쾌한 축하 연주가 펼쳐지면서 참석자들은 어깨를 흔들며 광주극장영화제의 개막을 축하했다.

이어진 영화 간판 공개는 가장 주목받는 시간이었다. 옛 극장 문화를 상징하고 있는 손으로 그린 간판은 지금은 사라졌으나, 광주극장은 간판학교 워크숍을 매해 열어 옛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15명의 관객이 참여해 40일에 걸쳐 영화 간판을 그렸다고 한다. 지금은 보기 힘든 손으로 직접 그린 영화 간판이 공개되자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냈고, 극장 출입구 위에 걸린 간판은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의 개막을 알렸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로 꼽히는 광주극장이 개관 90주년을 맞이했다. 1935년 10월 개관한 광주극장은 인천 애관극장에 이어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이어오는 상영관이다. 국내영화관들이 대부분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가진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로 바뀌었으나 유일하게 하나의 스크린만 있는 단관극장을 유지하는 중이다. 최근 들어 영화산업 위기로 인해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는 가운데, 100년 가까운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광주극장 90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는 광주극장 탄생 90년을 자축하는 시간으로 준비한 행사다. 광주극장은 매해 10월 극장 개관 시기에 맞춰 영화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올해는 90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인 듯 축하의 선물을 들고 찾은 광주 영화인들과 관객들로 극장은 북적였고, 개막작 상영에 앞서 극장 앞에서 진행된 축하 공연과 손 간판 공개 행사는 특별한 개막식이었다.

"오래됐지만 전통을 유지하는 광주극장"

 손 간판을 사진에 담는 김동호 감독
손 간판을 사진에 담는 김동호 감독성하훈
 손 간판에 사인을 남기는 김동호 감독
손 간판에 사인을 남기는 김동호 감독성하훈

개막작으로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도 광주극장 90주년을 빛내고 있었다. 전 부산영화제 이사장인 김동호 감독이 연출과 주연을 겸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손 간판 속에서도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김동호 감독은 직접 기념 사인을 남겼고, 개막작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광주극장의 가치를 강조하며 개관 90주년을 축하했다.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는 올해 부산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작품이다. 2년 동안 제작된 영화로 한국영화 위기론이 커지고 있는 시기에 영화인 개개인의 지난 시간 한국영화 역사와 영화관의 기억과 함께 앞으로 미래에 관한 생각과 고민을 담은 영화다. 원로영화인 신영균, 고은아, 문희 배우 등을 비롯해 이창동, 봉준호, 장준환, 고레에다 히로카즈, 윤가은, 윤단비 감독 등등 수많은 영화인을 인터뷰해 지금의 한국영화와 영화산업 위기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든 작품이다. 90세가 가까운 김동호 감독이 상당한 공을 들인 수작이다.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 개막작 상영은 촬영 과정에서 약속을 지킨 것이기도 했다. 초반에 나오는 내용 중에는 광주극장을 찾아 광주극장 김형수 이사와 진모영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등장한다. 영화가 완성되면 광주극장에서 상영해 달라는 요청에 김동호 감독이 승낙하는 장면이다.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 개막작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김동호 감독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 개막작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김동호 감독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성하훈

광주극장 개관과 탄생 연도가 엇비슷한 김동호 감독의 개막작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는 영화관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울림이 컸다. 상영 후에는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프로듀서 중 한 명인 나선 김동현 피디의 진행으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김동호 감독은 광주극장에 대한 애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오래됐지만 전통을 유지하는 극장들이 기억에 남는다"며 "일본 극장들은 코로나 때도 관객이 7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극장이 특징적인 고유의 프로그램을 고정적으로 갖고 있으면서 관객이 왔다"면서 "광주극장도 그런 영화관 중 대표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또한, 단관극장 유지가 어려운 이유로 '세금 문제'를 들었다. "재산세 등을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그럼에도 이를 버텨내고 있는 것이 광주극장인데, 90년 전통 유지해 나가면서 문화공간이자 시민의 공간으로 단순한 극장이 아닌 문화적 자산이자 시민의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고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광주극장 어려운 과정에서도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데, 시민들이 '우리의 것이다' 생각해 와주시고 후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요청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만든 극장

김동호 감독의 말대로 광주극장은 단순히 상영관을 넘어 한국영화의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주인이었던 극장과는 다르게 조선인 대상의 극장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세워진 극장으로 1928년부터 광주의 조선인들 사이에서 영화관 설립의 불이 지펴지기 시작했다. 1933년 영화관 설립을 위한 주식회사가 만들어졌고 2년 뒤에 완성돼 개관했다.

김형수 광주극장 이사에 따르면 '조선인이 주인인 극장으로서 광주극장은 영화 상영 외에도, 창극이나 판소리 등의 공연, 조선인 단체들의 회합 장소로 활용되면서 조선인 지역극장의 정체성을 지켰고 해방 후에는 김구의 강연회를 포함한 정치집회, 음악회, 연극제를 여는 등 문화교육운동의 장소'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지역극장으로서의 특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임검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맨 뒷줄 가운데 자리에 위치한 임검석은 별도의 출입문도 있는데, 현장 검열의 흔적이었다. 임검은 사전 검열이 아닌 상영이나 공연이 진행되는 현장을 점검하는 것으로 행정단속 절차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상영이나 공연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를 찾아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광주극장 김형수 이사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를 찾아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광주극장 김형수 이사성하훈

단관극장의 역사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었던 서울 단성사가 2008년 문을 닫은 이후 광주극장이 이어오는 중인데,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는 극장의 가치와 함께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마련했다.

오는 11월 16일까지 한 달간 진행되는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는 20세기 영화사의 전환점이자 수많은 감독에게 영감을 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집중 조명한다. 그 원류에서 출발해 이후 어떻게 계승·발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통해 네오리얼리즘의 의미와 역사적 울림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했다.

상영작 중에는 예술가 장 르누아르 감독에서 동시대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까지 시대의 범위를 넓힌 작품들과 봉준호 감독의 연출작 3편과 함께 직접 추천한 영화들도 포함됐다. 영화제 기간 중에는 봉준호 감독도 직접 광주극장을 찾는다.

광주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을 만들어낸 두 편의 작품과 초저예산 블랙코미디로 한국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증명한 노영석 감독의 데뷔작도 상영되며 정성일, 한창욱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 그리고 뮤지션 성기완, 최고은 등 다양한 게스트가 함께하는 토크와 콘서트 등 관객과의 다채로운 만남이 준비돼 있다.
광주극장 김동호 김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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