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을 평양으로 둔갑, 100여 명 살린 실화

[비평] <굿 뉴스>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굿뉴스>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을 마술사의 무대 앞에 세운 후 말한다.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음. 다만, 모든 등장인물과 상황은 상상에 의한 허구임. 그렇다면 진실은?"

이 능청스러운 자막은 변성현이라는 마술사가 관객에게 건네는 인사다. 우리는 이제부터 1970년 요도호 납치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무대에 올렸다가 결국 사라지게 하는 거대한 마술 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수행하는 것은 삼중의 마술이다.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둔갑시키는 역사적 사건 자체의 마술, 그 사건을 다시 영화로 재현하면서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는 영화적 환술, 그리고 역사에서 지워진 이름들을 잠시 소환했다가 다시 어둠으로 돌려보내는 망각과 기억의 마술. 변성현 감독은 이 세 겹의 마술을 통해 영화라는 매체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일어난 사실과 약간의 창의력, 믿으려는 의지"

 영화 <굿뉴스> 스틸.
영화 <굿뉴스> 스틸.넷플릭스코리아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 아무개(설경구)는 마술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일어난 사실과 약간의 창의력, 믿으려는 의지." 이 세 가지가 완벽한 거짓말을 만든다는 그의 말은 곧 이 영화 자체의 작동 원리와도 일치한다.

1970년 일본 적군파가 북한으로 가기 위해 항공기를 납치한 것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한국 정보당국이 통신 주파수를 가로채고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위장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약간의 창의력'이 배어있다. 그리고 납치범들이 눈앞의 김포를 평양으로 믿고자 했던,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믿으려는 의지'다.

하지만 변성현 감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하이재킹된 비행기를 다시 하이재킹한다는 이중 전복의 구조는 그 자체로 메타적인 마술인 것이다. 실제 사건을 영화화하여 이야기로 만드는 매체의 구조와 같다. 납치범들이 일본 정부를 속여 비행기를 하이재킹하고, 한국 정부는 하이재킹한 납치범들을 속여 비행기의 착륙 위치를 하이재킹한다. 영화는 이 모든 속임수를 다시 한 번 뒤집어 관객에게 제시한다. 각 층위의 속임수가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쾌감을 맘껏 휘두르는 마술사의 트릭에 영화 속 적군파처럼 관객 또한 이러한 마술에 속아 넘어가게 된다.

변성현의 부지런한 마술

 영화 <굿뉴스> 스틸.
영화 <굿뉴스> 스틸.넷플릭스코리아

변성현 감독은 스펙터클 없이도 136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분투한다. 그의 영화에 붙는 수식어는 '트렌디한 연출' 혹은 '세련된 연출'이다. 이러한 수식어의 비결은 시각적 디테일에 있다. 인물이 처한 상황을 강조시키는 대비되는 조명, 하이재킹한 비행기를 다시 하이재킹하기 위해 무선통신으로 대결하는 남과 북의 대치를 재치 있게 표현한 컷, 한 공간 안에서도 빛과 그림자를 교묘하게 배치해 인물들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미쟝센은 이미지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한 듯 하다.

교차편집도 돋보인다. 공중에 있는 비행기와 지상의 작전실, 과거의 회상과 현재의 긴장을 오가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편집을 통해 사건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특히 무선 통신을 하이재킹하려는 남과 북의 대결을 마치 서부극의 총잡이 대결처럼 비유한 장면은 영화사적 오마주와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고루 갖춘 장면이다. 종종 주성치 영화를 연상시키는 과장된 몸짓, 70년대 영화의 거친 질감을 재현한 화면 등은 관객에게 지속적인 시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5개의 챕터로 나뉜 구성 역시 공연의 막과 막 사이를 연상시킨다. 각 챕터마다 톤과 리듬을 미묘하게 변주하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은 놓치지 않는다. 관객의 주의력을 계속해서 환기시키는 감독의 전략이다.

모든 것을 까버리는 전방위 블랙코미디

 영화 <굿뉴스> 스틸.
영화 <굿뉴스> 스틸.넷플릭스코리아

변성현 감독의 또 다른 마술은 비극적 상황을 희극으로 묘사하는 데 있다. 100여 명의 목숨이 걸린 하이재킹 상황은 심각한데 영화는 끊임없이 이상한 상황을 연출한다. 한국 중앙정보부장은 달면 삼코 쓰면 뱉듯이 해당 상황 가운데에서 자기이익만 챙기며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일본 관료들은 체면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납치범들은 일본 만화 '내일의 죠'를 외치며 소위 새하얗게 불태우는 혁명을 하고자 한다.

특히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둔갑시키는 과정은 영화의 메인 테마다.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올리는 것도 모자라 여학생들을 동원해 북한 주민을 연기하게 하고, 영어 간판을 급하게 가리며, 심지어 흑인 미군이 눈에 띄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국가의 체면이 걸린 심각한 작전임에도 영화는 이를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그려낸다.

권력의 허상, 이념의 공허함, 영웅 서사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대사들이 즐비하지만 심각한 톤으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납치범들이 일본도를 휘두르며 공산주의 혁명을 외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그들의 신념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남 탓'이라는 관료들의 행태는 실제 사건으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풍자다. 변성현의 마술은 이렇게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를 비추는 거울을 만들어낸다.

물론 <굿뉴스>의 토대는 블랙코미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마술은 '이름의 정치학'이다.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의 이름은 '아무개'다. 이름이 없다는 것이 곧 이름이 되는 이 역설적 존재는 마치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처럼 보인다. 그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고, 모든 것을 조종하지만 이야기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아무개와 대비되는 인물은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이다. 그는 자신을 역사에 남기고자 한다. '고명'이라는 이름처럼 화려하게 떠오르고 싶어 하는 그의 욕망은 결국 좌절된다. 실존 인물 채희석 관제사의 운명을 반영한 결과다. 사건 해결의 일등공신이었지만 정부는 그의 군적을 지우고 존재 자체를 부정했듯이 말이다.

변성현 감독의 마술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영화는 채희석이라는 지워진 이름을 서고명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탈바꿈하여 스크린 위로 잠시동안 소환한다. 관객은 2시간 동안 그의 존재를 목격하고, 그의 숨겨진 노고를 인정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그는 다시 '아무개'가 되어 사라진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과 지우는 것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 마술은 잔인하면서도 아름답다.

영화는 곧 달의 뒷면을 보여주는 마술

 영화 <굿뉴스> 스틸.
영화 <굿뉴스> 스틸.넷플릭스코리아

'굿뉴스'라는 제목의 진정한 의미는 쓰디쓴 반어에 있다. 아무개는 서고명에게 찾아가 사람들이 살았고, 너 또한 죽지 않았다는 것이 '좋은 소식'의 전부라고 말한다. 납치범들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북한으로 갔고, 인질들은 풀려났으며,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었던 서고명과 아무개는 존재 자체가 부정되었고, 권력자들은 책임을 회피했다.

모든 것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굿뉴스>는 씁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아남는다. 누군가에겐 아무개가 되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굿뉴스'라고 자위한다. 영화라는 마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비극적 아이러니를 잠시 무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마술의 또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역사의 달을 돌려 뒷면을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는 늘 달의 앞면, 즉 공식적인 역사와 거기에 새겨진 몇몇의 이름들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움직이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은 영화 속 '아무개'처럼 달의 뒷면에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 아닐까.

<굿뉴스>의 마술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듯한 깔끔한 마술이지만, 사실은 은은하게 무대 위에 무언가를 남겨두고 퇴장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잔향이다. 이름 없는 관제사, 얼굴 없는 요원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영웅들.

변성현 감독은 가려진 이들을 무대 위로 불러 모아 잠시나마 조명을 비춘다. 비록 역사는 그들을 기억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다시 한 번 달의 뒷면에도 누군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것이다. 그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있었기에 '최악의 뉴스'가 '굿뉴스'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이것이 영화라는 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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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넷플릭스 요도호 변성현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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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동자 겸 플랫폼 노동자. 음악-영화-책 감상이 유일한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