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의 한 장면
디즈니플러스
17일 종영된 사극 <탁류>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을 파국으로 몰고 간 것은 지도 문제다. 드라마 속의 귀족인 대호군(최원영 분)은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겠다며 화공들을 모아 은밀히 대형지도를 제작한다. 한양의 거상인 최정엽(유성주 분)는 이 작업을 거든다.
이들과 적대적 관계인 오 대감(이재용 분)과 포도청 종사관 이돌개(최귀화 분)는 지도가 제작 중인 정황을 파악하고 대호군과 최정엽을 역적으로 몰아붙인다. 그런 뒤 역모죄의 증거로 삼고자 지도를 강탈하려 하고, 이 과정에서 대호군은 피살되고 최정엽은 죽음을 맞이한다.
청렴한 종사관인 정천(박서함 분)은 위기에 처한 대호군과 최정엽 일가를 돕다가 피살되고, 정천의 친구인 장시율(로운 분)은 한양 남쪽 마포나루의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 최정엽의 식솔들을 구해낸다. 덕분에 최정엽의 딸인 최은(신예은 분)은 지도를 무사히 간직한 해 외지로 도피한다.
지도 제작의 비하인드
<탁류> 최종회가 묘사한 이런 장면들은 지도 문제에 관한 많은 한국인들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은 조선왕조가 개인적 용도의 지도 제작이나 소지를 엄격히 규제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본 뒤 국가기밀을 누설한다는 혐의를 씌워 처벌하고 지도 목판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회자되고 있다.
지난 5월 21일과 22일의 한미 통상협의에서 미국이 구글의 고정밀지도 반출에 대한 승인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구글은 2007년과 2016년에도 동일한 요청을 했다. 애플 역시 고정밀지도 반출에 대한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데서도 나타나듯이, 옛날뿐 아니라 오늘날도 지도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다. <탁류>의 시대적 배경인 16세기 후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지도 제작 및 소지를 엄히 처벌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실제 역사와 거리가 멀다. 명백히 반역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우선, 김정호에 관한 전설부터가 과장돼 있다. 그가 지도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는 이야기의 출처는 일제강점기 교과서인 <조선어독본>이다. 이 책은 획기적인 지도를 제작한 김정호가 흥선대원군에 의해 투옥됐다고 기술했다. 김정호는 근대적 정신을 갖고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냈지만, 이를 알아보지 못한 무지몽매한 권력자들이 그를 박해했다는 내용이 이 교과서에서 유포됐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었다. 김정호는 정부의 미움을 살 이유도 없고 미움을 산 일도 없었다. 기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그가 도리어 조선 조정의 도움을 받아 지도를 제작했다는 점뿐이다.
1876년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이 체결됐다. 이때 조선 측의 전권대신이 신헌(1810~1884)이었다. 무관 출신인 신헌의 글을 담은 <신대장군집>은 김정호의 지도 제작이 신헌의 지원 속에서 이뤄졌음을 알려준다. 신헌은 김정호에게 자료를 제공했다. 이 자료는 지금의 국가안전보장회의인 비변사와 왕립학술기관인 규장각에 있던 것들이었다.
신헌은 한양을 지키는 금위영대장과 임금을 보좌하는 승지 등을 역임했다. 신헌은 이런 지위를 이용해 비변사 및 규장각 자료를 빌린 뒤, 그 내용을 정리해 김정호에게 제공했다. 민간인의 지도 제작이 엄격히 규제됐다면 고위 관료가 이런 일을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금기시됐다면, 그런 사실을 기록에 남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신헌은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받았다. 그래서 대원군 섭정 기간에 형조판서·병조판서·공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김정호가 대원군의 미움을 받아 죽었다면, 신헌은 자신이 김정호를 도운 사실을 기록에 남기는 일을 꺼렸을 가능성이 있다. 신헌은 대원군이 청나라 땅에 유폐돼 있기는 하지만 그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었던 188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생전에는 대원군을 배신하기가 힘들었다.
일제의 만행 중 하나
▲<탁류>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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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는 김정호가 조선왕조 권력자들의 탄압을 받았음을 강조하는 동시에, 김정호의 진가를 알아주고 이를 활용한 것은 조선왕조가 아니라 일본이었다고 부각시켰다. <조선어독본>은 대동여지도가 러일전쟁에도 활용됐다고 기술했다. 총독부가 이렇게 한 의도에 대해 <교양학연구> 2021년 제15집에 실린 이대화·한미라 중앙대 교수의 논문 '대동여지도로 읽는 19세기 조선'은 이렇게 지적한다.
"조선총독부의 의도는 19세기 조선시대를 황량한 곳으로 묘사함으로써, 당시 조선이 낙후된 공간이었으며 그것을 개발한 주인공은 바로 일본임을 암시하려 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위정자는 김정호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무능한 면모를 드러냈던 반면, 일본은 그 가치를 바로 식별하여 활용하였음을 보여주어 조선왕조를 폄하하고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은연중 강조하였다."
김정호는 지도 제작에 관심을 가진 수많은 조선시대 사람들 중 하나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 민간인들도 지도를 필요로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작에 참여했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더욱더 그랬다. <한국학논집> 2017년 제69집에 실린 정은주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장서각 선임연구원의 논문 '조선 지식인의 지도 제작과 지리 인식'은 그런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조선에 전래된 서구식 세계지도는 지식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모사되었고, 그에 따른 도설(圖說)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초기에는 한양과 근기(近畿, 수도권) 지역의 실학자를 중심으로 전파되었으나, 18세기 후반에는 지방의 지식인들도 서구식 세계지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세계지도가 위백규·하백원·최한기 등 전라도에 근거를 둔 낙론계 지식인들이 제작했다는 점은 앞으로 연구에서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의 지도 제작은 그 자체로써 불온한 역적질이 되지는 않았다. 남들이 안 보는 데서 지도를 그리는 일이 반역의 직접적 증거가 되지는 않았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지도 제작에 연루돼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는 결말을 보여준 <탁류>의 스토리 전개는 조선시대의 실상과 동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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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