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영화계 일자리 잠식? 오히려 기회가 될 것"

[인터뷰] <중간계> 강윤성 감독, AI 연출 권한슬 감독

 영화 <중간계>의 연출을 맡은 강윤성 감독(왼쪽)과 AI 연출을 맡은 권한슬 감독.
영화 <중간계>의 연출을 맡은 강윤성 감독(왼쪽)과 AI 연출을 맡은 권한슬 감독.㈜포엔터테인먼트

인간의 학습 및 추론 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기술이 상업영화에까지 뻗치고 있다. 한국영화 중 그 첫 사례 <중간계>의 창작자들은 두려워만 할 게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영화 <범죄도시> 1편의 주역 강윤성 감독은 기성 창작자, 그리고 해당 작품의 AI 연출을 담당한 권한슬 감독은 신진 창작자라는 점에서 이 한목소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14일 오후에 만난 두 사람은 영화 <중간계>가 AI를 활용한 첫 상업영화인 만큼 중요한 실증 사례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한 장례식장에서 시작된 여러 사람들의 추격전, 그 과정에서 사망한 이들이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간계에서 떠돌게 되며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판타지 액션 장르로 구분할 수 있다. 평소였으면 면밀한 VFX(특수효과)와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거쳐야 할 것을 AI로 대체했다. 총 13회차의 비교적 짧은 촬영 일정에서 AI 활용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사례인 것만은 분명하다.

"AI 너무 두려워할 필요 없어"

공개된 작품은 전체 내용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투자 및 제작 여건상 우선 절반의 이야기를 완성해야 했던 탓에 <중간계>는 1편이 유의미한 성공을 거둬야 2편 제작이 가능한 구조다. KT 측의 AI 단편 영화 의뢰를 받은 뒤 본인이 오래 품고 있던 작품을 꺼냈다고 한다. 25년 전 감독 데뷔작으로 생각했던 <뫼비우스>라는 제목의 글을 새롭게 고친 게 지금의 결과물인 것. 강윤성 감독은 "기승전결 중 기승에 해당하는 부분만 공개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게 큰 부담이었지만, 극장에서 걸리는 상업영화로 AI가 활용 가능하다는 실증을 해보고 싶었다"며 기획 취지부터 밝혔다.

기획이 확정된 후 권한슬 감독이 합류했다. <원 모어 펌킨>이란 AI 단편으로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후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받은 권 감독은 <중간계>의 AI 연출을 담당했다. 12간지 동물로 형상화된 저승사자, 중간계에 존재하는 사천왕, 광화문 광장을 지키는 해태 등 여러 크리쳐들의 액션과 차량 충돌과 폭발 등이 AI로 생성된 결과물이다.

여기에 부족한 부분은 CG와 VFX 효과를 입히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고 한다. 권 감독은 "단순히 AI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게 아니라 색보정과 VFX 효과와 연결하는 기술이 필요했다"며 "제가 세운 회사(스튜디오프리윌루전, 기자 주)에서 선행 연구를 거친 뒤 작품에 적용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아무래도 실사영화에 AI를 접목하는 선례가 없기에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권 감독 말대로 실사와 AI 영상 합성은 어디에도 참고 자료가 없기에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찾은 방법이 촬영장에 AI 담당자와 CG 담당자가 상주하면서 구현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었지. 주로 AI를 활용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나머지를 CG와 VFX로 만진다는 걸 그렇게 정하게 됐다. 촬영 방식이 그래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린 스크린을 배경에 둔 채 연기하고 나중에 CG를 합성하는 방식이 아닌 현장서 배우들에게 시선을 잡아줄 그린볼만 띄우고 직접 연기하게 한 것만 빼고 말이다." (강윤성 감독)

영상 및 특수효과 영역에 AI를 활용한다는 방침은 일견 캐릭터 생성과 배우 연기까지 AI에게 맡기는 해외 흐름과는 사뭇 다르다. "AI는 창작의 도구일 뿐이지 창작자의 역할을 재현할 수 없다"는 강윤성 감독의 생각이 반영된 결정이었다. 강윤성 감독은 "지금 아무리 잘 만든 AI 영상을 봐도 거기 나오는 인물들에게 아무런 감흥을 못 느끼는 건 인간적 면모가 없기 때문"이라며 "미래에도 AI는 인간의 창작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라 소신을 밝혔다.

"촬영하면서 스턴트 연기는 곧 불필요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와이어에 사람을 매달고 날리는 건 AI를 통해 충분히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으니. 하지만 적은 제작비로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면 그 인력들이 직장을 잃는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영화 자체가 안 만들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잖나. AI에 대한 너무 큰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강윤성 감독)

권한슬 감독은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역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I가 널리 활용될수록 신인 등용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제작비를 감축하면서 그만큼 콘텐츠는 더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오히려 신인들의 기회가 더 늘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권 감독 본인 또한 연출을 전공하고 데뷔를 노리며 시나리오를 써왔고 심지어 2022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창작지원사업 공모에 2등상까지 받았지만 데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너무 방대하다는 이유였다. CG를 공부하다가 AI를 알게 되며 방향을 잡은 게 권 감독에겐 큰 전환점이 됐다.

"생각으로 AI는 마법과도 같은 면이 있다. 내 생각, 구상이 영화화되기 위해 결국 자본이 있어야 하나 우울한 시기를 보내던 차에 AI를 발견했다.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짧은 영상을 만들며 투자도 받게 됐다. 물론 영화 자체에 대한 기본 공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편을 만들고, 공모에도 참여하는 노력과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AI 연출이 가능할 수 있었다. 저 또한 창작자의 영역을 AI가 해낼 것이라 보지 않는다. 설사 AI가 감정 연기를 한들 대중이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CG 등이 해왔던 분야는 창작이 아닌 방법론에 해당하기에 AI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권한슬 감독)

물론 AI 기술이 현재까지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상업영화 과정에서 한계는 있다. 일관된 이미지의 연속이 힘들거나 4K 화질이라도 색온도나 심도 차이로 큰 스크린에선 어색하게 보이는 것은 과제다. 권 감독은 "이마저도 극복한 기술이 현재 나와 있다"며 "향후 2년이 AI 기술의 정점이 되는 시기일 것"이라 내다봤다.

 13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AI 활용 장편 영화 '중간계' 기자간담회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강우, 방효린, 변요한, 강윤성 감독, 임형준.
13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AI 활용 장편 영화 '중간계' 기자간담회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강우, 방효린, 변요한, 강윤성 감독, 임형준.연합뉴스

영화의 본질, 더 파고 들어야

<중간계>는 지난 5월 촬영을 시작해 개봉까지 약 5개월이 걸렸다. AI로 작업한 게 약 800여 컷이라고 한다. 권한슬 감독은 "이걸 CG 작업으로 했다면 1년은 걸렸을 텐데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참여해도 주어진 시간에 다 소화 못했을 것"이라 강조했다. 동시에 그 또한 "AI든 다른 방식이든 그런 제작 방법보단 콘텐츠의 본질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라며 "누구나 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때라면 무엇을 만드냐를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영화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두 감독의 주장이었다. <중간계>에 사용된 AI 프로그램만 수십개라지만, 단순히 명령 프롬프트만 넣어서 구현한 게 아니라 렌즈 크기, 심도값, 앵글 등 전문 촬영 용어를 적확하게 입력했어야 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애드리브, 순간적인 감정 연기와 맥락에 맞는 표현은 AI라 하더라도 쉽게 구현할 수 없는 영역인 셈이다.

일례로 건달 캐릭터로 분한 이무생은 캐스팅 자체도 파격이었지만 일부 장면에서 번뜩이는 애드리브로 극중 효과를 더하기도 했다. <중간계> 언론 시사 후 잠시 만났던 그는 기자에게 "제 캐릭터 결에 맞는 표현을 생각하면서 애드리브를 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상업영화 중 첫 시도라지만, <중간계>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번 작품이 어느 정도 흥행해야 후반부가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이다. 손익분기점은 약 20만 명 수준. 강윤성 감독은 "생각하시는 것보다 영화시장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은 현실인데 누구 하나가 잘돼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많은 영화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게 필요하다"라며 "<중간계>를 공개하는 것도 미약하게나마 그런 활력을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싶은 마음 때문임을 알아달라"고 전했다.

권한슬 감독 또한 "산업 영역에서 AI 작품의 실증 사례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라며 "미국에서도 CG를 대체하는 흐름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는 만큼 저희 또한 K 콘텐츠의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약소하지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중간계 강윤성 권한슬 AI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