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CJ ENM
디지털 문명의 급격한 발전은 소외 계층을 만들었고 아날로그형 인간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을 겨우 배웠는데 바로 키오스크를 배워야 한단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대화에 끼지 못하고 키오스크를 못하면 도태된 인간 취급받는다.
막 한 고개 겨우 넘었는데 다음 고개를 넘으려 고군분투한다. 어르신 한 분을 잃는 것은 도서관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세상의 이치를 습득한 연륜은 쓰임새를 다했다. 지혜와 경험의 축적인 도서관은 디지털화되어 손가락만 두드리면 원 없이 펼쳐진다.
산업 전반에 디지털로 전환되면 인간은 일하지 않고 무엇을 할까. 한편에서는 여가를 즐기며 유희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면 된다고 말한다. 즉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수의 인간은 놀지 못해 애석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오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박찬욱 감독 또한 AI의 등장에 의문과 피로, 공포를 느낀 듯하다. "영화인들도 한 작품 끝나면 다음 작품 들어갈 때까지 잠재적 실직 상태에 놓인다"며 갑작스러운 실직은 개인과 가정, 사회로 퍼지는 독소 같은 존재라고 빗대어 말했다. 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AI보다 더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쓰는 게 과제다"라며 고민을 털어놓은 적 있다.
해외에서 먼저 들고일어났다. 할리우드에서 먼저 시작된 배우 작가 조합 파업은 AI가 드리운 혁신과 불행을 감지한 창작자의 생존권 문제로 불거졌다. AI로 인한 인력 감축은 영화 산업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을 우려한 사례로 분석된다. 최근 AI 배우 '틸리 노우드'의 등장은 영화계 파란을 예고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대체인력이 될 것인지, 발전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도구가 될 것인지. 생각보다 빨리 판가름 날 것이다.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펼친 이세돌은 'AI 시대 처음과 끝만 살아남고 중간은 사라질 것'이라며 서늘한 발언으로 경고하며 "AI 시대에는 어느 회사에 취업하느냐가 아니라 창업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성형 AI가 학습과 추리, 연산, 검색을 도와주는 현 상황에서 앞으로 인간의 영역은 무엇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 100세 시대 늘어난 수명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일자리 감소와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증가는 사회적 멸종을 피하기 힘들다.
예정된 변화, 버티기만 하다가는...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CJ ENM
영화 속 어리석은 가장들은 오로지 자기 밥그릇을 다시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빠르게 일자리가 사라지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발등에 불만 끄면 된다는 우매한 사고다. 만수의 분신과도 같은 범모, 선출, 시조는 모두 중간 관리자다. 이들은 한꺼번에 실직했다. 업계를 선도하는 최상위와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 부를 쌓은 부자와 가장 가난한 사람만 남는 양극화 사회가 펼쳐진다면 어떨까.
어쩌면 변하지 않으려는 만수의 붕괴는 당연한 결과다. 어렵게 얻은 집과 행복이라 믿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던 어리석은 가장의 폐단이다. 자기 파괴와 가정의 파멸인지도 모른 채 고집대로만 밀고 나간 처신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이다. 나이 먹을수록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 같고 자신감은 줄어든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장수의 혜택은 저주가 되고, 잉여 시간은 우울한 올가미일 뿐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루 종일 들으며 음악 카페를 차리라던 아내의 잔소리에 '종이 밥만 25년 먹은 사람이야. 나는 그렇게 살게 되어 있어'라고 변명을 늘어놓는 남편. 하던 일, 가던 길만 좇으려던 범모의 행동에 만수가 겹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는데 세상 탓만 하고, 안주하려 생각은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잡지 못한다.
<어쩔수가없다>는 남성성의 하락을 산문 형식으로 채우는 영화다. 고지식한 남성들과 달리 현실적이고 미래 전망에 능한 통찰력 갖춘 여성들이 함께 등장한다. 미리는 가장의 짐을 함께 짊어지자며 격려하는 동조자, 아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주겠다며 설득하는 해결사, 리원은 부서질지 모를 미래를 경고하는 예언자 같다. 이토록 주변에서 도와주겠다며 손 내밀지만 고집스럽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은 안주하려고만 하니 답답하다.
박찬욱 감독에게 영화는 여러 의미를 투영한다.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하려던 일생의 숙원이자, OTT에 밀린 극장을 살릴 구원투수의 무게감,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고민까지 담은 개인적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영화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관객 각자의 상황과 생각에 빗대 해석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뼈 때리는 통렬함과 처절함,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영화란 인생과 분리되지 않고 흡수되어 마주 보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보를 쉽게 얻는 편리한 기술이 앞으로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까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진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본지 꽤 되었음에도 오래도록 잔상이 남아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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