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명절 연휴는 한국 영화시장의 대목이었다. 명절 극장가는 가족 단위 관객이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요구하고 제작사들은 수요에 맞춰 안전한 코미디를 공급한다. 2025년 추석 연휴의 첫날에 개봉한 영화 <보스>도 이런 영화산업의 관성적인 전략에 발맞춰 개봉시기를 정한 셈이다.
문제는 영화의 장르가 조폭 코미디라는 점이다. <보스>는 2000년대 조폭 코미디의의 흥행 공식을 차용하여 약간의 변주를 주는 전략을 택했다. 이 영화를 보면 <두사부일체>(2001)와 <가문의 영광>(2002)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조직의 보스가 되길 거부하는 조폭들이라는 설정 자체는 참신한 역발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20년 전 조폭 코미디가 기댔던 낡은 전제가 자리한다.
조폭을 무지몽매한 존재로 희화화하고 그들의 엉뚱한 욕망(댄서, 중식당 사장)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쉽게 미소 짓지 못했다.
참신한 역발상만 남았다
▲영화 <보스> 스틸컷.
(주)하이브미디어코프
조직 간부들이 조직의 보스가 되길 꺼려하는 소위 '보스 양보 전쟁'은 분명 참신한 소재다. 조직의 2인자인 순태(조우진)는 중식당 프렌차이즈로 전국을 평정하길 원한다. 징역 3년을 살고 나온 강표(정경호)는 탱고 댄서를 꿈꾼다. 유일하게 보스 자리를 원하는 판호(박지환)지만 정작 아무도 그를 보스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에 조직원으로 잠입한 언더커버 경찰 태규(이규형)까지 가세하면서 영화는 보스 자리를 둘러싼 양보 전쟁이 벌어진다. 기존 조폭 영화의 권력 쟁탈 구도를 전복시킨 선택이다.
하지만 참신한 설정은 영화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영화의 표면에서만 겉도는 느낌이다. 2000년대 조폭 코미디는 조폭을 단순히 희화화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을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배치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냈다. 조폭을 학교에 등교시키거나 사찰에 가서 생활을 하게 만들면서 발생하는 충돌과 오해가 웃음의 근원이었다. 일반 사회에 적용할 수 없는 조폭의 논리가 공동체와 상충하며 코미디가 발생한 것이다.
반면 <보스>의 조폭은 여전히 조폭의 세계에만 머문다. 조직의 보스를 꺼려하는 인물들 모두 조직 내부의 권력 구도 안에서만 움직인다. 러닝타임 98분동안 조직 내부의 다툼과 언더커버 경찰의 정체 들키기만 반복된다.
'명절 코미디'의 역할을 다했을까?
▲영화 <보스> 스틸.
(주)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보스>는 명절 가족 관객을 겨냥했다. 15세 관람가 등급에 맞춘 순화된 폭력, 부담없는 러닝타임, 조폭이지만 무해한 캐릭터 설정이 이를 증명한다. 조직원들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거나 마약을 활용하는 등 극도로 폭력적인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조폭은 그들의 세계 내에서 주먹으로 싸운다. 조폭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조직 간부들은 짜장면을 배달하거나 탱고를 추고 싶어하는 선에서 그치며 안전한 코미디의 공식을 착실히 따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안전한 선택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이 됐다. 명절 코미디는 가볍되 얕아서는 안 되고, 무해하되 무기력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스>는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안전한 재탕과 그러지 못한 감흥
▲영화 <보스> 스틸.(주)하이브미디어코프
<보스>는 개봉 첫날 약 23만 8천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이후 연휴기간 동안 1위 자리를 지키며 10월 8일 기준 누적관객 155만명을 돌파했다. 흥행 추이만 본다면 <보스>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호평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영화를 향한 평가는 냉혹하다.
영화가 제안한 설정 자체는 충분히 관객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걸 150만 관객이 증명한다. 분명 관객들은 영화의 특별한 아이디어에 이끌렸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설정을 코미디적인 상황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연출, 배우들의 역량에 기댄 코미디, 설정이 약속한 웃음 포인트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한 각본이 영화의 특별함을 희석시켰다.
흥행성적과 혹평이 공존하는 이 기묘한 성적표는 <보스>가 관객들이 원하는 웃음을 깔끔하게 해소시키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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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동자 겸 플랫폼 노동자. 음악-영화-책 감상이 유일한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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