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폭풍 속으로>, <허트 로커> 등 걸출한 액션 영화의 연출을 맡으며 할리우드에 이름을 아로새긴 명감독 캐스린 비글로가 돌아왔다. 미국 본토를 향해 출처 불명의 미사일이 날아온다는 설정으로 이목을 끄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스틸컷
넷플릭스
절제된 무시무시함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상당히 얌전한 영화다. 핵전쟁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을 영화의 주 소재로 가져왔음에도 추격, 격투, 폭발 장면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밀도 있게 구성된 캐릭터들인데, 이 방식이 오히려 웬만한 활극보다도 강력하게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본작의 캐릭터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출처 없는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필사적으로 발악하는 모습을 보인다. 적이 확실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반격해야 하나 고민하는 미국 대통령(이드리스 엘바 분)부터 요격 지역에 딸을 둔 국방장관(자레드 해리스 분), 그리고 현장 지휘실을 책임져야 하는 올리비아 워커(레베카 퍼거슨 분)까지. 이들은 침착하게 대응하다가도 개인적인 이유로 낙담하고, 문제를 회피하다가도 갑자기 정신을 차리는 등 실제 인간처럼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미사일 요격에도 실패하면서, 미국 한복판인 시카고에 핵탄두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 바로 이 순간 흥미로운 소재에 불과했던 미사일은 '죽음의 위협'과 등치된다. 피할 수 없는 재앙으로부터 발버둥 치며 죽음의 5단계(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를 거쳐 가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본작의 주요 볼거리이기에,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별개의 '악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운명적 존재로 거듭난 미사일이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 캐릭터의 연인과 가족이 드러나는 등 '정 붙일' 여지를 주면서도 신파극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극도로 절제된 연출을 보여 주면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그 무시무시한 위용을 과시한다.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스틸컷넷플릭스
지금, 미국에 던지는 질문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미사일이 시카고에 떨어지기까지 남은 22분 동안 진행된다. 1시간 반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이 생긴 이유는 그 짧은 시간을, 시점 인물을 바꾸어 가며 세 번 반복해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핵탄두가 떨어지기 직전, 보복 목적으로 전 세계의 핵시설을 폭격할지 말지 고민하는 대통령의 결정이 내려지려는 순간 끊으면서 결말을 열어 놓는다.
그렇다면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용두사미로 끝난 작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본작의 목적이 '핵탄두에 반격하는 것'과 '가만히 있는 것' 사이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위태롭기야 하지만 아직까지도 명실상부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공고히 하는 미국의 역할에 관한 질문이다.
먼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체불명의 미사일'이라는 소재가 관객의 오독을 사전에 차단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미사일을 발사한 주체가 북한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하지만, 이는 끝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그것이 북한이 되었든, 어떤 중동 국가가 되었든 간에 관객들의 마음속에 '만악의 근원'으로 뿌리내릴 대상을 제거한 것이다. 바로 그 절묘한 선택 덕분에, '○○국가가 먼저 평화를 위협했기에 선제타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미국식 논리가 해체된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속에서 '이유 없이'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 이는 지금껏 미국의 군국주의가 타 국가들에 가했던 위협을 그대로 돌려주는 장치다. 미사일이 발사된 이유는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한 번 게시된 전쟁은, 그 원인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모든 시민에게 실존적 위협이 된다. 그러나 지금껏 미국은 적국이 비밀리에 핵탄두를 만들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혹은 테러리스트가 그 국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며 갖은 핑계를 대고 이를 정당화해 왔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평화유지의 논리로 무장한 미국의 군사적 위세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위협이 되는지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미 군산복합체가 끼친 피해를 재구성하면서 '전쟁 피해 포르노'를 만들 바에야, 가해자이던 미국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 극적 상상력으로 주제 의식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폭주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현재를 지적하는, 시의적절한 질문이다. 지난 9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 정부 국방부의 명칭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변경했다.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부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 묵인까지. 2025년의 미합중국은 냉전 직후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과는 사뭇 다른 국가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미국에 묻는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 질서를 유지한다는 계획은 정말 최선인가? 강제로 유지된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지며 미국의 공멸을 가져오진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가?
영화의 3막에서,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들었던 팟캐스트를 인용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본작의 제목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의미가 진정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이너마이트가 가득한 집에 살고 있는 거야.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데 좋다고 그 안에 머문 거지."
캐스린 비글로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의적절한 메시지와 한층 더 매서워진 연출 능력을 보여 주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오는 2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며, 8일부터 일부 극장에서 선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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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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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 이 영화가 던진 시의적절한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