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넘어 아시아 영화 제일의 축제라 꼽히는 부산국제영화제다. 부국제 수많은 여러 섹션 가운데서도 각별한 관심을 받는 섹션이 몇 있다. 혹자는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경쟁부문이라 말하고, 또 누구는 영화제의 얼굴과 지향을 내보이는 개막작과 폐막작이 제일이라 한다. 그러나 관객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영화제 모든 섹션 가운데서 가장 예매경쟁이 치열한 부문이야말로 가장 뜨거운 섹션이라고 하는 것이다. 매년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는 섹션, 그건 누가 뭐래도 갈라 프레젠테이션(Gala Presentation)의 차지가 되고는 한다.
부국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그는 동시대 거장들의 신작과 영화제가 꼽은 화제작을 상영하는 섹션이다. 감독과 배우가 직접 초청에 응해 관객과 만남을 가질 만큼 부국제가 각별히 신경 쓰는 주요 부문이라 할 만하다. 올해 갈라 프레젠테이션을 채운 작품은 모두 네 편으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 이상일의 <국보> 등 전 세계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화제작들이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마지막 한 편이 한국 중견감독 변성현의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가 되겠다. 지난해 졸작이란 평가를 무릅쓰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부국제가 올해 또한 넷플릭스와의 우호적 관계를 과시하는 듯하다.
▲굿뉴스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부국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든 유일한 한국영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상영작 <굿뉴스>는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0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변성현은 2017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2010년대 등장한 한국 영화계의 드문 작가란 평가를 받은 감독이다. 이후 <킹메이커>로 무너져가던 한국영화계에서 몇 안 되는 볼 만한 작품을 만들어내더니 그대로 넷플릭스의 부름을 받아 한국 넷플릭스 영화 가운데 흥행 6위에 올라 있는 <길복순>을 찍어냈다. 전작들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단 평가를 받았음에도 <길복순>은 최근 같은 세계관을 가진 <사마귀>가 나오는 등 장기 프로젝트로 전환될 가능성을 내다본다. 그는 그대로 원작의 감독이자 신작 작가인 변성현의 가치를 입증한다. 그가 <길복순> 이후 내디딘 걸음, <굿뉴스>는 그대로 이름 있는 한국영화 감독 중에서도 변성현과 손잡은 넷플릭스의 선택의 현재를 보여준다.
흥행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작품성에선 혹평을 면치 못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이다. 역대 흥행 1위인 <황야>부터, <#살아있다>, <발레리나>, <무도실무관>, <카터>, <길복순>, <정이>, <승리호>, <전,란> 등으로 이어지는 넷플릭스 역대 흥행작 목록은 범작이란 평가만 받아도 다행이라 할 만큼 하나 같이 민망한 수준을 내보인다. 이들의 이름 뒤에 등장한 작품이 바로 <굿뉴스>다. 공공연히 작품성 논란을 딛고 일어나야만 다음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드디어 작품이라 부를 만한 작품을 만났음을 알도록 한다.
주연은 모두 셋으로 추릴 수 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길복순>까지 변성현과 합을 맞춰온 설경구에 더하여, 작지만 매력적인 영화들에서 존재감을 분명히 한 젊은 배우 홍경, 그리고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그 스타일이 독보적인 류승범까지. 하나하나 매력적인 배우들을 기용해 전에 본 적 없는 조화를 시험한다. 이야기는 1970년대로,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 있었던 실화, 이른바 '요도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항공 351편 항공기가 일본 내 공산주의 게릴라 집단에게 납치돼 북한으로 향하던 중 서울을 평양이라 속인 한국 측의 기지로 김포공항에 착륙해 승객들을 석방한 실화를 소재로써 활용했다.
▲굿뉴스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실화를 바탕으로 적극 변주했다
영화는 그저 실화를 따르지 않는다. 극적 재미와 오늘날까지 유효한 메시지를 구현하기 위해 실화를 적극 변주하길 꺼리지 않는다. 북한과 한국, 일본과 미국까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민감한 사건이자 그 진상이 적나라하게 보도되지 않았던 만큼 변주의 영역 또한 좁지 않았단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영화는 적군파 일당들이 보안이 취약하던 당시 일본 항공기를 공중에서 납치해 북한으로 향하도록 하며 출발한다. 일본도와 폭탄 등을 들이밀며 기내를 장악하고 조종사들에게 평양으로 향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이들의 계획처럼 착착 진행되지 않는다. 우선 항공기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수많은 계기판 가운데서 무엇이 연료 게이지인지조차 알 수 없으니 연료가 부족하다는 조종사들의 말에 깜빡 속아 후쿠오카 공항에 착륙해야 했던 것이다. 다만 승객이 다칠 염려 없이 이들을 제압할 방도를 떠올리지 못한 일본 측은 피랍 항공기가 다시 이륙하는 것을 끝내 막지 못한다.
<굿뉴스>는 이로부터 한국이 승객들의 피랍에 대응하는 과정을 다루었다. 무려 김포를 평양이라 속여 착륙하도록 하고, 착륙 후 문제를 알아차린 이들과의 협상 끝에 승객 대다수를 풀려나도록 하는 과정이 영화의 주된 얼개를 이룬다. 그 전개부터 결말까지가 실화와 대체로 일치한다지만 그 안에 자리한 세부적 진실을 재치 있게 재구성함으로써 변성현 감독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주제의식과 영화적 재미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내는 데 성공한다.
▲굿뉴스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좀처럼 보기 힘든 재기 있는 연출
설경구가 연기한 아무개는 암암리에 활동하는 기획자다. 탈북자 출신으로 주민등록도 없는 그는 김종필을 모티브로 약간의 변형을 거친 듯한 중앙정보부장 박상현(류승범 분)의 수족으로 일하는 존재다. 일본에서 넘어오는 피랍 항공기에 대응하는 작전을 바로 총괄하는데,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수완 좋게 대응하는 솜씨가 보는 이를 감탄하도록 한다.
그가 비장의 무기로써 데려온 것이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 분)이다. 서 중위는 미국에서 최고 수준의 관제교육을 받은 인재로, 북한 항공기를 김포에 착륙시키기 위한 결정적 역할을 맡는다. 항공기 운항을 보좌하고 착륙을 돕는 관제업무가 이토록 긴박할 수 있단 걸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연출은 <굿뉴스>가 얼마나 잘 짜인 작품인지를 내보인다.
<굿뉴스>가 매력적인 건 변성현 감독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다. 제4의 벽을 넘어서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관객에 말을 거는 수법이 수시로 등장한다. 이는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닌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흔하게 마주하기도 어려운 이색적 장치다. 영화는 이 방식을 통하여 지나간 사건을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다. 아무개라 불리는 창조된 기획자가 역사 이면에 충분히 존재할 법한, 실제로도 얼마든지 존재해왔던 얼굴 없는 이의 수고로움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포스터부산국제영화제
탁월함에 이르렀다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이 이와 같은 수법을 통하여 더욱 극적인 이야기로 재창조된다. 정적과 경쟁하며 제 입지를 강화하려는 권력자와 약점을 잡혀 그 수족으로 기능하는 이, 또 제 국민을 살리기 위해 수모를 참는 이들까지, 충분히 실재했을 수 있는 여러 인물들이 오늘의 감각과 지난 시대의 이해를 적절히 조율해낸 효율적 지점에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당대 사회상에 대한 가볍지만 세련된 비판 또한 빼먹을 수 없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모티브로 한 듯한 캐릭터를 전도연이 능청스레 연기하는 대목은 한국 영화 전반을 통틀어도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유쾌한 도발이다.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각하와,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도망치듯 현장을 떠나는 중정부장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 이 극적인 영화가 정통 사극 못잖게 지난 시대 군부독재 정권의 민망한 일면을 내보이고 있단 걸 무시할 수 없다.
리드미컬한 편집과 적절한 선택을 거듭한 연출, 각자가 해낼 수 있는 탁월함에 충실히 다다른 연기까지, <굿뉴스>는 올해 한국영화 가운데 기록할 만한 지점을 이루었다. 한국의 지나간 역사 가운데 영화가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는 지점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되돌아보게 하며, 한국적 소재가 얼마든지 세계와 통하고 경쟁력을 발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졌음을 확인케 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굿뉴스>를 갈라 프레젠테이션 안에 들인 선택은 이 영화가 이룩한 성취에 대한 마땅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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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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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가 주목한 넷플릭스 영화, 이제까지와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