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스에디션 장준오-어지혜 대표스팍스에디션 장준오, 어지혜 대표가 9월 3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스팍스에디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스팍스에디션의 디자인은 케이팝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들의 공동 작업이 시작된 건 케이팝이라는 단어도 없던 2009년 10cm를 통해서다. 당시 홍대 버스킹을 하던 10cm의 음악에 빠진 이들은 단순히 '팬심'으로 다가가 자신들을 "미술 하는 사람들"로 소개하며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두 사람은 10cm의 공연포스터, 미니 앨범에 이어 장준오 대표의 조형작업을 담은 정규1집 앨범 디자인을 했다. 단골 카페서 노트북 1대를 함께 쓰며 머리를 맞대고 작업을 이어간 이들은 15년 전, '스팍스 에디션'을 창업했다.
강산에, 장범준, 로꼬, 3호선 버터플라이 등의 음반과 공연 포스터 이미지 디자인 작업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도전을 마주했다. 지난 2020년 이들의 작업을 눈여겨 보던 '하이브' 측에서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맵 오브 더 솔: 7(MAP OF THE SOUL:7)' 디자인을 의뢰한 것. 멤버 일곱 명의 7주년을 기념하는 의도를 담아달라는 요청에 먼저 시작한 건 각 멤버의 성격·특징 등 '사람 탐구'였다.
멤버들은 성격도 말투도 특징도 지나온 삶의 여정도 다 달랐지만, 'BTS'라는 그룹 안에서 똘똘 뭉쳐있었다. '스팍스 에디션'은 멤버들의 삶을 '7'에 담아내기로 했다. 빛과 그림자, 개인의 특징이 어우러진 걸 일곱 가지 서체로 표현했고, 이를 겹쳐 쓴 '숫자 7'을 표지 정중앙에 담았다.
"(작업이) 너무 재밌었어요. 사실 전에 했던 앨범 디자인은 싱어송라이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이들은 자기 색과 목소리를 그대로 음악에 담고 표현하는 분들이죠. 물론 케이팝 신의 여러 아이돌도 정체성을 담아 앨범 디자인에 녹여야 해요. 다만 좀 더 '산업'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하죠. 국내뿐 아니라 해외 팬도 고려해야 하고, 그룹별로 담아내고 싶어 하는 이미지가 명확하죠. 앨범양 등 물량과 규모도 어마어마하고요." (어지혜 대표)
전 세계 'BTS' 팬들에게 메일이 쏟아질 정도로 팬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해당 앨범은 팬 뿐 아니라 'BTS'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 앨범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업은 알엠의 솔로 앨범인 'Indigo'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청춘' 그리고 '20대의 기록' 등 몇 가지 키워드를 공유받은 후 '스팍스 에디션'은 이를 블루프린트(청사진)를 모티브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이는 감광유제를 바른 종이에 도면을 포개고 햇볕에 말리는 걸 반복하는 방식인데, 복사기가 없던 시절 건축 설계 도면을 복사하는 기술에서 시작됐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햇빛을 받은 부분은 파랗게 되고 햇볕이 닫지 않은 부분은 하얗게 변한다. 그렇게 종이는 얼룩덜룩해지는데 '스팍스 에디션'은 이를 정답도 오답도 없는 청춘의 빛깔로 해석했다.
"'BTS'의 책임감 있는 리더이자 그 자신이 또 한 명의 아티스트인 알엠이 어떻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미래를 그릴지 고민해 봤어요. 청춘은 완벽할 리 없으니 그걸 담아 표현하려고 블루프린트 방식을 선택했죠. 마침 색도 앨범 제목인 '남색'과 맞닿아 있잖아요. 그 작업을 할 땐 날이 좋으면 바로 뛰어나가 햇볕에 작업을 하고 들어왔어요. 알엠씨도 직접 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오셨는데, 안타깝게도 해가 흐려서 하얗게 나와 아쉬웠지만 이 과정 자체가 저흰 다 너무 재밌었어요." (장준오 대표)
'스팍스 에디션'은 아이돌의 음악과 그룹의 정체성을 연결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의미 있다고 봤다. 결과물을 아이돌의 패션 용품, 팬을 위한 굿즈에 반영하며 디자인이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도 흥미롭다고 했다.
스팍스 에디션의 '재미'
▲스팍스에디션 장준오-어지혜 대표스팍스에디션 장준오, 어지혜 대표가 9월 3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스팍스에디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실제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재미'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BTS'와의 작업이 부담스럽거나 어려웠다는 대신 "색달라 재밌었다"고 말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작업 과정을 설명하는 눈에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불태운 종이'라는 콘셉트로 디자인한 그룹 '르세라핌'의 앨범 작업을 설명할 때도, 나영석 사단으로 유명한 콘텐츠 회사 '에그이즈커밍(Egg is coming)'의 브랜딩 작업을 말할 때도 '옥상달빛'의 리브랜딩 작업을 설명할 때도 그랬다. 여러 아티스트 혹은 작업을 맡긴 클라이언트와 소통하고 키워드를 찾아서 시각화하는 방식 모두에 각기 다른 재미가 있다는 거였다. 이토록 다양한 작업에서 어떻게 다 다른 재미를 찾아가는지 그리고 어디서 영감을 찾는지 묻자 어지혜 대표가 '꾸준함'을 언급했다.
"사실 영감을 어떻게 발견하는지 어디서 매번 재미를 찾는지 확신하며 말하긴 어려워요. 저도 잘 모르겠으니까요. (웃음) 다만, 많은 생각을 말로 하면서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어요. 또 다양한 이미지, 발레 등 공연, 건축을 보면서 키워드를 찾아가기도 하고요. 시각적인 자극도 도움이 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꾸준함'이에요. 작업도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하잖아요. 여러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많은 힘을 얻죠. 지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꾸준함은 이 체력에서 나와요.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과 서로 영감을 주고받기도 하고요." (어지혜 대표)
한 번에 적게는 3~4개 많게는 6~7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두 사람은 어제도 오늘도 하루에 하나씩 개인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장준오 대표는 매일 인체를 모티브로 드로잉하고 짧은 글을 쓴다. 음악을 좋아해 3년 전 두 명의 멤버와 밴드(포엣셋)를 결성해 곡을 만든 게 벌써 열곡에 달한다. 자기의 경험을 혼자 간직하기보다 누군가와 나누고 서로의 배움을 중요하게 생각해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서 강의도 한다.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영감을 받고 찾기에 현실의 소식과는 동떨어져 있지 않을까 했는데, 뉴스도 매일 열심히 듣고 읽는다.
"지난 겨울 내내 광장에 있었어요"
▲스팍스에디션 장준오-어지혜 대표스팍스에디션 장준오, 어지혜 대표가 9월 3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스팍스에디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정민
'스팍스 에디션'은 디자인과 현실이 맞닿아 있다고 봤다. 1960년 4.19 민주화 운동부터 2024년 비상계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관통한 시민의 목소리인 '시국 선언문'을 시국선언 포스터로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한 이유도 그래서다. 이들은 '우리의 목소리로 불씨를 피우리라'는 시국선언의 문장을 붉은색의 작은 알갱이로 글씨 형태로 만들어 이를 집회 현장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위에 뒀다. 진동하는 목소리가 글씨의 알갱이를 흐트러트렸는데 이 그래픽을 포스터로 표현했다.
"사실 지난해 겨울은 내내 광장에 있었어요.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죠. 거기서 느꼈어요. 목소리의 힘이 있구나, 이걸 잊으면 안 되겠다고요. 예술이고 뭐고 사회가 평탄치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요. 지난해 그걸 처절하게 깨달았죠. 예전에는 작업할 때 음악을 항상 틀었는데, 지금은 뉴스를 더 많이 들어요.(웃음)" (정준오 대표)
기업 브랜드에서 케이팝 아이돌,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에서 시대를 담은 목소리까지. 작업 하나하나에 자신들만의 지문을 남기듯 정체성을 담은 디자인을 하는 이들은 누구와 가장 작업하고 싶을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장준오 대표가 망설일 거 없다는 듯 답했다.
"라디오헤드 앨범요. 콜드플레이도 하고 싶고, 메탈리카 앨범도 해야죠. 밴드 음악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케이팝이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니 이들 밴드와 협업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뭐가 됐든 이 일을 계속하고 싶고요. 누구보다 우리(스팍스 에디션)가 스스로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제일 재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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