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들김연경
MBC
김연경은 지난 시즌 소속팀 흥국생명을 6년만의 통합우승으로 이끌며 '라스트 댄스'를 장식했다. 김연경은 마지막 시즌도 만장일치로 MVP를 차지하며 데뷔와 은퇴시즌에 모두 통합 MVP를 받은 최초의 선수라는 기록도 세웠다. 은퇴를 앞두고 김연경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챔피언결정전에서 2연승하고 3차전을 앞두고서는 저의 공식적인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이상했다. 그런데 경기를 연이어 지면서 '감성팔이는 그만해야겠다. 경기에 집중하자'라고 생각했다. 최종전을 앞두고서는 '오늘이 마지막 경기인데'라는 생각은 많이 안 했다. 끝나고 나서는 '이게 정말 마지막인가' 싶어서 실감이 안 나더라."
대한민국에 여자배구 열풍을 일으켰던 김연경은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모두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영광의 선수시절을 마무리했다. 혹시 지금이라도 다시 선수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김연경은 "선수들 경기하는 거 보니까 다시 뛰어도 될 것 같기도 하다. 서태지와 아이들도 은퇴를 번복했지 않나. 많은 팬들이 은퇴번복을 기다리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은퇴를 번복할 가능성은 100% 없다. 오래 뛰었다 보니 이제 관절의 나이가 있다.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니까 99%로 하자"며 미소를 지었다.
천하의 배구여제도 처음부터 스타는 아니었다. 배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김연경은 오히려 또래 선수들에 비하여 유달리 작고 연약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주전과 거리가 멀었던 김연경은 고교 진학을 앞두고 바로 경기를 뛸 수 있는 일반고로 갈지, 후보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은 명문고를 가야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김연경의 은사였던 김동열 감독(배구선수 김수지의 부친)은 고민하던 제자에게 "너는 분명히 잘될 거다. 내 말을 믿고 배구명문으로 가라"고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연경은 은사의 조언을 따라 한일전산여고(현 한봄고)로 진학했고, 그날의 결정은 오늘날의 김연경을 만드는 전환점이 됐다.
또한 김동열 감독의 예언처럼, 김연경은 고교 진학 이후 갑자기 키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김연경의 기량과 위상도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후보에서 주전이 된 김연경은 전국배구대회 우승과 MVP를 석권하며 국가대표에도 발탁되는 등 초특급 유망주로 부상했다. 2005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흥국생명에 지명되어 프로배구에 입단하게 된다.
2005-06시즌 김연경은 데뷔 첫해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수립한다. 최하위권이었던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입단한 이후 순위가 수직상승하며 여자배구의 강호로 부상한다. 하지만 신인 시절부터 이미 슈퍼스타였던 김연경은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 때문에 일부에서는 다소 '건방지다'는 오해를 듣기도 했다.
"나이도 어린데 건방지고 건들거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건방졌다는게 예의범절을 어긴 문제는 아니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제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진정성있게 이야기하니까 나중에는 선배들도 받아들여주셨다."
국내 무대가 좁았던 김연경은 2008년 일본 JT 마블러스를 시작으로 튀르키예 페네르바체SK 등 여러 해외 구단에서 활약했다. 김연경은 가는 곳마다 정상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올라섰다. 튀르키예 시절에는 구단주로부터 귀화 제안까지 받았다고.
김연경의 커리어에서 역시 국가대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김연경을 앞세운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강호 이탈리아와 브라질 등을 꺾고 4강신화를 달성했다. 하지만 3.4위전에서 숙적 일본에게 완패하며 아쉽게 동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당시 김연경은 선수생활에서 처음으로 경기에서 지고 그렇게 펑펑 울어봤다고.
하지만 김연경은 런던올림픽에서의 득점왕 맹활약을 인정받아 4위팀에서는 이례적으로 대회 MVP를 수상했다. 김연경은 "MVP는 팀원들이 잘해준 덕분에 4강까지 올라갔기에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모두가 납득한걸 보니까 제가 잘하기는 했다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4년 뒤 리우올림픽에서 다시 만난 일본을 상대로 김연경과 대한민국 여자배구대표팀은 보란듯이 설욕에 성공했다. 당시 배구 한일전 지상파 3사 합산 시청률은 무려 29.8%를 기록할만큼 뜨거운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김연경은 "한일전을 앞두고 언론들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질거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승리해서 너무 기뻤다"며 미소를 지었다.
리우올림픽 한일전을 통하여 이후 김연경의 대표적인 별명인 '식빵언니'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김연경은 "평소에는 욕설을 안 한다. 그런데 요즘 감독을 하면서 배구를 하니까 다시 식빵을 굽기는 하더라. 그냥 배구에 대한 열정으로 봐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2020 도쿄올림픽은 김연경의 국가대표 마지막 무대가 됐다. 김연경은 주장으로서 팀원들을 이끌고 8년만에 다시한번 4강신화를 이뤄냈다. 태극마크를 달고 마지막 경기가 된 동메달결정전을 마치고 김연경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며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방송예능 선택, 초보감독으로 변신한 김연경
▲질문들김연경MBC
많은 이들이 김연경의 은퇴 후 행보에 주목했다. 김연경은 자신의 이름을 딴 MBC <신인감독 김연경>에 출연을 결정하며 방송예능을 선택했다.
<신인감독 김연경>은 프로팀에 가지 못했거나 은퇴한 선수들을 모아 프로배구 제 8구단 신생팀 창설을 위한 고군분투기를 다룬 배구 스포츠예능이다. 김연경은 '필승 원더독스'의 사령탑을 맡아 선수에서 초보 감독으로 변신했다.
"방송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해서 거절했지만, 방송 취지가 너무 좋았다. 제가 한국 배구의 발전과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 프로그램이라면 괜찮겠다 싶었다.
감독이라는걸 처음 하다보니 적응도 안되고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 싶었는데, 점점 진심으로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더라. 가면 갈수록 저도 성숙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수들도 발전하고 저도 같이 발전하는 그런 모습들이 참 좋았다."
안타깝게도 김연경이 은퇴한 이후 한국 여자배구는 국제경쟁력이 추락하며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김연경은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연령별 국가대표 지도자 전임제를 비롯하여 일관된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김연경은 "구조적인 문제나 불합리한 것들에 대하여 항상 제가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래도 한국배구의 발전을 위한 이야기"라는 소신을 밝혔다.
김연경은 최근 은퇴 이후 자선재단 'KYK 파운데이션'을 설립하여 유소년 스포츠 발전과 인재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9년전 리우올림픽 본선진출 확정 당시 풋풋하던 28세의 김연경은 '내 인생의 시계는 지금 오후 1시에 와 있는 것 같다"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 바 있다. 선수생활을 은퇴한 지금, 김연경은 "'인간 김연경'으로서의 시간은 다시 오후 1시"라고 정의하며 앞으로의 인생 2막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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