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으로 맺어진 대부분의 가족은 사랑이 기반으로 하지만, 모두가 원만한 건 아니다. 때에 따라 미움 섞인 애증, 원망 등 복잡한 감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명절 이후 이혼율이 급증하는 이유만 봐도 그렇다. 만났을 때 유쾌하지 못한 가족이 생각보다 많다는 추측이다. 늘 가까운 것 같아도 멀고, 쉬운 것 같아도 어려운 질문이 가족 안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은 유난히 길다. 연휴 동안 친지를 방문해 안부를 묻고 차례를 지내는 가족도 있을 테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있을 거다. 그것도 아니라면 혼자 집콕하며 위시 리스트에 넣어둔 책, 영화, 드라마를 마음껏 즐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래서 준비해 봤다.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이하여 다른 나라의 명절을 담은 영화가 없을지 고민했다. 그 와중에 따뜻함보다는 기분 나쁜 호러, 스릴러 장르 두 편을 소개해 볼까 한다. 화목한 가족 대신 기괴한 가족을 소환한다. 영화 <미드소마>와 <아이스 스톰>을 통해 서늘한 가족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참고로 <미드소마>는 왓챠에서, <아이스 스톰>은 웨이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영화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지,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현대 사회에서 변해야 할 모습은 무엇일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드소마> 지난한 상실을 통해 얻은 새 가족
▲영화 <미드소마> 스틸
(주)팝엔터테인먼트
'미드소마'는 태양의 생명력을 담은 스웨덴의 한여름 축제를 말한다. 죽음과 생명의 순환이 하나라고 믿는 오랜 풍습은 농업에 뿌리를 둔 그들의 역사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하지에 진행되는 의식답게 지지 않는 태양(백야)을 머금고 새벽까지 의식이 진행된다. 전통 의상을 입고 꽃장식으로 도배된 긴 막대기를 돌려 춤과 노래를 즐긴다. 교외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도심에서는 우리나라 명절처럼 상점 문을 닫아 고요하고 황량해지기도 한다.
늘 가족을 테마로 삼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 그 명성을 각인시킨 영화다. 피하고만 싶은 근원을 파고드는 공포를 가족에 빗댔다. 데뷔작 <유전>에서 한층 나아갔다. 평범한 가족의 허상을 비틀어 불편함이 지속된다. 한낮을 배경으로 흰옷을 입은 무해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기이한 구석이 있다. 무엇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내내 유지된다.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주)팝엔터테인먼트
<미드소마>는 가족의 죽음으로 패닉에 빠진 심리학 전공생 대니(플로렌스 퓨)가 문화인류학 전공생들의 논문 프로젝트에 따라갔다가 겪게 되는 일화를 다룬다. 대니는 스웨덴 민족 사이의 낯선 미국인이며 함께 온 친구들의 일원도 아니라 소외감이 크다. 가족의 죽음에서 혼자 살아남았고, 여성 비전공자이며, 4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도 소원해 곁줄 곳 없다. 이 황량한 마음은 차츰 마을 사람들로 인해 채워지고, 겉돌기만 하다가 축제의 최종 우승자가 되어 5월의 여왕이 된다.
영화는 대안 가족의 탄생 과정을 통해 가족의 본질을 떠올려 보게 하며 일반적인 가족은 무엇인지, 몸과 마음이 쉴 곳은 가족인지를 기묘한 방식으로 묻는다. 단순하게 보면 그룹에서 배척받는 피해자의 이야기로 보일 테지만 그들의 일원이 되는 환영식을 본 것만 같다.
또한 남성과 여성, 전통과 현대, 개인과 공동체, 다수와 소수 사이의 격차를 심리적 차원에서 다룬다. 광적인 종교의식에 빠져 트라우마를 극복한 개인의 성장기로 읽히는데 성장하는 해피엔딩으로도 해석된다. 그 외에도 알면 알수록 곱씹어 볼 다양한 상징을 찾아내고 해석하는 재미가 있어 감독판을 추천한다.
<아이스 스톰> 미세한 균열을 얼기설기 봉합한 가족
▲영화 <아이스 스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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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스톰>은 1973년 추수감사절을 앞둔 미국 뉴욕 근교 중산층 지역에 불어닥친 얼음 폭풍이 만들어낸 파장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이 상징하듯 내내 건조한 시선으로 냉랭해진 가족의 초상을 훑는다. 한창 베트남전쟁, 오일쇼크, 워터게이트가 터져 시끄러운 미국의 상황과 붕괴되기 직전 가족의 상황을 평행선상에 둔다. 릭 무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할리우드로 건너가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90년대 이안 감독은 가족을 주제로 꾸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그중 <아이스 스톰>은 미국 중산층의 껍데기뿐인 행복을 풍자한 <아메리칸 뷰티>와 함께 손꼽히는 가족 영화로 불린다. 평범 혹은 화려한 외피에 가려진 가족의 속내를 구성원 각자의 캐릭터를 통해 들려준다.
영화는 대학생 폴(토비 맥과이어)이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시작한다. 기차 안에서 읽던 만화책 '판타스틱 4'는 두 가족(후드, 카버 (家)을 은유한다. '판타스틱 4'의 한 구절을 읽는데 이는 60년대 미국의 이상적인 가족의 원형이자 가까워질수록 생채기를 내는 아이러니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폴은 아빠 벤(케빈 클라인)과 엄마 엘레나(조언 앨런)의 냉랭한 기운을 눈치챈다. 사춘기가 한창인 여동생 웬디(크리스티나 리치)는 반항과 일탈을 일삼아 골칫거리다. 부모와도 티격태격한 탓에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사이는 멀어지는 중이다.
한편, 이웃사촌 카버 가족과 친밀한 사이다. 어른들은 가끔 식사 자리를 만들고 자녀들끼리도 종종 연락한다. 남편 짐(제이미 셰리던)과 아내 제이니(시고니 위버), 부부의 아들 마이키(일라이저 우드)와 샌디(애던 한 버드)와는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하지만 두 가족은 불온한 관계를 숨기고 있었다. 벤과 제이니가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배신감에 엘레나는 충동적인 절도로 공허함을 채운다. 웬디는 마이키와 샌디 형제에게 성적 호기심을 품고 있었으며, 이로인한 파장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난다.
▲영화 <아이스 스톰> 스틸컷다음
후반으로 갈수록 각자의 비밀은 총체적 난국으로 흐른다. 어른들은 불륜과 스와핑을 즐기고 아이들의 호기심은 성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종국에는 아이스 스톰으로 모든 것이 얼려버린 밤. 그들은 힘든 연휴 보내게 된다. 오프닝과 클로징은 폴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반복하며 수미상관으로 끝나지만 안도하는 가장의 눈물 속에서 잔혹한 현실을 톺아보게 된다.
두 가족은 모두 결함을 가진 존재로 그들의 선택과 행동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기 힘들다. 관객으로 하여금 거리감을 형성하며 제3자의 시선으로 위태로운 행적을 뒤좇는다. 행복한 가족사진처럼 정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같아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찢기고 붕괴되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의 가장 만수가 떠오른다. 기이한 슬픔과 불안한 행복이 교차한다. 가족이라 해도 모든 것을 포용하긴 힘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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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 입고 새벽에 춤과 노래, 명절인데 왜 이러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