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커밍아웃, 아들의 유튜버 선언... 대환장 2박 3일

[영화 리뷰] <비밀일 수밖에>

정하는 강원도 춘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평범하게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오래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아들 진우를 캐나다로 유학 보내놓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진우가 짠 하고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그것도 여자친구 제니와 함께 말이다.

그녀는 이참에 아들에게 비밀들을 털어놓으려 한다. 암이 발병했다는 사실과 여자친구 지선의 존재, 그리고 레즈비언 커밍아웃.

그런데 제대로 말을 꺼낼 새도 없이 진우가 먼저 정하에게 폭탄 발언을 한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요리 유튜버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제니와 결혼할 예정이라는 것.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며 정하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느닷없이 캐나다에서 진우의 여자친구 제니의 부모인 문철과 하영이 찾아온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울 새도 없이 숙소 예약 문제가 발생한다. 제니의 부모가 갈 데가 마땅찮아진 것.

결국 정하의 집에 모두 모인다. 정하는 물론 그녀의 여자친구 지선, 진우와 제니, 제니의 부모까지 2박 3일간의 짧은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엄연히 관계의 선상에 놓인 그들,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꽁꽁 숨겨놓기만 했던 각자의 비밀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두 가족의 말할 수 없는 비밀

 영화 <비밀일 수밖에>의 한 장면.
영화 <비밀일 수밖에>의 한 장면.AD406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지난 2016년과 2017년 <철원기행>과 <초행>으로 이혼과 신혼이라는 큰 주제의 가족 이야기를 풀어놓은 바 있는 김대환 감독의 신작이다. 그가 말하길 이 영화는 '가족 3부작'의 마지막이자 신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까지 총체적으로 다뤘다. 춘천이라는 소도시, 가까운 듯 먼 사돈, 그리고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들.

블랙 코미디 요소가 다분하면서도 각자의 비밀을 통해 주제에 꽤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우선 두 가족, 그러니까 진우네 가족과 제니네 가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들 각자의 비밀은 극 중에서일 뿐 극의 밖 우리들에겐 비밀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둔다. 스포일러가 될 수 없다는 것.

진우네는 어릴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존재가 작지 않다. 그는 살아생전 가부장적인 면모가 컸기에 가족에게 결코 좋은 남편이자 아빠가 아니었지만, 세상을 떠나니 묻히고 잊혔다. 부재에 따른 그리움 같은 것만 남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분명 남아 있는 진우네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테다.

제니네는 캐나다에서 이민 생활을 하고 있기에 겉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남편이자 아빠 문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하다. 우선 제니와의 사이가 너무 안 좋다. 뿐만 아니라 무려 30년 동안 제니의 조부모와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제니네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전통적인 가족의 테두리를 넘으려는 시도

 영화 <비밀일 수밖에>의 한 장면.
영화 <비밀일 수밖에>의 한 장면.AD406

영화는 '가족'이라는 큰 주제에 '가부장'과 관련된 다방면의 이야기들을 집중시켜 맹렬하게 파고든다. 한편 전통적인 가족의 테두리를 넘으려는 시도 또한 보인다. 같은 결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정하와 지선의 관계 그리고 진우와 제니의 관계다. 흔히 볼 수 없는 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주지했다시피 정하와 지선은 연인 관계다. 그들이 서로 좋다고 해도, 세상 모두가 괜찮다고 해도, 아들 진우가 받아들일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엄마의 커밍아웃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 아닌가. 하여 진우 그리고 제니의 반응과 대응이 곧 이 영화의 지향점일 것이다.

진우와 제니는 오롯이 사랑만으로 만나 결혼하려 한다. 진우는 결혼도 하기 전에 직장 생활을 접고 유튜버로 전향하려 하는 한편 제니는 착실히 의사의 길을 간다. 제니는 어느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진우의 선택을 지지한다. 이상을 현실로 옮겨내고 있는 그녀, 그들의 건강한 관계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넘어 '가족이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라는 명제까지 넘어 '가족이란 각자의 모습이 존재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라는 확언으로 나아간다. 다양성을 견지하며 진취적으로 '가족'을 다루되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갔을 뿐인데 종국에 깨닫게 된다.

'이러면 어떠하리 저러면 어떠하리.'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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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