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만 가득해야 할 풍성한 한가위지만, 현실은 다르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척을 만난 반가움은 잠시일 뿐, (예전보다는 덜하다지만) 불편한 대화가 이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렇다고 명절 스트레스로 길고 긴 연휴를 망칠 수는 없는 법.
현실을 잊게 만드는 장르물 세 편으로 명절 증후군을 날려 버리는 건 어떨까.
자존감 UP을 위한 멀티버스 판타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워터홀 컴퍼니
명절에 만난 사촌과 친척들은 입시, 취업, 결혼에 관해 묻곤 한다. 물론 악의는 아닐 것이다. 진심 가득한 조언을 주는 경우도, 위로와 격려를 담은 '금융 치료'를 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그 상황 자체가 당사자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 안 그래도 불안하고, 자신감도 떨어진 처지라면 선의에서 우러나온 말과 행동, 표정조차도 자격지심이라는 심지에 불을 붙이기에는 충분하다.
만약 위와 같은 경험을 했거나 예상한다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원>)를 따라가는 멀티버스 탐험을 추천한다. 얼핏 보기에는 정신없는 B급 코미디 영화 같아서 꺼려질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하는 딜도와 애널 플러그, 장난감 눈깔 덕분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멀티버스 여행의 끝에서는 무너지던 자존감을 어렵지 않게 다시 세울 수 있는 가족드라마를 만날 수 있다.
감독인 다니엘 콴과 다니엘 샤이너트의 말마따나 <에에원>은 수많은 혼란 속에서 "가족에게 관심 갖는 법을 배우는 엄마의 이야기"니까. 딸 '조이'(스테파니 수)와 매일 같이 싸우던 '에블린'(양자경). 하지만 그녀는 수많은 멀티버스에서 수많은 딸을 만난 후에 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딸이 살아갈 세상은 같지 않으니, 딸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걸 마침내 터득한 것.
혹시라도 가족과 친척들의 말이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면, 그들의 날카로움이 원망스럽다면 <에에원>을 보고 털어내자. 그들도 에블린과 다를 바 없다고 받아들이자. 본심과는 달리 공감하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말도 행동도 어설프게 튀어나왔다고 생각한다면, 마냥 아프기보다는 직면한 과업에 도전할 힘을 얻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테니까.
시청 가능 OTT: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발리보다 더 휴양지 같은 SF 여행 상품, <아바타: 물의 길>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물론 <에에원>만으로 상처와 스트레스를 털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훌쩍 떠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연휴가 긴 만큼 새로운 환경으로 여행을 떠나 기분 전환을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문제는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것. 떠올릴 수 있는 만큼 여행지는 이미 예약이 가득 찼을 수도 있고, 마땅히 그럴듯한 여행지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제임스 카메론이 친히 준비한 관광 상품이 있다. 바로 13년 만에 돌아온 판도라 행성 투어, <아바타: 물의 길>이다. 동시통역이 가능한 가이드 '제이크 설리'의 인도를 따라가면 동남아시아 휴양지의 바다보다도 투명하고 판도라 행성의 바다와 아름다운 수평선을 넋 놓고 즐길 수 있다. 돌고래 구경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고래보다 큰 해양 생명체 툴쿤과 멧카이나 부족의 교감 장면을 통해 대신할 수 있다.
심지어 툴쿤을 사냥하는 포경선들에 맞서서 해수면 위를 질주하는 쾌감과 바닷물에 잠기는 포경선 내부에서 탈출하는 스릴까지 느낄 수 있으니, 어드벤처 관광을 원하는 사람에게도 이보다 안성맞춤일 수 없다. 때마침 시리즈의 3편인 <아바타: 불과 재>의 12월 개봉을 앞두고 10월 1일부터 일주일간 특별관에서 재개봉했으니 3시간짜리 판도라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시청 가능 OTT: 디즈니+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드라마,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더콘텐츠온
멀티버스 속에서 가족애도 되찾고, 제임스 카메론이 마련한 판도라 투어도 즐기고 나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온다. 바로 언제나 피하고 싶은 연휴의 끝이다. 연휴가 길수록, 연휴가 달콤할수록 일상으로의 복귀는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때 딱 필요한 영화가 있다. 연휴처럼 좋을 수는 없겠지만, 평범하고 무난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는 드라마,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그 주인공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흠잡을 데 없는 '회스'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직장에서 부하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아버지.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집과 가족을 챙기느라 바쁜 어머니. 금슬 좋은 부모님 밑에서 화목한 4남매. 각이 딱 맞는 수영장과 정원이 딸린 큰 주택, 주말 오후에 피크닉을 즐기기에 최적인 주변 숲과 강까지. <사운드 오브 뮤직> 속 트랩 대령 가족의 집과 일상도 부럽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그들의 일상이 유대인들의 고통을 딛고 있다는 것. 회스 가족의 옷, 화장품, 장난감은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유대인의 유품이다. 저택은 아우슈비츠 바로 옆에 있는 관사이고, 하인도 유대인이며, 정원에 뿌려지는 거름은 유대인 시체를 태운 잿가루다. 회스가 몰두 중인 프로젝트 또한 나치의 '최종 해결책'이다. 회스 가족은 평화로운 일상 사이에 끼어든 유대인들의 아우성, 독일군의 명령, 발포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관객의 시점은 다르다.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크레디트에 깔린 기묘한 음악과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사운드를 듣다 보면 저들의 일상이 소름 끼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연휴 끝자락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저들만큼 안락하지는 않아도, 우리의 일상은 최소한 시체 위에 자리 잡지는 않았으니까.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함을 느끼다 보면 연휴의 아쉬움도 빠르게 떨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청 가능 OTT: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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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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