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은 OTT로 신작을 보는 방식에 익숙해졌다.charlesdeluvio on Unsplash
극장 관객 감소의 진짜 원인은 팬데믹이 촉진한 산업 변화와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있다. OTT가 대중화되기 전부터 이미 영화계는 극장과 VOD를 통해 1만 원 이상의 가격으로 동시 개봉하는 등 새로운 창구화 실험을 해왔다. 팬데믹은 변화를 가속화했다. 극장들이 닫히고 신작 개봉이 연기되면서 콘텐츠 공급망이 무너졌다. 많은 제작자와 감독들은 생존을 위해 OTT 오리지널 제작으로 방향을 틀었고, 관객들은 OTT로 신작을 보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관객들의 여가 선택지가 다양해진 점도 주요 원인이다. 최근 프로야구 관객 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소비자들의 여가 예산과 시간이 극장 대신 다른 곳으로 재분배되고 있다. 과거 '데이트=극장'이었던 공식은 이제 '데이트=야구장, 공연, 페스티벌'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인상된 티켓 가격은 관객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팝콘과 음료를 포함하면 1인당 2만 원에 육박하는 관람료는 영화를 '가격 대비 효용'이 떨어지는 여가 상품으로 인식하게 했다.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가 홀드백 때문이 아니라 콘텐츠 공급 방식의 변화와 가격 대비 만족도, 다양한 대체 여가 때문이라면, 홀드백을 법으로 강제해도 관객은 돌아오지 않는다.
국내 극장 시장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3사가 스크린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은 제작·배급사를 계열사로 거느린 수직계열화된 대기업이다. 이번 법안은 극장에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유통 시장만 규제한다. 진정으로 산업을 위한다면 남의 유통 자유를 막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투자와 혁신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이 법안은 국제적 흐름과도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은 극장 개봉 후 45일 내외의 짧은 홀드백 정책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유연한 정책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제작사-플랫폼 간 새로운 수익 모델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국만 '상영 종료 후 6개월'이라는 극단적인 홀드백을 법으로 강제한다면, 한국 영화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매력을 잃고 OTT 플랫폼의 글로벌 편성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 이는 K-콘텐츠의 글로벌 확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법안은 헌법상 재산권 및 계약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정부가 어떠한 공적 투자나 지원도 하지 않은 민간 콘텐츠의 유통 시점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될 수 있어 위헌성 논란이 예상된다.
극장 산업,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할 때
홀드백 법안은 극장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한국 영화 산업 전체의 발전을 저해할 위험성이 큰 처방이다. 특히 상영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홀드백을 강제하는 것은 영화 유통 생태계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여준다. 극장에서 내려진 영화는 관객들의 관심과 마케팅 효과가 급격히 사라진 상태다. 더욱이 OTT 플랫폼들이 미니멈 개런티(MG) 방식이 아닌 수익 배분(RS) 방식을 주력으로 전환하면서, 제작사는 흥행 성적에 대한 위험 부담을 전적으로 안게 되었다. 흥행 동력이 완전히 꺼진 6개월 후의 VOD 출시는 제작사의 수익 회수 가능성을 극도로 낮춰 재정적 위험을 극대화한다. 6개월의 의무적 공백은 콘텐츠의 '골든 윈도우'를 놓치고, VOD 출시를 위해 추가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비효율을 낳는다.
블록버스터급이 아닌 경우 제작사들이 아예 극장 상영을 포기하고 OTT 직행을 선택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6개월의 불확실성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확실한 OTT 자금을 확보한 뒤 빠른 유통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편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극장들은 입법에 기대어 타인의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극장 체인들은 콘텐츠 투자자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OTT가 오리지널 콘텐츠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플랫폼 경쟁력을 확보했듯, 극장 역시 직접 영화 투자 펀드를 조성하거나 제작에 참여하여 '극장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
다음으로 가격 정책과 수익 배분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 팬데믹 이후 일방적인 티켓 가격 인상 대신, 합리적인 가격 정책을 고민하고 배급사와의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직 극장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제공하여 관객을 유인해야 한다. IMAX, 4DX, 돌비 시네마 등 프리미엄 상영관을 확대하고, 배우와의 만남, 영화 관련 이벤트, 굿즈 판매 등 OTT가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체험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관객의 발걸음을 다시 극장으로 돌려야 한다.
혁신 없는 규제는 산업 활력을 저해한다.
진정한 해법은 외부 규제가 아닌 내부 혁신에 있다. 한국 영화 산업은 이미 극장이라는 단일 창구를 넘어 OTT와 글로벌 시장을 통해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진정으로 산업을 위한다면, 낡은 접근 방식으로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 아니라 산업의 혁신과 자유로운 경쟁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조성기 외(2017), 유료방송 플랫폼에서의 극장동시상영 VOD의 구매요인에 관한 연구:프리미엄 VOD의 구매요인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사이버커뮤니케이션 학보, 34권 4호
2. 박성호 외(2021), 방송프로그램 창구화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탐색적 연구: 융합환경에서 세분화된 창구 유형과 창구화 전략의 특징, 사이버커뮤니케이션 학보, 38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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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