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th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소녀>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3.
그런 샤오리의 곁에 리리가 등장하고 나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의 환경 속에 존재하는 폭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전체적인 환기조차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적어도 두 사람이 함께인 신과 쇼트 안에서만큼은 원래 그가 보여야 했을 자연스러운 진짜 소녀의 모습이 담긴다. 여기에는 마치 어른이 되기라도 한듯 꾸미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포함된다. 다시 말해, 그에게 있어 리리의 존재는 항상 맴돌기만 하던 쳇바퀴 같은 공간으로부터 (집과 옷장) 벗어나게 해주는, 나아가지 못하고 훔쳐보기만 하던 경계 너머로 건너갈 수 있게 해주는 대상인 셈이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모두 그렇다.
전학 온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교류와 가까워지는 속도는 표면적으로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이, 감독은 리리의 서브 텍스트 아래에 그 역시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한 경험이 있으며, 그로 인해 대만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설정을 배치해 놓는다. 종류는 다르지만, 지금 당장 자신들의 힘이나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점에서, 어른의 사정이기는 하나 일반적이지 못한 가정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서 유사한 경험을 정서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04.
"그렇게 한가하면 집이나 나가. 입 하나 줄면 나도 좋아."
이 작품은 한 소녀의 불행한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기저에 놓인 뼈대를 살펴보면, 일종의 '악의 순환과 대물림'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알코올 중독자인 가장과 가장 대신 가정의 모든 고단함을 짊어져야 하는 엄마. 제대로 챙겨지지 못하는 자녀와 살아남기 위해 도덕적이지 못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과도 같은 연결고리가 있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녀의 공허한 눈에는 이 고리 속에서도 최하위에 놓인 피식자의 무력함이 담겨 있다.
한 세대 속에서 연결되는 순환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엄마 쥐안이 경험했던 가족의 폭력은 마치 연좌제의 그림자처럼 딸 샤오리에게도 전이된다. 물론 여기에는 개인의 문제만이 존재한다기보다 여자는 공부보다 돈을 벌고 효도나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식의, 그로 인해 부정한 상황에라도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영화 속 피해자가 언제나 여성이라는 부분도 이 지점의 문제와 연결된다. 사회적 인식과 태도의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를 거듭하기만 해서 자연적으로 해결될 리가 없는 것이다.
▲30th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소녀>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5.
"엄마, 이혼하면 안 돼?"
영화의 결정적인 스포일러에 해당하기에 이 글에서 정확히 언급하기는 어려우나,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지금까지 영화가 보여왔던 여러 문제적 지점과 불합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밝혀진다. 내내 동생에게만 상냥했던 엄마의 태도와 아빠가 취해 집으로 돌아올 때 왜 샤오리만 장롱 속으로 숨어야 했는지, 또 아빠로부터 내쳐질 때 왜 부끄럽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는지 등의 모든 이유가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 지난한 과정을 보고 있으면, 희망이라는 것이 어디에나 있다지만, 이런 서사를 가진, 이런 대물림을 경험하는, 이런 환경에 노출된 이들에게도 정말 그런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어느 유명 배우의 감독 데뷔작으로 보기에, 영화 <소녀>는 꽤 인상적이다. 차례대로 쌓아 올리는 서사의 밀도는 꽤 단단한 편이고, 불우한 어린 시절에 대한 소재는 그간 자주 다뤄져 온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요 배역에 캐스팅한 배우들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전달할 수 있는 이유에도 분명 오랜 시간 강렬한 이미지로 스크린을 장악해 왔던 서기 배우의 도움, 디렉션이 도움을 주었을 거다. 서기라는 이름은 아직 배우에 조금 더 자연스럽게 붙을지 모르겠으나, 이 영화는 분명 그에게 감독이라는 자리를 정확히 마련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쟁 부문 선정작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