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흔히 다섯 가지 맛, 오미라고 하는 것에도 조합이 있다. 단짠이라는 말이 유행을 탄 것처럼 유달리 조화롭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다. 단맛과 짠맛이 서로를 더 갈구하게 하므로, 두 맛을 적절히 활용해 맛의 균형을 찾거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갈비찜과 불고기, 떡볶이 등 익숙한 요리에서 설탕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나, 유명 브랜드 치킨 제품에서 갈수록 단맛과 짠맛을 함께 활용한 메뉴를 내어놓는 게 대표적 예시다.
어디 맛뿐일까. 영화 장르에서도 유달리 합이 좋은 관계가 있다. 코미디와 공포, 이 둘의 관계 또한 그렇다. 영화의 장르야 드라마부터 액션, 코미디, 로맨스, 공포, 스릴러, SF, 판타지, 미스터리, 범죄, 전기, 전쟁, 모험, 사극 등 수두룩하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은 서로 잘 어우러지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으니, 이를 두고 궁합이 좋고 나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공포와 코미디는 이 많은 장르 사이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사람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걸 목표로 삼는단 점이 그러하다. 둘 다 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자극을 주는 것을 주요한 공략수단으로 삼는다. 흔히 예상 가능한 것에 웃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단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웃기거나 두렵게 하기 위해선 감추어야 한다. 예기치 못하게 해야 한다. 이 장르를 유달리 좋아하는 관객들 앞에서 그를 공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탁월한 코미디와 공포 또한 흔치 않다.
▲웨폰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미국서 성공한 공포, 그 진면목을 확인하다
<웨폰>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각 영화제마다 각별한 인기를 얻고 있는 심야 장르영화 상영이 부산에도 있는데, 이를 위해 들여온 승부수라 평가됐다. 해당 섹션은 '미드나잇 패션'으로, 호러, 스릴러, 액션, SF 등 부산국제영화제가 인정한 장르영화 신작을 묶어 상영하는 회차가 되겠다. <웨폰>은 이 가운데 단연 주목받은 작품인데, 올해 부산을 찾은 여느 작품들처럼 대단한 영화제 수상이력 따위를 전혀 갖지 못했음에도 화제작으로 꼽혔단 점이 자못 인상적이다.
<웨폰>에 쏟아진 관심은 입소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영화가 앞서 상영된 여러 영화제에서 작품을 본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진 것이다. 영화 평가집계 플랫폼인 메타크리틱, 로튼토마토, 레터박스 등의 평점 역시 매우 높은 축에 속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두어도 상위권에 들 정도. 메타크리틱 지수는 81점, 로튼토마토는 94%, 레터박스는 3.8이다. 그저 대중적 재미를 넘어 완성도며 참신함에 있어서도 상당한 수준이란 기대가 뒤따랐다.
기대를 안고 개봉한 미국 현지에서 <웨폰>은 인기를 구가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공포영화의 한계를 딛고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다. 제작비 3800만 달러 대비 약 7배에 달하는 2억6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한국 등 아직 개봉하지 않은 국가가 많아 이는 계속 불어날 전망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뒤늦게나마 작품을 초청해 상영하게 된 배경이다.
▲웨폰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한날한시에 집 나간 17명의 아이들
<웨폰>은 미국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미제사건을 한 초등학생의 목소리로 회고하며 시작한다. 어느 날 새벽 초등학교 같은 반에 다니는 17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실종된 충격적 사건이다. 아이들의 반엔 모두 18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한 아이만 제외하고 모두 사라진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알렉스 릴리, 경찰은 소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지만 그가 실종과 관련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단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교사 저스틴 또한 수사선상에 오른다. 같은 반 아이들의 동시 실종인 만큼 그가 뭐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녀 또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 수사는 미궁에 빠져들고 만다. 새벽 2시 17분에 스스로 제 집 문을 열고 달려 나간 아이들, 그로부터 누구도 돌아오지 않은 이 사건을 두고서 온 마을이 혼란에 휩싸인다.
영화는 마을 여러 인물을 한 명씩 돌아가며 비추며 진상에 접근한다. 각 장마다 해당 인물의 삶을 가까이서 비추며 각각의 시선에서 사건을 이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사건에 전면적으로 돌입하긴 어려우나, 각 인물 간의 미묘한 관계성과 사정을 관객과 공유하며 사건에 다가선다.
▲웨폰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공포와 코미디의 효과적 만남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의 공분을 한 몸에 받는 교사 저스틴(줄리아 가너 분)을 시작으로, 아들 매튜를 잃은 아버지 아처(조시 브롤린 분), 마을의 경찰 폴(올든 애런라이크 분), 숲에서 노숙하며 생활하는 마약중독자 제임스(오스틴 에이브람스 분), 학교장 마커스(베네딕트 웡 분), 그리고 사건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비밀스러운 소년 알렉스(캐리 크리스토퍼 분)까지가 하나하나 카메라의 중심에 선다. 영화는 이들의 시점을 옮겨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붙들고 그 흑막에 다가서도록 한다.
영화는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이나 학부모의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스릴러가 아니라 공포, 그중에서도 오컬트 호러적 성격을 조금씩, 마침내 선명히 드러낸다.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결코 완벽하지 않은 인물들의 상황 속에서 이에 균열을 낸 범인이 제 모습을 내보인다.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이 전면에 나설 즈음,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마저 장점으로 활용키 위한 파격적 수를 둔다. 바로 코미디와의 결합이다.
극 중 인물들이 진지할수록 보는 이가 당혹해하며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순간이 수시로 이어진다. 진지한 공포영화와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가 서로를 해하지 않으면서 교차하는 상황이 잇따른다. 코미디와 공포, 두 장르를 깊이 이해한 작가만이 해낼 수 있는 섬세하고 교묘한 연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여럿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긴장과 극적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공포와 웃음을 수시로 맛보게 된다.
▲부산국제영화제포스터부산국제영화제
오래간만에 만난 역량 있는 장르영화 감독
감독 잭 크레거는 연출뿐 아니라 직접 작품을 쓰는 작가이자 배우로서도 활발히 활동해 온 중년의 영화인이다. 코미디 그룹 창립멤버로 활약했을 만큼 코미디 장르에 애착을 보여 왔다. 정통 공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웨폰> 가운데,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주요한 장치로써 코미디를 적극 활용한 이유도 그에 대한 자신감에 있지 않나 싶다. 전작 <바바리안> 또한 장르영화 마니아들에게 제법 관심을 받았던 그다. <웨폰>은 장르영화의 무대에서 그의 작품세계가 훨씬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단 걸 확인케 한다.
그 설정과 형식부터 전개와 캐릭터 표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매력적인 작품이다. 무엇보다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부는 <웨폰>의 인상적 승부수라 해도 좋다. 공포영화가 마주하는 흔한 약점들을 정면에서 파훼하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도 <웨폰>은 훌륭한 작품이라 불려 마땅하다.
감독의 유명세도, 널리 알려진 배우가 얼마 없음에도, 영화는 일찌감치 한국 개봉이 예고됐다. 10월 중순이 잠정적인 개봉 예정일이다. 작품성에 대한 확신이 배급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한국 관객은 미국을 사로잡은 색다른 공포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새로운 작품이 사라져간단 자조적 목소리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극장가에 새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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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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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휩쓴 공포 영화, 이유 있었네... 부국제서 선보인 '웨폰'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