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앵글(Wide angle). 말 그대로 카메라가 담는 피사체의 각을 넓게 둔다는 뜻이다. 통상적인 앵글이라면 잡히지 않는 좌우의 것도, 와이드앵글엔 화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더 폭넓게, 더 많은 것을 잡아내려는 찍는 이의 의중이 이 앵글에 담겨 있다.
와이드앵글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섹션 중 하나다. 아시아에서 제작된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모아 상영한다. 애니와 실험영화 또한 이 섹션에 포함된다. 이쯤이면 이 섹션의 명칭을 와이드앵글로 명명한 이유가 짐작된다. 종합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편과 다큐를 가장 소외된 장르로 보고 있단 뜻이겠다. 평범한 자세로는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나기 십상인 이들 작품을 주목하여 바라보겠단 자세, 그 의지를 관철한 결과가 와이드앵글 섹션의 존재로 입증된다.
와이드앵글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대표적인 비인기 섹션이다. 치열한 예매경쟁이 있는 매년 영화제 가운데서도 와이드앵글에 속한 작품군은 자리가 남아돌기 일쑤다. 그럼에도 와이드앵글 상영작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 비주류의 특성상 상업배급이 쉽지 않아서다. 영화제가 끝난 뒤 영화관에서 작품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으로, 구태여 시간을 할애해 와이드앵글 상영작을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좁고 높은 문턱을 넘어선 작품이란 점에서 저마다의 강점, 또는 이 시대에 갖는 유효함을 기대하기도 한다.
▲주희에게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이번이 아니라면 듣기 어려운 목소리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상영작 가운데 <주희에게>가 있다. 와이드앵글 세부섹션인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열두 편 상영작 중 한 편이다. 다큐 경쟁부문에 들지 못했더라도, 충분한 매력을 가진 작품을 추려 선보이는 종목이다. 특히 <주희에게>는 이번이 월드 프리미어, 전 세계 최초 상영이다. 제목에 이름이 들어간 장주희에 더하여 부성필과 김성환도 함께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는 장주희 감독이 저를 소개하는 것으로 문을 연다. 대진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영화인을 꿈꾸었던 장주희 감독이다. 그런 그녀의 계획이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예기치 않은 일을 겪으며 와장창 깨어진다. 백혈병이 발병해 투병을 해야 해서다. 한순간에 시계가 멈추고 다른 동기들과는 전혀 다른 일상이 펼쳐졌다. 결코 쉽지 않았을 투병의 끝, 다행히 완쾌하고 일어선 그녀는 영화가 아닌 다른 자리에 선다.
장애인생활자립센터가 장주희의 일터가 된다. 이곳에서 일하며 그녀는 몇 개의 인연들을 만난다. 다큐 감독인 부성필, 뇌성마비 장애인 선철규, 세월호 침몰참사로 아들을 잃은 전인숙이다. 영화는 이들의 일상을 뒤따르며 포착한 영상기록이다. 그 절반 이상을 선철규의 이야기가 채운다.
철규는 중증장애인이다.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해 누워서 생활한다. 누워서 지내야 한다 해서 욕구가 없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나다니길 좋아하는 그는 어렵사리 방안을 찾아냈다. 침상형 전동휠체어를 조작해 누워서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애인 시설에서 13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2009년에야 세상에 나온 그다. 누워서 길쭉하게 지내는 이가 번개를 맞은 것처럼 싸돌아다닌다 해서 주변에서 그를 '번개 맞은 지렁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리란 편견에 맞서는 철규의 이야기는 그대로 영화 <지렁이 꿈틀>이란 작품으로 이어졌다.
▲주희에게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번지점프를 뛰는 건 중증장애인의 권리일까?
2010년 첫 영화가 나오고 다시 수년이 흘러서도 선철규의 도전은 계속됐다. 그는 오래 꿈꾸었다는 '바다에서 물에 뜨기'를 이루었고, 부성필 감독이 그 과정을 담아 영화 <철규>를 완성했다. 2019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철규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다. 모두가 할 수 없다고 하는 일, 다름 아닌 번지점프다. 철규와 친형제처럼 지내는 부성필과 주변인들이 의기투합하여 그의 꿈을 또 한 번 이뤄주자고 결의했다. <주희에게> 전반부가 바로 철규의 번지점프 도전기로 채워진다.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중증장애인인 그가 번지점프를 할 수 있을까. 비장애인은 상상해 본 적 없는 이 일을 위하여 그를 돕는 이들이 한국 내 번지점프 업체들과 접촉한다. 연이은 거절,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 한 안전관리자가 말하기를 장애인이 번지점프를 뛸 수 없다는 건 편견이라고. 그로부터 철규가 번지점프를 해낼 수 있는지를 두고 시험과 훈련이 거듭된다. 또 한 업체를 찾아 실제 번지점프에 이르기 위한 시도까지도 감행한다.
철규의 번지점프 시도가 한창일 무렵, 영화가 갑자기 옆길로 샌다. 이번엔 세월호 침몰참사 당시 사망한 단원고 희생자 임경빈의 어머니 전인숙씨가 주인공이 된다. 그녀 또한 부성필과의 연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한때 부성필은 목포항에 누웠던 세월호 선체 복원작업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을 했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및 영상활동가들이 뭉친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소속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목포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곳을 지키던 유족들과 관계가 이어졌다. 인숙씨 부부도 그렇게 맺어진 관계였다.
영화는 부성필을 타고서 전인숙의 삶으로 넘어간다. 인숙은 그저 세월호 침몰참사 진상규명과 소송 문제에 고립되지 않는다. 제가 감당해야 할 싸움은 그대로 치르면서, 또 다른 투쟁의 현장을 오가며 연대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세월호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을 가로지르는 여러 안건들이 또다시 인숙을 타고 영화 안에 얼굴을 들이민다. 장애인의 권리로부터 세월호 유가족, 노동문제와 활동가들의 현실, 그리고 돌고 돌아 이번에 부성필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주희에게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장애, 세월호, 민간인학살로 이어지는
철규, 인숙과 함께 찾은 제주에서 성필은 제가 4·3 사건 피해 유족임을 고백한다. 그의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사건 초기 남조선로동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폭도들에게 끌려가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30대 후반, 큰아버지는 고작 10살 때였다고. 부자가 동시에 죽임을 당한 건 이들이 경찰 유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제주 경찰 및 가족들과 남로당 제주도당 일파 사이에서 복수와 그 복수가 이어지던 때였다.
물론 4·3 사건은 그저 남로당 폭도들의 준동에 그치지 않는다. 참여정부 이후 이뤄진 진상조사는 남로당 제주도당이 일으킨 무력봉기로부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육지에서 파견된 서북청년단과 군 병력이 제주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일방적 학살극을 확인했다. 인정된 확인사망자만 1만 명을 훌쩍 넘고 추정 사망자는 그 수배에 이르는 참극 가운데 미군정과 이승만 대통령, 조병옥 경무부장 등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한국사회, 또 역사는 일찍이 이를 정리해 바로잡지 못하였다. 이념에 치우쳐 사실을 호도하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일이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부성필은 아버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4·3 사건에 대한 영화를 찍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작품을 완성할 수 없었다. 그의 집엔 태극기가 걸려 있다. 그건 그저 대한민국의 국기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다. 광장으로 나온 극우세력의 손에 들린 태극기, 4·3 사건의 원인을 남로당에게만 돌리는 이들의 태극기다. 영화는 그가 끝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과정들을 또한 인상 깊게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카메라 뒤에 선 감독 장주희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백혈병뿐 아니라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괴로움을 당했던 지난 시간이 영화 가운데 언급된다. 그녀는 이제 여성단체에 새로 둥지를 틀고 제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상담을 해나간다. 제 과거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 저와 같은 문제를 겪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연대하는 일의 의미가 영화 가운데 넌지시 떠오른다.
▲부산국제영화제포스터부산국제영화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만 보배인데
<주희에게>는 장애부터 세월호 침몰참사, 연대의 현장들과 제주 4·3 사건 등 한국사회 제 문제들을 감독의 지인들을 통하여 살핀다. 각 현장에서 마주한 이들의 존재로부터 감독은 제 문제를 직면할 용기와 자극을 얻었다고 말한다. 좀처럼 엮이지 않을 듯한 문제들을 저 자신에게 미친 영향으로써 묶어내어 한 편의 영화 안에 담는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가 연관성 약한 소재들을 감독의 주관적 선택에 입각해 묶어내 영화 전체를 관철하는 주제의식을 명확히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철규의 이야기로 채워진 초반부는 번지점프가 성공했는지조차 알리지 않은 채 다음으로 넘어가고, 그다음 소재 또한 마찬가지로 잇따라 미완성인 채로 전환된다. 개별 소재가 극적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함은 물론이고, 서로 긴밀하게 조응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식의 지평을 넓게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도 못한다. 오로지 감독 개인의 사적 다큐로 공적 재료들을 취합해 뭉뚱그렸단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같은 경향이 근래 한국 다큐에서 두드러진단 점은 아쉬움을 더욱 짙게 한다. 감독 개인의 아픈 개인사를 노출하고, 사회적 주제를 사적 다큐 안에 이어다 붙이며, 회고적 내레이션으로 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하나하나 그렇다. 활용되는 투쟁과 현장 또한 익숙한 것들 일색이다.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보다 유효한 방식을, 적절한 수단을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공적인 사안을 주관적으로 선별해 묶어내다 보면 그 주관에 공감할 수 없는 관객은 떨어져 나가게 마련이다.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은 사적 사안을 공적인 의미로써 묶어낼 방법이었어야 했다. 개별 사안에 깊이 천착하는 것보다 두루 훑어내는 작업이 영화에 더 효과적인지에 대하여 감독이 충분한 고민을 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철규 다음에 인숙이, 인숙 이후에 성필이 등장해야 했는지를 영화가 스스로 엄격히 따져보아야 했을 테다.
그런데도 <주희에게>가 가치 있는 다큐란 사실은 언급해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 행복추구권, 편견과 고정관념의 극복, 여전히 끝나지 않은 세월호 침몰참사, 제주 4·3 사건과 이념갈등, 가정폭력과 성평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 여전히 의미 있는 담론의 씨앗이 이 영화 가운데 흩뿌려져 있다. 영화가 그를 효과적으로 묶어내지 못했다 해도, 개별 문제를 살필 수 있도록 한 점 만큼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한국사회가 여전히 이들 문제를 충실히 돌아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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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