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영화(Essay Film)란 개념이 있다. 글로써 표출되는 문학의 갈래인 에세이와 영화의 결합이라니,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한 쌍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에세이의 정의부터가 모호하기 짝이 없지는 않은가.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비롯돼 통찰과 사상이 담긴 완결성 있는 글을 에세이의 출발이라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선 개인이 편하게 감상을 늘어놓는 경수필에 더 자주 에세이란 이름을 붙이고는 한다. 에세이가 가진 모호함 때문일 테다.
에세이 영화 또한 그렇다. 개인적 사유와 감상이 사회적 의제와 맞닿는 많은 경우에 흔히 에세이 영화란 표현을 쓰고는 한다. 그러나 그 정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말하는 이는 그리 많지가 않다. 무엇이 에세이 영화고 또 다른 무엇이 아닌지에 대하여, 영화판에서 일하는 이들이며 이를 연구하는 이들조차 명확히 의견을 같이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 영화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요건은 분명하다. 작가의 시선이 드러날 것, 그것이 사유라 부를 만큼 구체화될 것 같은 것들이다. 문학적 에세이에도 해당하는 그와 같은 특질이 에세이 영화 가운데서도 주요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포워드 섹션에 <내 아버지의 그림자>가 소개됐다. 플래시포워드는 아시아 이외 지역 출신의 신진 감독 장편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마련된 이후 14회 때부터 경쟁부문으로 전환됐다. 신진 감독이란 특성답게 내로라하는 영화인의 작품이 없어 대중적 관심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국 제일의 영화제가 가려 선별한 비 아시아 지역 신예의 작품인 만큼, 오늘의 한국에 새로운 자극을 던지는 작품이 적잖이 자리한다.
▲내 아버지의 그림자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2025년 영화계가 주목한 돋보이는 신예
<내 아버지의 그림자>는 올해 플래시포워드 섹션 상영작 12편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작으로, 신진 영화인 장편 가운데서 둘째 가는 자리를 차지한 때문이겠다. 나아가 감독이 나이지리아계 영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이로, 아프리카적 정서와 유럽의 시선이 결합된 보기 드문 작품을 기대하는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대 검증된 작가는 아니라도 플래시포워드 섹션 상영작을 보는 의미는 분명하다. 신진 영화인의 작품이란 다시 말하면 한국에 수입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독은 물론이고, 얼굴을 아는 배우 하나 없으니 흥행의 지점이 마땅찮다. 작품이 좋아도 흥행의 여지가 있는 작품만을 들여오는 열악한 한국 영화계의 현실 가운데서 플래시포워드는 영 경쟁력이 없는 섹션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섹션의 매력이기도 하다. 영화제를 즐겨 찾는 이들 가운데선 주류가 아닌 목소리,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적지 않다. 수입되지 않고, 그리하여 전해지지 않는 이야기임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을 만날 기회를 허투루 날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그림자>를 칸영화제가 주요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들이고, 숱한 신인 감독의 작품 가운데서도 특별히 언급할 만한 영화로 꼽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또한 흥미로운 작업일 테다.
▲내 아버지의 그림자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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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진 일
<내 아버지의 그림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나이지리아의 1990년대 초 어느 하루를 그린다. 때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 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나이지리아 제일가는 도시 라고스로 떠났다 돌아오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저학년쯤이나 될까. 아버지의 용건이 무엇인지, 어떤 여정이 될지를 짐작하기엔 한참 어린 나이다. 영화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타지에서 겪는 일들을 가만히 뒤따르며 이들이 마주하는 사건과 그로부터 피어나는 감정에 주목한다.
라고스에서 아버지는 돈을 받아야 한다.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임금이다. 자식들을 맡겨둘 마땅한 곳이 없어 먼 도시까지 직접 아이들을 데려가는 중이다. 그 절박한 사정을 아이들은 그러나 알지 못한다. 철없는 아이들은 그 시간마저, 제 아버지와 오랜만에 보내는 즐거운 여정으로 여긴다. 아버지에게 라고스는 낯설고 정 없는 도시이지만, 아버지와 함께 한 아이들에겐 즐겁기만 한 세상이다.
영화 내내 라고스의 상황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사람들의 삶의 모양과 도시의 현실, 혼란스럽고 때로는 위태로우며, 그 안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 풍경이 막연한 상상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구체성을 띠고서 펼쳐진다.
▲내 아버지의 그림자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부정선거 음모, 군부가 일어났다
영화가 결정적 면모를 드러내는 건 후반부 찾은 어느 술집에서다. 여정의 목표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 잠시 쉬러 들린 인연이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일행은 뉴스를 마주한다. TV에 나온 이는 치러진 선거에 문제가 있다며 군이 질서를 복원할 것이라 선언한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한동안 내전과 독재 아래 있었던 나이지리아다. 1993년 치러진 선거에서 슈와라 유수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만, 부정선거 논란이 일며 이를 명분으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독재자 사니 아차바가 군부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장악했고 군대의 힘으로 민중을 억누르며 민정이양이 이뤄지는 1999년까지 집권한다.
영화는 미지급된 임금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의 개인적 상황과 민주주의가 군홧발에 짓밟히고 시민이 군대에게 위협받는 사회적 상황을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맞닿게 한다. 이로부터 아버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떠난 여정이 한순간에 중단된다. 아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로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프고 서러운 무엇이 된다. 공적인 역사와 사적인 기억이 중첩되는 순간은, 곧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나이지리아와 이제는 없는 아버지를 떠올리는 감독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부산국제영화제포스터부산국제영화제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사건의 조우
영화의 승부수이기도 한 후반부는 <내 아버지의 그림자>의 약점이기도 하다. 정치사와 개인사가 맞닿는 순간이 지극히 우연적이며 개별적이어서, 그것이 설사 대다수 인간의 삶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이라 할지라도 둔탁하게 느껴지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들이 맞이하는 결말 또한 모호하고 흐릿하여 30여 년 전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의 성격과 맞물려 작품의 의미 또한 애매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칸영화제가 감독인 아키놀라 데이비스 주니어에게 가능성을 본 이유이자, 황금카메라의 주인이 되지 못한 이유일 테다.
한편으로 영화는 영국에 정착한 나이지리아계 형제가 저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서 동생은 각본을, 형은 연출을 맡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나이지리아의 개별적이면서도 또한 보편적 공감대가 있는 정치사를 재료로 하여 저들의 개인적 추억과 기억을 영상화하고자 했다. 그는 어린 자식들을 제 힘껏 감싸는 아버지의 역투이자,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노고를 이해하게 되는 아들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또한 개인적이면서 보편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또한 나이지리아의 혼란스런 현대 정치사 가운데 지난 시대 식민제국을 건설했던 영국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단 게 흥미롭다. 영화가 그를 주목하고 있지 않단 사실이 아쉬울 만큼, 영국이 이 나라의 비극에 미친 영향이 선명한 것이다. 나이지리아계 이민자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영국의 오늘이 지난 시대 저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와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은 마침내 아키놀라 데이비스 주니어와 같이 제 뿌리를 돌보는 나이지리아계 영화인이 천착하게 될 주제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일찍이 본 적 없는 감독이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아버지의 그림자>는 그런 기대를 품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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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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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손 붙들고 떠난 여정, 30년 지나 떠올리는 아버지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