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th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알파>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딸과 동생을 지켜야만 해."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영화를 복기해본다. <로우>(2017)에는 채식주의자였으나 숨겨진 식인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티탄>(2021)에서는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 금속을 심고 살아가던 한 여성의 서사가 있었다. 기이한 설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이번 영화 <알파>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첫 신부터 피부를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가는 바늘, 그로부터 피부 위로 새겨지는 검은 잉크, 그리고 미세한 출혈로 작품의 톤 앤 매너를 장악해 버린다. 사회적 공포를 몸의 표면 위로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첫 장면에 등장해 일련의 작업을 당하는 것은 13살 소녀 알파(멜리사 보로스 분)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A'라는 문신이 새겨진다. 이 사건이 시작이다. 같은 시기, 주삿바늘로 인한 치명적인 혈액 매개성 질환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공포가 일기 시작한다. 이 병은 환자의 살결을 서서히 창백한 대리석 석상처럼 굳게 만들며, 종국에서 모래알처럼 바스러져 목숨을 앗아가기에 이른다. 감염 경로나 전파 방식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 더 있다. 병에 걸린 중독자 외삼촌 아민(타하르 라힘 분)이다. 그는 이름 모를 병과 중독의 그림자를 지닌 채 이들 가족이 가진 감정적으로 취약한 자리를 드러내는 인물이 된다. 의사인 엄마(골시프테 파라하니 분)만이 두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과학적 합리성과 모성의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게 된다. 영화 <알파>는 질병과 사회적 낙인,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그렇게 한자리에 모아 사회적 반응과 관계의 서사, 그리고 내면의 파동을 그려내고자 한다.
02.
이 영화가 바이러스를 다룬 지금까지의 디스토피아적 공포·재난 장르와 다른 것은 감정과 환기를 외부로부터 획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외부에서의 설정이 개입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가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 이전에 이미, 그 공포는 가족의 대화와 집 안의 침묵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알파와 엄마 사이의 균열, 삼촌 아민의 고통과 침잠, 의료인인 엄마의 윤리와 부모의 본능 같은 것들이 뒤섞이면서다. 그때마다 감독은 알파의 팔에 새겨진 문신으로 다시 돌아가, 표식이 어떻게 낙인이 되고 낙인이 어떻게 병의 증거처럼 취급되는지 각인 또는 세뇌하고자 한다.
표식이나 낙인, 증거와 각인 같은 단어를 쓰게 되는 이유는, 영화가 알파의 병증을 '바이러스 검사 음성'이라는 단서를 근거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감염자가 아닌 그에게 있어 상처의 진물과 붉은 번짐의 장면들은 곧 증거로 오인되기 시작하고, 공동체가 공유하게 되는 오인은 다시 사실로 비약되고 만다. 이 지점에서 감염의 정의는 과학적 탐구와 사실적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닌 사회적 상상력에 의해 완성된다. 질병의 실재보다 그를 둘러싼 태도와 어휘가 더욱 중요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알파가 다니는 학교와 수영장의 공간은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알 수 없는 피를 흘리고, 밖에서 들은 병증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알파를 향해 동급생들은 자신과 다른 그를 낙인찍고 배척하기 시작한다. 알파 역시 부정을 증명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병증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쓴다. 수영장은 그런 공동체의 공포가 집약되는 장소다. 괴롭힘으로 인해 머리에서 시작된 출혈이 물 위로 퍼지는 (아름다운) 장면 또한 거짓된 믿음을 강화하는 또 다른 장면이 된다.
▲30th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알파>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3.
"좋은 의사, 좋은 엄마, 좋은 누나지만, 너무 사랑하면 사람이 미치기도 해."
병에 걸린 (걸렸다고 믿는) 두 인물 알파와 아민 외에 의사이자 단독 부양자인 엄마는 이 작품에서 큰 존재감을 갖고 있다. 직업적으로는 정확한 증상과 데이터로만 딸의 이상을 이해하고자 하지만, 엄마라는 자리의 보호 본능은 그런 이성을 종종 압도해 버리곤 한다. 그런 때의 동요는 공중 보건과 사적 돌봄의 충돌이 되고, 당사자가 감당할 수 없는 형태의 돌봄으로 어긋나버리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딸과 동생을 방안에 감금하는 행동까지 보인다. 외부에 들키지 않는 상태에서 방법을 찾겠다는 강한 의지다.
감독은 이 시퀀스에서 발현되는 모성애 혹은 일그러진 믿음을 현재에만 두지 않는다. 과거 아민의 엄마가 그에게 저질렀던 행위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일어난 증상을 '붉은 바람' 때문이라며 악령이 깃든 것으로 믿었던 엄마는 억지로 물을 먹이면서 익사시킬 뻔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도 환경도 다른 지금, 심지어 의사에 돈도 많고, 종교도 없는 알파의 엄마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니 아민으로서는 '모성애', '믿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부정적 상황에 놓인 알파의 불안은 자신이 실제로 병에 걸렸다고 믿도록 만들고, 실제로 병에 걸린 삼촌 아민과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이전까지 알파에게 그의 존재는 자신도 따르게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두 사람의 극적인 감정적 연결은 알파가 환각을 경험하던 순간 함께 집을 나서고 나서야 시작된다.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장면과 감정이 해방되듯 한번에 터져 나오면서다.
04.
"이번엔 깨우지 마."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엄마의 존재를 중심으로 알파와 아민의 간극은 결코 좁혀지지 못한다. (음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알파와 누나의 설득과 강한 믿음 앞에서도 오래된 밴드로 팔뚝을 묶고 주사기를 꽂으려 애쓰는 아민은 처음부터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알파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남들처럼 병원에서 살다 가긴 싫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깨우지 말라던 삼촌, 이제 막 감정적 연결이 시작된 존재의 유언을 들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엄마의 강력한 저지 앞에서 손쉽게 무너지고 만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병과 관련한 모든 내러티브는 이처럼 병을 추적하는 일이 아닌, 병이 한 인간의 존엄과 관계의 윤리를 어떻게 잠식하고 무너뜨리는지에 훨씬 더 가깝게 다가간다. 자신의 마지막조차 선택하지 못하게 되는 존재(아민)의 마지막은, 언제나 그러했듯 병원에 진열된 베드 위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 된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보살핌일까.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알파와 아민 두 사람을 가둬두었던 엄마의 행동도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게 된다.
▲30th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알파>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5.
영화 <예언자>(2010),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 <트리트 미 라이크 파이어>(2019) 등의 작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온몸의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의 체중 감량과 캐릭터 구축으로 약에 빠진 인물을 스크린 위에 그대로 옮겨다 놓은 배우 타하르 라힘의 신체적 헌신 또한 이 작품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신체성이야 말로, 이 영화가 이미지적으로 구현해 내고자 하는 육체성의 표현 그 자체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 영화 <알파>는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보디 호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정서적 멜로 드라마, 가족 서사의 무게를 훨씬 더 가까이 끌어놓고 있는 작품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과거의 작품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물리적 한계의 파괴가 아닌 감정적 균열로 초점을 이동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도 분명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육체성의 표현을 통해 경계의 파괴를 보여주고 있지만, 낙인이나 배제, 침묵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신체에 남기는 흔적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이 질병과 낙인, 그리고 가족으로 구성된 전체 프레임의 구조를 분명히 더 입체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완성해 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공유하기
주삿바늘로 감염되는 질환... 13세 소녀 몸에 새겨진 '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