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안예은이 '저승할망'에서 전한 따뜻한 위로

[인터뷰] 어린이 음악극 <저승할망> 작곡한 안예은 싱어송라이터

가을의 초입, 서울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 무대 위로 오래된 신화가 걸어 나온다. 제주 무가 '삼승할망본풀이'를 아이들 눈높이로 다시 길어 올린 어린이 음악극 <저승할망>.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은 이번 작품의 작곡가로 참여하며, 신화의 호흡과 아이들의 마음을 잇는 선율을 직조했다.

뮤지컬 작업은 예전부터 항상 바라고 있던 꿈이었다던 그는 2021년 <유진과 유진>에서 첫발을 떼며 무대 음악에 매혹된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알았어요. 내가 이 작업을 정말 즐거워하는구나." 그래서 <저승할망>의 제안을 받았을 때도 주저 없이 기쁜 마음으로 합류했다. 어린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문어의 꿈> 이후, 이번에는 신화라는 울림을 음악극의 언어로 옮기는 도전이다.

대본에서 출발한 음악,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안예은 프로필
안예은 프로필DSP미디어

"뮤지컬에서는 늘 등장인물의 마음에 최대한 이입하면서 대본의 순서대로 작업합니다. 각 캐릭터의 특성이 드러나되, 이야기의 흐름과 호흡을 함께하는 곡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예은은 대본을 가장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았다. 기존 싱어송라이터 작업과 달리, 이번에는 대본이 던지는 이야기와 감정선에 따라 곡을 엮어나갔다. "작업을 하며 저도 자세히 몰랐던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 두 배로 즐거웠습니다."

무대 위의 사운드는 혼합과 조화에 방점이 찍힌다. 제작사 '이야기기획단 시작과끝'은 작품 전체가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색을 갖도록 기획했고, 그래서 전통악기인 가야금과 양금을 건반과 함께 사용했다. 여기에 전통 타악 연주자 변혜경이 합류하면서 국악과 양악이 어우러진 라이브 앙상블이 무대를 이끈다. 가야금(황현선), 건반(오영진), 퍼커션(변혜경)으로 대표되는 편성 위에, 인물의 감정을 따라 안예은의 선율이 얹힌다. "아직 연습실을 직접 참관하진 못했지만, 분명히 멋진 울림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두 소녀의 이야기, 그리고 어린이들을 향한 위로

<저승할망>의 중심에는 두 소녀가 있다. 동해용왕의 외동딸 '외딸아기', 그리고 명진국 딸부잣집의 맏딸 '큰딸아기'. 외딸아기는 배우지 못한 일을 잘 해내려 애쓰는 아이, 큰딸아기는 무엇이든 척척하지만 정작 자기 취향을 모르는 아이다. 두 인물이 친구가 되고, 갈등 끝에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오늘날 어린이들의 고민과 겹쳐진다.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는 '2025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예술지원사업' 선정작이다.

"저도 어릴 때부터, 그리고 서른넷이 된 지금도 실망시키면 안 되고, 뭐든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안예은은 특히 큰딸아기에게 깊이 이입했다. 그래서 큰딸아기의 선율에는 단호함과 흔들림이 동시에 담겼다. 반면 외딸아기의 노래는 서툴고 조심스러우나,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결로 채워졌다.

멜로디는 어린이 관객을 고려해 너무 어렵거나 취향을 많이 타게 만들지 않으려 했다. 작품이 전하려는 '직관적인 희망'에 맞춰,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명료하면서도 곱씹을수록 깊은 선율을 의도했다. 아이들의 귀로 먼저 들어가고, 곧장 마음에 닿는 음악이 되기를 바랐다.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하다. "무엇이든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같은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의 눈에 '못생긴 씨앗'이라도, 각자의 모양대로 피어날 수 있다는 위로. 그래서 이 음악은 어린이만이 아니라 부모 세대, 그리고 어릴 적 자신을 떠올리는 어른들에게도 똑같이 닿는다.

무대와 음악이 만드는 성장의 장면들

 좌측부터 옥황상제 이선호, 큰딸아기 연승아, 외딸아기 서율, 임박사 박두희
좌측부터 옥황상제 이선호, 큰딸아기 연승아, 외딸아기 서율, 임박사 박두희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무대는 음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인 장치와 의상, 병풍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대 이미지가 삶과 죽음, 신과 인간의 경계를 상징한다. 이 무대 위에서 국악과 양악의 라이브 연주가 시간의 결을 만든다. 장면과 장면 사이, 관객의 숨과 인물의 숨이 맞물리는 순간마다 음악은 이야기를 한 걸음 더 이끈다.

외딸아기는 철갑을 타고 긴 시간을 건너 인간 세상에 도착한다. 배운 적 없는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과 서툴음 사이에서 흔들리고, 큰딸아기는 무엇이든 잘하지만 정작 자신을 모르는 혼란 속에 있다. 두 소녀가 친구가 되고, 서로의 마음을 듣는다. 꽃피우기 대결 같은 경쟁 끝에 결국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자신을 발견한다. 음악은 이 여정을 조화의 문장으로 엮는다.

<저승할망>의 음악은 단순히 귀엽거나 가벼운 소품이 아니다. 라이브가 주는 생생함과 전통 현악의 울림은 국악과 양악이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자리이자, 신화와 오늘을 이어주는 통역대다. 그래서 제작 단계에서부터 가야금과 양금을 꼭 넣자고 주문한 것이다. 여기에 전통 타악의 호흡이 더해지며 음악은 장면의 추진력을 얻고, 관객의 몸은 자연스레 박자에 반응한다.

"쉬움과 얕음을 혼동하지 않으려 했어요." 따라 부르기 쉬운 선율이라도 감정의 농도와 이야기의 방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이 노래는 아이들의 입가에 앉았다가 금세 부모의 마음으로 날아간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속도로, 자신만의 씨앗을 피워내도록 이끄는 설득이다.

가을 무대가 열리면, 객석을 채울 어린이들은 각자의 모습으로 두 소녀와 만날 것이다. 외딸아기의 서툼을 닮은 아이, 큰딸아기의 완벽주의를 품은 아이. 그들 사이로 음악이 흐르며, 신화는 동시대의 얼굴을 얻는다.

"누구나 자신만의 씨앗으로 피어날 수 있다." 이 작품이 거듭 전하는 메시지는 음악의 문장과 한몸이다. 안예은의 선율과 라이브 앙상블의 호흡은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였던 모든 어른들에게 그 말을 건넨다. 같은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세계, 서로 다른 씨앗이 제 빛으로 피어나는 정원. <저승할망>의 노래는 그 세계로 가는 길을 가리킨다.

 저승할망 포스터
저승할망 포스터한국문화예술위원회
덧붙이는 글 독보적인 음색과 확고한 스토리텔링으로 매니아 층의 사랑을 받아온 대한민국 대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은 SBS의 에서 준우승으로 대중에게 존재를 알린 이후 발매하는 앨범마다 자신만의 색채와 독창적인 해석을 담아내며 ‘장르가 안예은’ 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드라마·웹툰·서적 OST 등 다양한 분야로 음악 활동의 영역을 확장해 풍성한 디스코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또한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음악을 통해 서사를 풀어내는 독보적인 능력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매해 여름 발표해온 ‘납량특집 시리즈’ 는 올해 여섯 번째 앨범 <지박(地縛)> 으로 이어지며, 이제는 안예은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해당 앨범은 기존 팬층뿐 아니라 ‘공포’ 마니아들에게도 큰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안예은은 한국적 정서와 시적인 가사를 기반으로 한 곡들에서 나아가, 최근에는 오컬트적 색채를 더한 새로운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민속촌의 <심야공포촌> 과의 콜라보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대표곡 으로는 〈상사화〉, 〈홍연〉, 〈창귀〉, 〈출항〉, 〈문어의 꿈〉 등이 있다.
안예은 음악극 싱어송라이터 저승할망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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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