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th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빛 속으로>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3.
"사실은 나 겁이 나서 중간에 포기했어. 그래서 그런지 가끔 이런 기분 들 때마다 그날 진짜 저주에 걸린 건가 싶기도 해. 그때 끝까지 가봤음 좋았을 걸."
선의 굴다리 도전은 그렇게 끝이 났을지 모르지만, 아직 준희의 소원이 하나 남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선이 소원을 처음 말함과 동시에 하나가 된 내러티브의 존재다. 미래의 장면에서 선과 준희는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제시된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준희는 선이 보육원을 퇴소하고 난 뒤에 자신도 굴다리로 가서 소원을 빌었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처음에는 입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고, 서너 번째 만에야 겨우 절반을, 또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마지막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 영화는 분명한 성장담이다. 하지만 두 인물 선과 준희가 거의 모든 플롯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반영(反映)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소원을 공유하고, 굴다리의 체험을 공유하며, 다시 미래의 시간을 공유한다. 여기에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멈춘 선과 꿈을 위해 계속 도전한 준희의 태도적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영화는 이루어지지 못한 선의 꿈을 선명하게 제시했던 것과 달리, 이루어진 준희의 소원은 두 사람의 가족사진 하나로 대신한다. 그리고 우리는 가늠하게 된다. 그의 소원이 진짜 가족의 사진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04.
지금까지 두 가지 장치가 있었다. 초반부에서의 소원과 연결된 구조 하나, 그리고 선의 미래에서 이어진 두 인물의 소원적 반영. 마지막으로 하나가 더 있다. 통장 꾸러미 속에서 과거의 자신이 넣어둔 오디션 공고가 적인 전단물을 확인하는 미래의 선과 관련된 장치다. 이때 미래의 선은 다시 과거의 자신에게로 넘어가 굴다리의 마지막까지 나아가는 선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서 마지막 장치인 이중적 구조가 드러난다. 미래 장면 이전에서 주저앉았던 선과 지금 이 장면에서 마지막까지 나아가는 선의 모습이 레이어를 이루며 겹치는 순간이다.
가장 쉽게 해석하자면, 이 지점은 선의 성장으로 읽을 수 있다. 과거로부터 온 조력자의 도움으로 인한 '포기하지 않는' 미래로의 성장이다. 이 같은 해석 속에서 준희는 일깨우는 존재가 된다. 또 다른 해석 하나는 이 영화를 성장담이 아닌, 이전에 표현했던 반영담으로 읽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두 인물의 가족사진이 중심축이 된다. 선이 처음에는 연기자가 해달라고 소원했으나 막상 굴다리를 모두 지나고 보니 두 사람의 가족이 되어 있는 상태. 마음 깊숙한 곳의 진짜 소원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인 자신과 혼자가 될 준희가 함께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는 것이었다는 방향이다. 그리고 이는 처음부터 가족이 갖고 싶었던 준희의 소원과도 서로 상응하며, 두 소원이 같은 모양이 되는 또 하나의 '반영'이 된다.
▲30th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빛 속으로>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5.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갔는데, 곳곳에 설치된 장치와 여러 겹의 층위로 인해 머리와 마음이 긍정적인 의미로 복잡해지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직접 마주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구조와 편집으로만 완성될 수 있는 플롯이 마치 또 다른 배우가 되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어서다. 소원이 있고, 그 소원을 들어주는 대상이 존재하는 부분이 같다고 해서, 램프 앞에 선 알라딘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이 영화는 그렇게 가볍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이 영화 <빛 속으로>가 꿈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가지지 못한 꿈이 삶의 패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과 단지 하나뿐일 것 같아 보이지만 다음의 꿈이 우리에게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점이다.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결코 단 한 번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두려움과 포기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시도들이 쌓여 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줄 것임을 이 이야기가 분명히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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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