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가 2차 대전의 자장 아래 세워졌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2차 대전은 연합국과 추축국으로 나뉘어 벌인 전쟁이다. 연합국은 영국과 프랑스 등 제국주의의 선봉으로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두었던 나라들이 중심을 이뤘다. 이에 반하는 추축국은 후발 주자들로,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 주축이 됐다.
추축국은 어째서 연합국에 맞섰나. 각자의 이유가 있겠으나 그 근간은 선도 국가들이 만든 체제를 부수고 새로이 세계질서를 재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추축국 세 나라에겐 주목할 만한 공통점이 있었는데, 나치즘과 파시즘, 군국주의라 불리는 새로운 바람이 국가 전체를 사로잡고 있었단 점이겠다. 수많은 분파로 갈라진 봉건세력을 통합해 민족국가 성격의 국가 아래 뭉쳐내는 데 이들 세 나라는 연합국을 이루는 국가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들이 통합을 이뤄냈을 땐 이미 연합국 내 선진국이 전 세계 식민지를 선점한 뒤였다. 후발주자인 이들은 안으로는 통합에 힘쓰고 밖으로는 가열차게 식민쟁투에 참여하려 했다. 나치즘과 파시즘, 군국주의가 그 수단으로 효과를 발휘했다.
추축국이 우세했던 전쟁은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해 미국의 참전을 불러온 걸 계기로 완전히 뒤집힌다. 연합국은 추축국을 격파하고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한다. 나치즘과 파시즘, 군국주의는 인류사의 저편으로 밀려나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민족자결의 이념들이 새롭게 부흥한다. 지난 시대 철학과 사상이 그 기틀을 마련하고, 오늘날 세계 보편이라 부를 만한 인권과 시민권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았다.
▲시구루이스틸컷
매드하우스
칼잡이의 이야기로 역사와 시대를 비판한다
다만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보편적 인권, 또 자유주의와 법치주의, 다원주의 등의 체제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다. 오늘의 세상이 봉건주의와 전체주의를 격파하고 이룩된 것인데 이를 깊이 이해하는 시민이 얼마 되지 않는 듯 느껴지는 건 왜 인가. 이를 오로지 오늘의 시민이 무지한 때문이라 치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봉건주의와 전체주의가 무언지를, 그것이 어떤 부조리를 안고 있는지를, 우리의 문화며 교육이 충실히 다루지 않기 때문이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시구루이>는 내가 아는 한 봉건주의와 전체주의가 가진 폐해를 가장 적확히 짚어낸 작품이다. 나아가 뼈를 깎는 자세로 이를 반성하는 작품이다. 만화가 야마구치 타카유키의 인생작이라 불러도 좋을 작품으로 한 세기 전 활동한 작가 난조 노리오의 연작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모두 15권의 만화로 완성됐다. 성공에 힘입어 매드하우스가 하마사카 히로시를 감독으로 기용해 12부작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그것이 오늘 다룰 애니 <시구루이>다.
때는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쇼군 자리를 차지한 도쿠가와 가문 치하 에도막부가 지배하던 에도시대다. 초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부터 마지막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까지 260여년을 지속한 이 시대 초엽, 그러니까 17세기 초가 시간적 배경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 도쿠가와 타다나가는 당대 쇼군의 친동생으로, 할아버지가 말년을 보낸 슨푸성의 주인으로 지내고 있다. 당대 유력 다이묘이기도 한 그는 불과 28세의 나이에 할복자살을 명받으니, 그 결정적 사유는 무사들로 하여금 진검으로 어전시합을 벌이도록 해 슨푸성을 피로 물들였다는 것이다.
<시구루이>는 도쿠가와 타다나가의 영지에서 벌어지는 무사들의 이야기다. 슨푸성을 거점으로, 오늘의 시즈오카현 일대인 스루가, 도토미, 미카와 지방이 그의 영지였는데, 애니는 이곳에 이와모토 코간이란 전대의 유명한 무사가 도장을 열고 있다는 허구적 설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와모토 코간은 코간류라 불리는 유파의 대가로, 도토미의 중심인 카게가와 성의 영주 휘하에서 검술사범 자리를 얻고 있는 인물이다. 봉록은 300석, 일가를 이룬 검술실력에 비해선 아쉽지만 지역에선 행세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코간은 불만이다. 그의 실력이 고작 도토미 최강쯤이 아니라 믿어서다.
▲시구루이스틸컷
매드하우스
소설에서 만화로, 만화에서 애니로
애니는 코간의 시대가 저물고 도쿠가와 타다나가가 다이묘로 군림하던 때의 이야기다. 코간은 나이든 무사로, 수시로 정신이 나가는 치매증상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일대 최강이라 불리는 그 도장에서 코간의 지위는 확고하다. 사범 우시마타 곤자에몬을 비롯해, 코간류 수제자 유력 후보라 불리는 후지키 겐노스케 등 코간의 제자들이 그를 극진히 모시는 때문이다. 그 정도가 지나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코간의 말을 문자 그대로 지켜내는 모습이 무사도를 넘어 사이비 종교를 보는 듯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야기는 코간의 도장에 젊은 무사 이라코 세이겐이 등장하며 시작한다. 후지키와 함께 작품의 두 주인공이 되는 인물로, 당대 유행했던 소위 도장깨기의 일환으로 도토리 최강이란 코간의 도장에 들어선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후지키 겐노스케를 일거에 제압하며 충격을 던지지만, 우시마타 곤제에몬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만다. 도장 깨기에 실패한 무사는 큰 상처를 남겨 보내는 이 도장의 풍습이 이뤄지려 할 때, 이라코는 도리어 무릎을 꿇고서는 문하에 들기를 청한다. 그렇게 그는 코간류의 제자가 된다.
이야기는 후계자 자리를 두고 이라코와 후지키가 경합하는 과정, 나아가 금기를 범한 이라코가 눈을 잃고 문파에서 내쫓기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코간류의 수제자가 되어 그 이상으로 도약하려던 꿈 높던 무사가 스승과 제 문파에 복수를 하는 과정이 이후를 이룬다. 애니는 잔혹하고 비장한 원작의 매력을 한껏 살려 복수하려는 이와 그를 막아내려는 이들의 사투를 흥미진진하게 다룬다. 연륜 있는 하마사카 히로시가 총감독을, 탁월한 작화능력을 가진 시노 마사노리가 작화감독을 맡아 모두 12회짜리 느낌 있는 TV판 애니로 제작했다. 일본 애니명가 매드하우스 제작으로, 폭력성과 잔인함, 선정성을 원작 그대로 보여줬다.
▲시구루이스틸컷
매드하우스
인간 위에 군림하는 인간, 그 가학과 피학의 문제
<시구루이>는 어째서 봉건과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인가. 그저 두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두 무사의 대결이자, 미쳐버린 스승의 위압에 쩔쩔매는 제자들의 행보를 그렸는데 말이다. 그는 이 작품의 폭압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모토 코간은 그 도장에서 신과 같은 존재다. 애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을 때가 그 반대보다 많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하나뿐인 딸을 수시로 찾아 학대하고, 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제자들에게 무리한 과제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저 제자 중 누가 더 나은지를 알기 위하여 다른 도장의 강자들을 베고 오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한다. 작품 가운데 거듭되는 그의 폭압에도 제자들은 감히 거스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쩌면 제 일생을 망칠 수 있단 걸 알면서도 묵묵히 따른다. 그것이 무사도이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는 듯이. 결정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듯.
흔히 애니 <시구루이>를 고어와 에로적 성격이 강조되는 작품으로 분류한다. 실제로 그러해서, 원작 소설과 만화 모두가 적나라하고 잔인하다. 애니는 그 같은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음향은 물론, 편집으로써 그 같은 특징을 더욱 강화하기까지 한다. 12회 차의 제한된 분량 탓으로, 이야기 상당부분을 덜어내는 대신, 그 분위기를 한층 더하는 것으로 차별화의 지점을 삼는다.
그로부터 드러나는 것은 무엇인가. 고어와 에로의 본질, 즉 가학과 피학성을 부각하는 것이 이 애니의 의도가 된다. 강자가 약자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압과 착취를 <시구루이>는 시종 시청자 앞에 드러낸다. 심지어는 이와모토 코간이 끝판왕이 아니란 건 흥미로운 부분이다. 코간은 고작 300석 봉록을 받는 실패한 무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기를 살던 그는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미끄러지고 만다. 이에야스의 측근의 아들, 혼다 마사즈미와 어렵사리 가진 면담 자리에서였다. 당대 가장 성공한 무인 야규 무네노리의 주선으로 가진 자리였다. 무네노리의 조언에 따라 손가락이 여섯 개인 오른손을 숨긴 것이 마사즈미의 심기를 거스른다. 당대 패권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쪽 손가락도 여섯 개란 것. 그 일로 출셋길이 막혀버렸다 여긴 코간은 일생을 무네노리를 증오하며 살게 된 것이다.
▲시구루이포스터매드하우스
문명과 역사의 폐부를 찌르는 명징한 비판
한 무사의 성공과 실패가 다이묘며 영주들의 눈에 들고 말고에 따라 결정된다. 윗사람이 죽으라면 시늉이 아니라 실제 죽어야 하는 시대다. 그저 유희적 승부에 목검이 아니라 진검으로 나서라 하면 그리해서 죽고 죽여야 하는 무사들의 모습이 거듭 등장한다. 이를 막고자 진언하는 이는 스스로 배를 갈라 그 충심을 보여야 한다. 위와 아래, 선 자리에 따라 인간의 가치와 무게가 달라진다. 작품 내내 강조되는 건 철저한 폭압이다. 코간이 제 제자와 자식에게 그러하듯이, 도토미의 영주와 그 위의 다이묘가 또한 그러하다. 도토미의 영주는 코간을 불러 명검이 잘 드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산 사람을 베어보라 명한다. 다이묘 도쿠가와 타다나가는 일대 무인들을 불러다가 진검으로 무술대회를 열도록 한다. 수많은 이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간다.
요컨대 <시구루이>는 윗사람의 명 하나에 온 인생이 뒤바뀌는 부당함을 내보인다. 고어와 에로란 장르는 이를 부각하는 효과적 수단이 된다. 그 안에 내포된 가학과 폭력성이 그 자체로 주제 의식과 닿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철저히 지위고하로 구분하는 봉건주의가 얼마나 부당한가가 작품 가운데 통렬하게 폭로된다. 그것이 곧 <시구루이>가 천착하는 주제가 된다.
애니가 만화원작의 일부만을 다루는 것이 아쉽다. 생략된 슨푸성 어전시합이야말로, 작품 내내 이어온 복수와 또 다른 복수의 순간을 다이묘의 한마디 말로써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만화의 결말이야말로, 이 작품을 완성시키는 결정적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제하고도 작품은 봉건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명작으로 남았다.
<시구루이>는 그저 일본의 봉건주의, 그에 터 잡은 전체주의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전 세계 모든 문명이 봉건주의를 거쳐 온 현실 가운데, 일본이 아닌 다른 사회의 같은 요소 또한 비판하고 있다. 반상의 구분이 명확하고, 그로부터 수많은 이의 운명이 뒤틀렸던 한반도의 역사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일본의 역사로써 인간의 본성과 인류가 걸어온 길, 나아가 오늘까지 유효한 비판을 해내는 이 작품이 훌륭한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해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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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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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물건처럼 여기는 세상, 진검 무술대회 속 참혹한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