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셰프' 중국 사신, 실제 역사에선 이렇게 무례했다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tvN <폭군의 셰프> 묘사한 존중은 전혀 없어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의 한 장면.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의 한 장면.tvN

퓨전 사극 <폭군의 셰프>에는 조선 정부와 명나라 정부가 일종의 관세 전쟁을 위해 요리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 제6회에서 명나라 사신 우곤(김형묵 분)은 조선 임금인 연희군(이채민 분)에게 조공 공물의 조건을 놓고 양국 화부(伙夫)들의 경합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이에 따라 두 나라 요리사들이 국운을 걸고 시합에 돌입한다.

대개의 경우, 조공은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적이었다. 신하국이 황제국에 조공을 하면 황제국은 반대급부로 회사(回賜)를 했다. 조공관계는 물물교환 형식의 무역에 가까웠다. 황제국이 받기만 하고 답례하지 않으면, 많은 경우에 관계가 단절되거나 악화됐다.

요리 경합에 걸린 국운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유목국가가 황제국인 경우에는 회사가 적거나 거의 없기 일쑤였지만, 명나라 같은 농경국가가 황제국인 경우에는 대개의 경우에 회사가 조공보다 많았다. 농경국가는 강대국일지라도 군사력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무역적자를 보는 방식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했다. 이처럼 조공관계는 쌍방향 무역이었기 때문에, <폭군의 셰프>에서 묘사된 요리 경합이 실제 벌어졌다면 신하국의 조공 물량뿐 아니라 황제국의 회사 물량에도 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폭군의 셰프>에서 요리 경합을 제안한 쪽은 명나라 사신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자국의 요리 수준이 월등하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경합이 열리자, 판도가 달라진다. 명나라 사신은 물론이고 요리사들도 대한민국에서 조선으로 타임슬립한 연지영(임윤아 분)의 실력에 감탄한다.

연지영은 중국이 자랑하는 북경오리(베이징 카오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낸다. 제8회 방영분에서 21세기 기술을 가미해 작품을 완성해낸 연지영은 "명나라의 황실에서 즐겨 먹던 중원의 오래된 요리입니다"라며 "설탕이 뿌려진 노릇한 껍질은 그냥 드시면 되고요. 북경오리롤은 마장에 찍어 드시면 됩니다"라고 소개한다.

명 사신 우곤은 "북경오리? 만들기는 쉬워도 명의 황실 일등 화부가 아니면 바싹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이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요리인데"라며 먹어보기도 전에 연지영의 요리를 폄하한다. 그랬다가 한 점 먹어본 뒤,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감동의 눈물이 떨어진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 예전(禮典) 편에서 사신 접대 문제를 다루는 기회에 조선 음식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불호를 언급했다. <폭군의 셰프>는 명나라가 존재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정약용은 청나라가 존재했던 그 이후 시대에 살았지만,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다룬 내용은 이전 시대부터 축적된 지식에 기반했다. 그래서 조선 음식에 대한 중국인들의 기호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예전 편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조선 음식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요리 경합을 자신 있게 제안하는 <폭군의 셰프>의 명나라 사신처럼,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조선 음식을 낮게 봤다.

중국인들은 특히 조선식 돼지요리에 거부감을 표했다. 정약용은 "돼지고기 같은 음식물은 삶고 익히는 것이 풍속을 달리해,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젓가락을 들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돼지요리를 비롯한 일부 조선 음식에 대한 중국인들의 편견이 광범위하게 존재했음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인들은 조선식 돼지요리에는 손도 대지 않은 반면, 약과에는 젓가락을 갖다 댔다. 그러나 아주 좋아한 것은 아니다. 정약용은 "역시 많이 먹는 음식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조선에 온 중국 사신들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 보니 주로 미음을 찾았다. "(그들이) 오늘날 찾는 것은 단지 미음뿐"이라고 <목민심서>는 말한다. 중국인들은 쌀로 만든 미음뿐 아니라 잣죽이나 깨죽도 부담 없이 먹었다.

또 수정과도 거부감 없이 찾았다. 그래서 정약용은 중국 사신단의 식탁에 수정과와 더불어 미음을 꼭 놓을 것을 추천한다. 미음 대신에 잣죽이나 깨죽을 놓아도 된다고 말한다.

청나라 사신의 실제 태도

<폭군의 셰프>의 중국인들과 달리, 실제의 중국 사신들은 조선 요리에 대한 감동을 표하지 않았다. 이 점은 청나라 사신 백준(栢葰)의 글에서도 확인된다. 정약용이 세상을 떠난 지 8년 뒤인 1844년에 조선을 찾은 이 사신은 이곳의 문화와 풍습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음식에 관한 혹평을 남겼다.

백준의 조선 견문록인 <봉사조선역정일기(奉使朝鮮歷程日記)>를 다룬 이창희 고려대 교수의 논문 '19세기 청나라 사신의 사행(使行) 기록에 나타난 조선의 모습'에 따르면, 백준은 조선 음식은 양만 많고 맛은 수준 이하라는 글을 남겼다. <우리어문연구> 2017년 제58집에 실린 이 논문은 <봉사조선역정일기>에 담긴 백준의 시를 이렇게 번역했다.

고기와 채소, 술과 과일 등 잡다하게 진열하여
둥근 상을 머리 높이 이고 와 엄숙히 대접하네
우습구나! 우리 주방장. 요리 솜씨는 부족해도
많이는 먹을 수 있으니 두 사람의 양이나 되네.

백준이 말한 '우리 주방장'은 그의 식사를 담당한 조선 요리사다. 조선 요리사가 둥근 식탁에 푸짐하게 담아 온 음식을 보고, 솜씨는 부족해도 2인분은 되겠다며 비아냥대는 시를 남겼다. 상대방이 성의껏 대접했음을 인식했으면서도 음식맛을 형편없이 깎아내렸다. 예의나 배려가 전혀 없는 폄하의 글을 남겼던 것이다.

<목민심서>에도 나타나듯이 중국 사신들은 음식맛이 없다는 표시를 했다. 남의 집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속마음을 무례하게 표시했던 것이다. 전성기의 흉노족이나 몽골족의 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됐다면, 그런 식의 내색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 음식을 폄하한 것은 일종의 전략적 행동이었다고 봐야 할 듯하다. 상국의 위세를 과시하고 외교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폭군의 셰프>에 나오는 중국 사신들은 솔직하고 담백한, 실제의 조선-중국 관계에서 드문 사람들이다.
폭군의셰프 북경오리 베이징카오야 조선시대음식 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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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