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한때 한국에서 유달리 인기를 누렸던 감독이다. 일본영화 하면 그의 이름부터 떠올리는 이가 많았을 정도. 대표작 <러브레터>를 필두로,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립반윙클의 신부>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빠지지 않고 수입돼 팬들과 만났다.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이마무라 쇼헤이 등 기라성 같던 전대의 거장이 떠난 자리, 더는 작가가 없다던 일본영화 침체기 가운데서 분투하던 몇 안 되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이와이 슌지는 일본에서보다도 한국에서 유달리 큰 관심을 받았다. 마치 문학계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러하듯이. 때문일까. 일본 영화팬과 만난 자리에서 이와이 슌지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자면 의외란 반응이 돌아올 때도 적잖다. 일본에서와 한국에서의 위상이 상당히 다르다며. 그의 작품이 제 모국에서보다도 상당한 문화적, 감성적 격차를 가진 한국에서 각별한 호응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그 영화가 지닌 독특한 색채를 떠올릴 밖에 없다. <러브레터>와 < 4월 이야기 >가 드러내는 선명하고 강한 감정, 달성되지 못하는 아련함과 이제 막 피어나는 풋풋함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가 빠르게 잃어가는 정서와도 닿아 있기 때문이었을까.
▲피크닉스틸컷
디오시네마
소외된 것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작가
이와이 슌지의 <피크닉>이 17일 재개봉했다. 한국과 일본 간 문화교류가 정상화되고 만들어진 지 10년 만인 2005년 처음 개봉했으니, 무려 20년이 넘게 지나 다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피크닉>의 재개봉은 그저 이 영화 한 편의 수입배급을 뜻하지 않는다. 무려 9번째 재개봉해 올해 초 10만 명이 훌쩍 넘는 관객을 모은 <러브레터>를 필두로, 2025년에만 <4월 이야기>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까지 이와이 슌지의 작품들이 연달아 재개봉했다. 겨울과 봄, 여름에 한 편씩, 이제 가을을 맞아 <피크닉>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봐도 좋겠다.
이 같은 흐름은 이와이 슌지의 재조명이라 봐도 좋겠다. 서울 독립예술영화관 에무시네마가 2023년부터 독자적으로 상영을 지속하고 있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 올 여름 1년8개월 만에 1만 관객을 넘겼단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흥행작이 흔치 않은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이처럼 꾸준한 관심을 받는 작품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쯤이면 작가 이와이 슌지란의 전 작품을 돌아보는 작업이 한국 영화팬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봐도 좋겠다.
▲피크닉스틸컷
디오시네마
일회적이지 않은 관심, 놀랍고 흥미로워
<피크닉>은 이와이 슌지에 대한 관심이 그저 일회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할 주자다. <러브레터>나 < 4월 이야기 > 등에 비해 훨씬 덜 알려진 작품이란 점에서, 또 그 영화세계가 보다 독자적인 색깔을 드러내던 초기 작품이란 점에서 흥행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이 슌지에 대한 관심이 진지하다면, 그의 영화가 오늘의 한국에 유효함을 발하고 있다면, 이번 재개봉을 찾는 관객 또한 꾸준할 테다.
영화는 다분히 매력적이다. 올 여름 재개봉한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와 비슷한 시기 제작된 작품답게, 두 영화 모두에서 엇비슷한 정서가 배어나온다. 낙오하고, 소외된, 흐릿해져가고, 지워진 것들에 대한 애정이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근미래 가상의 일본에서 중국계 이주노동자, 또 불법체류자들의 삶을 펼쳐냈다면, <피크닉>은 정신병동으로 돌입해 그곳에 강제 입원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두 작품 모두 흔히 제도권이라 불리는 사회와 그곳에 안정적으로 속한 이들의 모습은 거의 비춰지지 않는다. 가끔 등장할 때조차 무능하고 무관심하다.
영화의 시작, 코코(치라 분)는 제 부모의 손에 강제로 끌려 정신병원에 들어온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새까만 옷을 걸치고 스스로 검은 날개의 천사라고 여기는 이 요상한 여자를 정신병원은 강압적으로 대한다. 그녀의 붙임머리를 모조리 잡아 떼고 옷까지 벗기는 것이다. 정신병동의 새하얀 환자복은 그녀 본래의 외양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무력하고 무참하기까지 하다.
▲피크닉스틸컷
디오시네마
담 위에 올라 끝도 없이 걸어가며
그러나 주눅 들 그녀가 아니다. 마침 좋은 재료가 있다. 병원에선 매일 일과로 환자들에게 전날 꾼 꿈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한다. 물감은 흔하고, 검정색 물감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그 물감을 이용해 제 환자복을 완전히 검은 색으로 칠한다. 다시 검은 천사가 되는 것이다.
영화는 코코가 다른 환자인 츠무지(아사노 타다노부 분), 사토루(하시즈메 코이치 분)와 함께 독특한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감옥을 연상케 하는 병원의 감시를 피하여 츠무지와 사토루는 종종 정신병동 높은 담 위에 올라가 그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는 했다. 벽 바깥엔 그저 흔한 도로가 있을 뿐이지만, 이들은 그곳이 그저 병원 바깥이라는 이유로 나가서 갈 곳도 없음에도 수시로 담장 위에 오르고는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코코의 눈에 들어오고, 그녀가 담 위에 오른 뒤로, 이들의 취미는 전망과 산책에서 모험으로 바뀐다.
코코는 이들이 단 한 번도 넘어서지 않았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정신병동의 담장이 끝나는 곳, 바로 한 걸음 떨어진 곳에 붙은 다른 담장으로 건너가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 놀랍고 희한하게도, 다른 말로 하자면 영화적 허용으로써 정신병동부터 드높은 담장이 끝도 없이 마주 닿아 있는 동네다. 이들은 담장에서 담장으로 건너가며 아주 먼 곳으로 떠나가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계속된 걸음.
▲피크닉포스터디오시네마
우리 사는 세상 돌아보는
제목인 '피크닉'은 우리말로 소풍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즐기는 나들이다. 코코와 츠무지, 그리고 사토루에게 일상은 전반부에 그려진 정신병원의 폭압과 치료라고는 할 수 없는 학대다. 그를 벗어난 나들이는, 딱히 갈 곳이 없으니 돌아올 것이 확정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그에 대한 저항이 된다. 삶이 터 잡을 곳 없는 숨 막히는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관객은 도리어 이들에게 생기가 더해지는 모습을 마주한다. 삶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들이 삶을 잃어야 했던 이유는 또 어디에 있는가.
<피크닉>의 충격적 결말을 미리 언급하고 싶진 않다. 이와이 슌지의 초기작은 결코 흔한 대중영화의 문법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적이고 독창적이다. 그를 통해 그는 소외된 것들, 사회가 돌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자연스레 부각한다. 이 영화 또한 그렇다. 제도가 왜곡한 본질을 확인하고, 정말로 지켜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가만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또한 얼마 다르지가 않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처지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우리가 주목해 마땅한 귀한 것을 무관심으로써 아무렇지 않게 팽개치고 있지는 않은가. <피크닉>이 전하는 젊은 이와이 슌지의 외침이 꼭 그런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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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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