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게이라고 다르지 않던데요? 덕분에 덜 외로워졌어요"

[인터뷰] 영화 < 3670 > 주연 배우 조유현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들 중 북에서 온 친구들이 몇 있다. 10여 년 넘게 남한에 살지만, 여전히 이곳이 낯설어 적응중이라고 했다. '내 나라'라는 마음이 쉽지 않다는 고백이었다. 성소수자인 친구도 꽤 있다. 결혼이나 출산의 장벽을 두고 아쉬움을 종종 토로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움츠러들지 않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 둘을 연결해 생각해 본 적 없다. 당연히 북한 출신 성소수자가 있을 텐데, 이를 깊게 고민한 적 없다는 점에 스스로 좀 부끄러웠다. 그렇기에 '북에서 온 성소수자'라는 존재를 그려준 박준호 감독의 첫 장편영화 < 3670 >이 특별하고 또 고마웠다.

영화 제목인 '3670'은 서울 종로3가 6번 출구에서 오후 7시에 만나자는 뜻으로 게이 커뮤니티에서 쓰이는 은어다. 마지막 0은 모이는 인원이다. 사람이 많이 모일 수록 0은 1,2,3으로 계속 늘어난다.영화 속 카메라가 쫓는 건 '북한 출신'이자 '성소수자'인 철준(조유현)이다. 그의 남한 사회 적응기를 다루되 쉽게 동정하지 않는다. 두 소수자성에 갇히기보다 보통의 20대 청년으로 살려고 애쓰는 '철준'을 그린다. 생사를 함께한 북향민 친구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쪽' 친구를 만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을 담는다. 영화에는 학창시절과 사회생활 중 어딘가에 속하고 싶지만, 쉽지 않아 경계에서 우물쭈물하던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개인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까. 영화 < 3670 >은 지난 3일 개봉 후 닷새 동안 7500여 명을 모았다. 독립영화 흥행 기준인 1만 명을 가뿐히 넘으며 의미 있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18일 기준)

'올해의 발견' 조유현

 영화 <3670> 스틸컷
영화 <3670> 스틸컷(주)엣나인필름

영화 속 철준을 연기한 신인 배우 조유현은 '올해의 발견'으로 꼽힌다.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청춘이자 남한 청년들의 문화를 익히려 고군분투하는 마음을 때로는 불안한 눈빛으로 때로는 적절한 침묵으로 표현한다. 그가 자라온 배경과 정체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철준을 조유현은 어떻게 이해하며 몰입했을까. 15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에는 퀴어와 북향민이라는 이중 소수자성에 갇혀 철준을 바라봤어요. 제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다 보니까 그렇게 철준을 풀이하면 '전형성'에 갇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돌아보며 철준과 저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했어요. 고등학교 올라갈 때 소위 잘나가는 집단에 잘 보이려고 애쓴 제 모습도 떠올렸고요. 오버해서 까불다가 오히려 소외당한 경험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너무 잘 보이고 싶고, 누굴 만나고 싶고 또 동료가 필요한 때가 있었잖아요. 철준은 그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거죠."

영화를 준비하며 조유현은 지인을 통해 영화 속 철준의 고향인 함경북도 청진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 조유현에게는 낯선 특별하고 특수한 상황을 경험한 친구였지만, 공통점도 많았다. 사업가로서의 자신을 꿈꾸면서도 불안해하는 그처럼 조유현도 스스로를 '평생 연기할 사람'이라고 확신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해하며 위축된 시간이 있었다.

"영화 < 3670 >을 만나기 전까지 조급하고 불안한 시기를 보냈어요. 막연히 불안해할 수만은 없으니 뭔가를 해야겠더라고요. 이왕이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죠. 그렇게 만난 게 수영과 탈춤이에요. 지금은 매일 아침 수영장에 출근해서 학생들 수영을 가르쳐요. 가르친다는 행위가 참 고귀하고 책임감이 있는 거더라고요. 또 강령탈춤보존회에서 탈춤을 연구하며 배우고 있어요. 탈춤은 노래와 춤, 재담이 필요한 마당극이라 관객과의 소통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연기에 도움이 많이 돼요."

인터뷰한 이날도 조유현은 오전에는 수영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오는 10월 강령탈춤보존회의 공연을 위해 연습을 하고 왔다. 거의 매일 저녁 < 3670 >의 GV를 소화하며 영화 속 철준을 소개하는 이 배우는 다음날 오전이면 일반 직장인으로 돌아가 일상을 살고 있었다. 사실 그는 대구에서 대학에 다니던 3학년 때 '배우'를 꿈꾸며 서울로 올라온 이후 10여 년 동안 생계를 위해 여러 직업을 거쳤다. 2023년 4월 KBS <전국노래자랑 – 서울 금천구 편>에서 장려상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물류회사 직원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관에서 일하기도 했고, 촬영 보조로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그러면서도 연기는 꾸준히 했어요. 이번 영화 캐스팅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서울독립영화제2021 배우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에 나가서 본선 진출 24인에 들기도 했고요. 뭔가 좀 될 거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건 없는 것 같아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죠. 그래서 연기학원을 다녔는데요, 거기서 만난 형을 통해 하나씩 나만의 커뮤니티가 생겼어요. 이 지점도 < 3670 >의 철준과 저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철준도 성소수자 친구들과의 커뮤니티를 원했잖아요.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주춤거렸지만, 결국 하나씩 해보며 용기를 냈고요. 저도 그랬어요."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배우 조유현은 자신의 초심이 "영화 < 3670 >에 있다"고 말했다.
배우 조유현은 자신의 초심이 "영화 < 3670 >에 있다"고 말했다. 엣나인필름

꾸준히 버티며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조유현은 철준을 만났다. 그렇게 찍은 첫 장편영화의 반응도 좋다. 백 명 단위였던 SNS 팔로워는 수천 명으로 늘었다. 매일 수많은 DM(direct Message)도 받는데, 영화 덕분에 덜 외롭게 됐다는 고백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은 성소수자라는 당사자성이 있는 분들이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철준이라는 역할을 해줘서 고맙다거나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에요. 한 분의 메시지가 생각나는데, 본인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작은 용기를 낸 게 이 영화를 본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영화에 출연한 용기에 비할 바가 아닐 텐데, (출연을) 결심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셨는데 정말 감사했죠.

그래서 저도 '용기의 크고 작음 보다 (용기를) 냈고 안 냈는지가 중요한 거 아니겠냐. 영화를 찾아봐 주신 것과 제가 출연한 것도 다 같은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감사하다고 했어요. 사실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많은 분에게 의미 있을지 생각도 못했어요. 영화를 다 찍고 상영회를 돌며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배우는 게 더 많아졌어요."

아직 소속사가 없는 조유현의 인터뷰에 동행한 < 3670 > 배급사 엣나인필름 관계자가 곁에서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그는 "관객과의 대화(GV) 때마다 질문이 정말 많이 나온다. 그만큼 관객들이 영화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은 것"이라며 "GV가 끝나고 사인을 받고도 관객들이 쉽게 자리를 안 떠난다. 또, 영화를 여러 번 보는 분들도 많다. 영화가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으며 다뤄서 좋았다는 말도 정말 많이 들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조유현은 아직 철준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영화 속 '영준'(김현목)이 철준의 세계를 확장해 주었듯 그에게 < 3670 >은 배우 인생에 새로운 세계를 안내하고 지평을 넓혀준 계기였다.

"배우 조유현의 초심은 이 영화에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시 중에 '시간이 칼끝 같기를'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저도 그래요. 날카롭게 이 영화의 경험과 시간을 잘 모셔두고 자주 닦아 뾰족하게 두고 싶어요. 동시에 프로배우의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영준 역의 현목배우에게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어떤 작품이든 진심을 다하면서 연기의 보폭을 넓히는 거요. 최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감독님과 현목 배우인데 두 분이 제 스승이에요."

인터뷰 다음날 조유현은 대구의 한 영화관에서 GV 일정이 있었다. 주말인 20일에는 광주로 21일에는 부산으로 향한다. 그는 혹시나 자신의 정체성을 숨겼거나 숨겨야만 했던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 했다. 조유현은 "세상에 여러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겠지만, 사실 어떤 지점을 지나면 특수성보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영화를 통해 함께 그 지점을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3670 조유현 성소수자 북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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