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다른 아이슬란드 요양원, 참 부럽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172]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대상 <발 아래의 땅>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겼다.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UN 기준)가 현실화된 것이다. 노인 인구 증가와 출산율 정체는 선진국병이라고도 불리는 흔한 현상이라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맥킨지 건강연구소(McKinsey Health Institute, MHI)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2040년 전체 인구 가운데 노인 비율이 40퍼센트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보고서 가운데 한국보다 노인 비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한국의 상황은 수치보다 심각하다. 전통적으로 가족이 구성원의 병수발을 감당해온 한국이다. 간호간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가족의 수고가 상당한 역할을 차지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병원 침상 옆 보호자 침대의 존재는 한국이 간병의 역할을 보호자에게 떠넘겨 왔단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 가족이 파괴되고 있다. 1인가구 비율이 30%를 넘어서 전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가족 간의 유대며 끈끈함을 자랑했던 한국이 아닌가. 가족이 떨어져 살며 생활공동체라 보기 힘든 상황이 공공연하다.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인가구만 228만 가구가 넘는다. 전체 가구 10곳 중 1곳은 노인 1인가구란 뜻이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빈곤율 또한 노인 1인가구에 집중된다. 요컨대 기댈 곳 없는 간호간병 절벽이 한국사회에 시시각각 닥쳐오고 있다는 뜻이다.

발 아래의 땅 스틸컷
발 아래의 땅스틸컷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죽음을 맞는 법

노인을 부양하는 건 온 사회의 책임이다. 간호법이 진통 끝에 겨우 통과되긴 했으나 간호간병 체제를 정비하고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개혁은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하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대부분 민간 자본으로 운영한다. 공공 요양병원은 전국 76곳이 전부다. 그마저도 간판만 공립일 뿐, 민간 위탁 운영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지난 정권에서 의사수 증원을 추진하며 의료계와 빚은 갈등은 한국 공공의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수련의가 현장을 떠난 것만으로 응급실 운영이 마비되었을 정도다. 요양병원의 실상도 그와 얼마 다르지 않다.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영예의 국제경쟁부문 대상은 아르사 로카 팬버그의 <발 아래의 땅>에 돌아갔다. 다큐멘터리에 있어 한국 간판이라 해도 좋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다. 매년 전 세계 주목받는 다큐 신작이 이 영화제를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난다. 올해도 다큐만이 해낼 수 있는 시의성 있고 유효한 담론을 내포한 작품이 여럿 선보였다. 그 치열한 경합 가운데 최고로 꼽힌 작품이 바로 <발 아래의 땅>이 되겠다.

<발 아래의 땅>은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위치한 노인 요양원 그룬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노인 요양원은 전 세계 표준이라 할 것이 특별히 없다. 각국의 법과 문화에 따라 그 형태가 제각각이다. 때문에 먼저 아이슬란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발 아래의 땅 스틸컷
발 아래의 땅스틸컷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이토록 정적인, 이토록 감동적인

아이슬란드는 인구수가 40만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의 구 하나 정도가 전 국민이다. 이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수도 레이캬비크에 모여 산다. 노인 인구가 10%를 넘어서 고령사회에 속하지만, 출산률 또한 높아 인구구조는 안정적이란 평을 듣는다. 척박한 섬의 환경에도 화산대로 지열을 통한 재생에너지 생산이 가능하고, 이색적 풍광을 내세운 관광 또한 발달해 경제적으로 풍족하다. 1인당 명목GDP 순위가 매년 전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다. 말하자면 사람은 적은데 부유하다는 뜻이다.

영화는 요양원에 사는 노인들의 일상을 비춘다. 요양원이란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곳이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건강상 문제가 발생해 스스로 생을 꾸려가는 데 부담이 있는 노인들이 택하는 일반적 선택지다. 오늘날엔 집에서보다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는 이가 훨씬 더 많을 정도라고 한다. 그룬트에도 요양원을 택한 이들이 모여 산다.

웅장하게까지 느껴지는 오래된 건축물 안에서 노인들은 저마다의 삶을 꾸려간다. 별다른 기대랄 건 없다. 생은 끝에 다다랐고, 더는 새로운 기대도 꿈도 없는 것이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대체로 일상적인 것들 뿐, 한때는 온 마음을 다했을 일이며 자식, 재산에 대해서도 거의 무관심하게까지 보인다.

발 아래의 땅 대상 수상 포스터
발 아래의 땅대상 수상 포스터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낙엽이 떨어지듯 죽음을 대한다

아날로그 16mm 카메라로 찍은 영상은 요양원 안의 여러 노인을 가까이서 살핀다. 스스로 침구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꽃을 곁에다 두는 이가 있고, 부부가 함께 거주하며 아내에게 붉은 매니큐어를 곱게 발라주는 할아버지도 있다. 침대에서까지 헤드셋을 끼고 누운 노인이 있고, 휠체어에서 음악을 들으며 손을 움짓 거리는 사람도 있다. 조용하고 정적인 모습 가운데 젊은이들보다 훨씬 작고 느린 움직임이 있다. 늙었지만 살아있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몸이 불편해질수록 조금씩 느려지고 작아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직은 살아 있다. 그 마지막을 평안하게 보내도록 하는 것이 그룬트와 같은 요양원의 목적이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다시 겨울로 계절이 바뀌어나가는 동안 이들의 삶은 언제나 제 자리다. 그 일상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시선은 관객으로 하여금 삶이란 무엇인가를, 마침내 오고 말 최후를 어떻게 맞이하려 하는가를 되묻게 한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죽음이 한 명 한 명 그룬트의 구성원들을 데려간다. 영화는 그를 마치 때가 되어 낙엽이 지는 듯 자연스럽게 그린다. 죽음을 그리지만 영화가 말하는 건 삶이던가. 죽음이 있어 완성되는 삶 말이다.

영화가 어떤 강한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 같진 않다. 그러나 별다른 말 없이 찬찬히 노인들의 일상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의외의 반응들을 일으킨다. 관객석에선 흐느끼고 눈물을 참는 이들이 여럿 보인다. 저마다 삶의 의미를, 그 덧없음과 애틋함, 쓸쓸함 따위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 누구는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 부모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마침내 오고 말 저 자신의 죽음까지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포스터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에서의 죽음을 생각하며

<발 아래의 땅>은 한국 입장에선 참 부러운 풍경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 노인들이 요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때문이다. 자유를 빼앗기고, 손발이 침상에 묶이고, 코에 줄을 꿰어 비강식을 투여받고, 요양병원이며 요양원에 들어서자마자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는 괴담 아닌 괴담을 숱하게 듣게 되는 나라다. 그 못잖게 상태가 좋지 않은 이들도 그룬트에선 그처럼 대우받지 않는다. 간호와 간병을 감당하는 인력, 쓰이는 자본, 공공의료의 역할 때문일 테다.

감독 아르사 로카 팬버그는 영화제에 보내온 메시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인 요양원 '그룬트'는 내 영화 작업의 연장선이자 또 다른 삶의 터전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내가 매일 돌보는 분들이어야 한다는 점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우리의 관계는 신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나는 그분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해 왔다. 삶이 서서히 사그라들 때, 우리가 이 생과 어떻게 작별해야 하는가에 관한 윤리적·철학적 질문은 언제나 중요하다. 그리고 죽음 앞에도 분명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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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