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으로 '얼굴' 만든 연상호 감독 "제작비 절감, 회차 압축이 관건"

[인터뷰]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

<얼굴>은 40년 만에 백골 사체로 돌아온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왜곡된 과거와 지워진 얼굴을 찾아가는 아들 임동환(박정민)의 시선을 통해, 아버지 임영규(권해효)의 민낯을 확인하는 영화다. 사회가 애써 지우려던 개인의 얼굴을 하나씩 그려나가는 추적 미스터리 형식을 빌렸다.

연상호 감독은 2018년 구상한 작품으로 본인이 쓰고 그린 그래픽 노블을 바탕으로 한 영화 <얼굴>을 선보였다. 날카로운 사회 비판 메시지를 더해 밀도와 디테일을 살려 완성했다. 2억으로 3주 동안 20여 명의 스태프가 만든 초저예산 작품이 <얼굴>이다.

지난 15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의 시초였던 작품의 구상부터 구체적인 작업 과정을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글이다.

콤팩트한 영화 만들기의 비법

 연상호 감
연상호 감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2018년 원작 <얼굴>의 이야기를 떠올린 계기가 궁금하다.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일종의 자기만족으로 그쳤던 이야기다. 처음에는 대본 형태로 작업했었는데 투자에 실패했다. 영상화가 힘들겠다 싶어 그래픽 노블 형태로 작업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시도는 했었지만 투자 배급처를 모으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내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던 중 <얼굴>과 비슷한 사례를 보고 홀딱 반하게 되었다. 아내가 (투자 배급이 어려우면) 당신이 직접 해보라고 던진 말이 시발점이 되었다. '1억으로 해봐?'라고 생각했다. 제작비가 없어도 만들 수 있지 않겠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 원작을 영화로 옮길 때 중점 둔 각색 방향이 궁금하다.
"이야기를 주제 의식에 압축했고 배우 의견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들어갔다. 정영희가 원작보다 주체적인 인물로 설정되었다. 원작에서는 희생자일 뿐이지만 영화에서는 마지막 순간에도 손등에 흉터를 남긴다. 임영규가 손의 흉터를 연마할 때 생겼다고 말하는데 아예 틀린 말도 아닌. 거다. 흉터가 성공의 이면을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사진을 얻는 과정도 달라졌다. 원작에서는 사진관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얻지만, 영화에서는 백주상이 끝까지 얼굴을 간직한 아이러니를 더해 발전했다. 원작에서는 임동환과 엄마가 닮았다는 대사가 있었는데, 아빠를 닮았다고 수정하면서 시니컬한 분위기를 더했다. 소거한 부분도 있었다. 임동환의 전사였다. 원작에서는 아버지만큼 아들도 수치심 많던 인물이었지만. 리스너의 입장으로 출발하면서 관객과 동일시하기 위해 집중력 있게 수정했다.

1인 2역을 제안했던 박정민 배우가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잘 포착해 주었다. 현재의 아들은 현대적인 인물로써, 과거의 아버지는 시대극의 풍미를 묘하게 잡아 연기해 주었다. 특히 후반부 아버지와 독대하는 부분은 대사 없이 듣기만 했다. 연기가 리액션 위주였지만 감정의 진폭이 정확하게 읽혔다. 세 번째 호흡인데, 작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감독 이상으로 잘 읽는 배우다. 문학적인 훈련이 잘돼있어 대본을 대본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작품의 의도와 가까워질 것을 빨리 파악해 주목해야 할 부분을 잘 드러낸다"

- 1970년대 경제성장으로 이룬 성과주의와 외모 지상주의를 연결한 이유와 결국 얼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말하고자 했던 주제는 무엇인가.
"임영규는 불가능한 미션을 이룬 상징적인 인물이다.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시각적 예술로 성공한 인물이니 정반대의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 임영규의 약점은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어야 했다. 원작 때도 얼굴 공개 질문을 들었지만 (수정하지 않고) 영화도 똑같이 설정한 이유는 극영화와 현실의 다리가 되어 주길 바랐던 마음이다. <얼굴>은 규정짓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규정짓지 않은 얼굴을 목표로 했지만 저는 마치 정영희의 얼굴을 본 유일한 사람인 양 얼굴을 골라야 했다. (웃음) 제가 CG 팀에 주문한 워딩은 '누구의 얼굴도 아니면서 어딘가 존재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시대의 평균 여성의 얼굴에서 여러 버전이 있었고 실제 배우의 얼굴이 아닌 현실에서 있을 법한 얼굴로 골랐다. 또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도 말씀 주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내 얼굴이 나오지 않아 상상력을 제시했기에 어떤 얼굴이냐는 제시해야 했고 그게 중요했다."

- 마음 맞는 배우, 제작진과 콤팩트하게 완성했다고 해도 시대 재현은 예산의 한계가 있었을 텐데.
"1970년대를 떠올렸을 때 공장이나 시장 골목 표현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고민했다. 영화 <피와 뼈>를 보면 기타노 다케시의 어묵 공장이 나오는데 골목 하나가 전부다. 그 장소에서 몇십 년의 서사를 다룬다. 저도 골목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공장 복도는 세팅 시간을 줄이기 위해 비슷한 공장을 찾았고 낮 장면도 다 밤에 찍었다. 다만 막판까지 노력하다가 포기한 게 있다. 백주상과 임영규가 술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가 사실 1970년대 단란 주점이었다. 로케이션 구하기가 어려웠다. 허름한 곳을 찾아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서 CG로 지울 수도 없어, 백주상의 방에서 술 마시는 장면으로 대체했다. 다른 작업 같은 경우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번에는 빠른 포기가 중요했다. (웃음)"

- 약 한 달 동안 20여 명의 소규모 제작진이 꾸린 현장의 장점은 무엇이었나.
"연출부, 제작부도 2명씩이고, 모니터도 작은 거 하나에 의자 하나만 있으면 끝이었다. 한국의 현장은 유례없이 현장 편집이 진행되잖냐. 저희는 현장 편집이랄 게 없었다. 제작진이 많지 않아서 기동성이나 상황 대처력이 오히려 상승했다. 엄청 더운 여름에 촬영하면 한 달 내내 힘들지만 거의 세트촬영이었고, 야외는 2, 3일만 반짝 고생하면 되니까 할 만했다. 신현빈 배우가 고생했다. 손, 어깨 연기를 할 거니 먼저 잡아 달라는 방식을 제안했다. 목소리도 콘셉트를 잡아 연기해 주었다. 카메라는 배우의 얼굴을 잡지 못하니 기본적인 연출 방법도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테이크를 더 가고 싶으면 카메라 앵글을 바꾸면서 진행했다. 기동성이 있다 보니 앵글도 빠르게 바꿀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큰일이다. 이런 형태로 작업해 보니 상업 영화로는 못 돌아갈 것 같은 중독성이 있었다. (웃음) 학교 영화 동아리 활동하는 것처럼 우리끼리 만들어 가는 재미가 커서 그런지 힘든 게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소설 <블랙 인페르노>를 영상으로 옮겨 보고 싶다. 물론 제 돈으로 하지 않으면 힘들겠지만 어쨌든, 계기가 있다면 좋겠다."

제작비 절감의 비법

 연상호 감독
연상호 감독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가장 궁금했던 건 영화를 2억으로 만들고자 했던 이유다.
"과연 재미있는 영화는 무엇인가 고민이 되었다. 큰 아이가 초4인데 유튜브를 많아 본다. 덕분에 저도 몇 편 봤는데 아이들이 왜 빠지는지 알겠더라. 과거 어린이 드라마와 비교해봤다. 재미만 있다면 저예산에 퀄리티가 떨어져도 크게 문제 될 것 없었다. 갑자기 영화감독으로서 위기감이 들었다. (웃음) 무조건 영화는 웰메이드형으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나 싶었다. 영화인들이 콘텐츠 창작자와 '재미'를 두고 경쟁해 보자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재연 드라마처럼 나올까 봐, 걱정이 커졌지만 창피함을 무릅쓰고 시작했다."

- 초저예산의 산출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한국 영화의 배분 시스템이 제작사와 투자사 지분으로 나뉜다. 애초에 저의 제작사가 순수 투자사라서 지분이 크다. 그래서 제작사 지분을 배우와 키 스태프(중요 스태프)와 나누도록 계약했고, 얼마의 수익이 나더라도 배분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급여는 상업 영화 기준 스태프 일당 기준에 맞췄다. 감독급, 배우, 보조 출연자들도 일당이 같았다.

하지만, 이 방향이 옳다고만 볼 수 없다. 이번에는 배우가 작품을 좋아해서 참여했고 해외 선판매가 진행되었으니 다행이지만.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제 인건비 빼고는 20억은 정도는 있어야겠다. 최소 15회차 미만으로 촬영하면서 투자 배급사를 껴야 안정화된 모델이 될 것 같다. 이런 형태에 관심 가질 만큼의 성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한국 영화가 이제는 다른 형태로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까지 왔기 때문에 만약 시스템화된다면 투자 배급사가 관심 둘 것 같다."

- 제작비 절감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나.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이 인건비 같지만 회차가 중요하다. 회차가 많아지면 한 달이 넘어가는데 그러면 민폐가 된다. 회차를 압축하고 공간도 합치면서 현실적인 모델을 구상하게 되었다. 통상 저는 영화를 촬영할 때 50~80회차에 끝내지만. 아시아의 전설적인 영화감독인 '에드워드 양'이나, '구로사와 기요시'도 <얼굴>과 비슷한 회차(감독 왈 12.5회차)에서 영화적 성과가 나왔다. <큐어>도 2주 만에 찍었다고 들었다. 한국 독립 영화 중에 < 3학년 2학기 >나 <세계의 주인>의 아티스트들도 압축적인 예산으로 좋은 퀄리티의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을 쓴다."

- 침체와 위기의 한국 영화, 돌파구는 무엇이라고 보나.
"기획 제작 최종 단계 때 투자 배급사는 호불호를 줄이려고 하지만 결국 마이너스다. 영화란 모난 구석, 뾰족하게 튀어나온 면이 있어야 하는데, 불호를 깎아 내서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면 재미가 없다. 10년째 영화 산업은 모난 구석을 줄여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불호가 강한 것, 모난 구석도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모든 문화가 광적인 팬덤 현상이 추세잖냐. 팬덤은 뾰족한 게 없으면 생겨나지 않는다"

- 위기를 헤쳐나갈 창작자의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하는 편이 좋다는 쪽이다. 영화든, 유튜브든 뭔가를 한다는 게 중요하다. 저도 두려움을 없애는 마음에 책을 써보거나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작품 끝내고 일본 넷플릭스와 작업하게 될 것 같다. 대본과 프로듀서에 도전하게 되었다. 일본이 배경이고 일본 배우가 연기할 대본을 쓰는 작업이다. 겁내기보다 직접 해보는 게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공개되면 한국인이 쓴 일본 배경의 작품을 다들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덧붙여, 제가 여러 차례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 반응 정도면 생각보다 대중성이 좀 있다고 생각해 의미 있는 작업이라 본다. (웃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더무비에도 실립니다.
연상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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