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투키스투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2.
이 작품에서 문제의 중심에 존재하는 것은 '층간'이라는 공간의 물리적 구획이다. 극 중에서는 위층의 해원과 아래층의 민재가 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제시되는 것은 해원의 집 내부의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지만, 그의 집으로부터 층간 소음이 들려온다는 아래층 민재의 항의, 다시 그의 집으로부터 되돌아오는 담배 연기는 두 공간의 하나의 레이어 위로 겹쳐놓는다. 여기에서 우리가 감각하게 되는 것은 물리적 공간이 어떻게 또 다른 공간을 침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그로 인해 관계의 위계와 감정은 또 어떤 방식으로 규정되는지다.
문제의 확인을 위해 위층과 아래층 사이의 공간을 오가는 A/S 기사 동현은 그 경계 위에 선 인물이다. 그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두 공간의 연결자에 가깝다. 실제로 소리로 전달되는 피해는 그의 내려다보는 행위로 그려지고, 냄새로 인해 전달되는 침입은 반대인 올려다보는 시선에 의해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행위에 의해 완성되는 왕복의 동선은 위층과 아래층, 위계와 불편, 관계와 고립처럼 각각의 공간에 고여있는 구조적 문제를 흐르도록 만든다. 다시 말하면, 동현의 존재는, 이 영화 속 '층간'은 서로에게 불편을 남기고 사적인 공간을 침해하는 불편의 의미도 되지만, 서로의 삶이 맞닿는 가능성 역시 내포하도록 만든다.
03.
"아무래도 문제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사실 공기청정기와 와이파이의 충돌, 층간 소음이나 담배 연기, 그리고 이를 둘러싼 항의의 목소리 등 모든 문제는 단절의 의미를 가진 장치에 속한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인물을 하나의 공간에 불러 모으고 서로의 시선을 교차하는 원인이 된다. 처음 해원이 불편을 제기하던 장면에서 동현이 문제의 원인을 추적하다 아래층으로 향하게 되는 장면이나, 민재가 항의하기 위해 윗집으로 찾아오게 되는 순간, 영화는 처음으로 제한적으로나마 이들의 공간을 비추고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민재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는 점은 제시되었지만 싱글맘이라는 사실은 감춰져 있었다거나, 해원이 꽤 오랫동안 그를 주시해 왔다는 것과 같은 부분들이다.
처음에 이야기한 대로, 이들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민재의 옆집에 사는 공시생 남자(양우성 분)가 복도에서 시작된 다툼에 또 한 번 항의하며 개입되고 만다. 이후 모든 인물은 파출소를 찾아 각자의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표면적인 화해에 이르게 되기도 하지만, 온전한 사건의 해결이나 완벽한 화해에 가까워지지는 못한 채로 여백이 남겨진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이 과정에서 서로의 얼굴과 공간이 더 가까워지고 분명하게 인식됐다는 사실이다. 김동은 감독은 바로 이 불완전한 접촉의 순간이야말로 현실의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완전한 해소가 없더라도, 이해는 그 자체로 의미 있으며, 그 이해가 관계를 변화시키는 최소한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미묘하게 연결된 구조와 우연적인 요소들이 개입되어 복잡한 원인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영화 <스투키스투키>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4.
"그리고 저 알 것 같아요. 공기 청정기가 와이파이 흡수한다는 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고요. 근데 생각할수록 이해하기 어려워져요. 이유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테고, 깊숙이 들어갈수록 왜 하필 그렇게 됐는지 모르니까."
공기청정기가 작동하면 와이파이가 약해진다는 황당한 신고를 듣고 해원의 집을 처음 방문한 동현은 인과관계가 없는 걸 굳게 믿고 있는 고객과 같은 분들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담당하게 된 일이니 찾아오긴 했지만, 처음부터 두 가지 사건에 개연성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 역시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경찰에게 걸리던 순간에 회사 트럭을 타고 도주한다. 전자파를 없애준다는 속설을 굳게 믿고 스투키라는 식물을 키우는 해원도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동현의 흡연에 범칙금을 부여하려던 경찰들 역시 같은 장소에 담배를 피우러 나오던 참이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행동양식과 믿음이 있다. 때때로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하고 규칙이나 규범에서 벗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행동하게 되는 것 모두가 여기에 속한다.
영화 <스투키스투키>는 이 자리를 공기청정기와 와이파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시작해 꽤 깊이 있는 시선을 이어 나간다. 결국 이 이야기가 붙잡는 것은 그 믿음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누구나 자신의 확신 속에서 살아가며, 그 확신이 때로는 타인과 부딪히고 충돌하면서도 삶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기청정기와 와이파이, 스투키와 전자파, 금연 구역과 흡연자라는 상징들은 이 부딪힘과 고집을 드러내는 일상의 얼굴들이다. 김동은 감독은 그 얼굴들을 서둘러 화해시키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스크린에 남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관계의 결말이 아니라, 관계가 만들어지는 방식과 그 불완전함 자체를 오래 바라보게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