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은 문희를 통해 엄마에 대한 진짜 마음을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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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과 효리는 조금 특별한 모녀다. 효리의 생모는 지안의 단짝 초롱(금민경). 비혼모로 출산한 초롱과 함께 효리를 키우던 지안은 초롱이 갑작스레 사망하자 효리의 '엄마'가 된다. 지안은 건설 현장 소장으로 일하며 온 힘을 다해 효리를 키워낸다. 지안에겐 의대에 들어간 효리가 마냥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효리는 이런 엄마를 보면 이상하게 배알이 꼬인다. 자꾸만 말이 퉁명스럽게 나오고, 힘든 일이 생기면 오히려 입을 꾹 닫아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효리는 뇌종양 진단을 받고, 삶을 리셋하기 위해 지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골 청해로 여행을 떠난다. 뒤늦게 효리의 소식을 알게 된 지안 역시 청해로 향하고, 이곳에서 지안과 효리는 자신들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변화는 지안이 자신의 엄마에 대한 감정을 수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배우를 꿈꾸던 지안의 엄마 현순(서영희)은 남편이 사망하자, 어린 지안을 홀로 남겨두고, 다른 남자와 베트남으로 떠난다. 지안은 현순을 기다리지만, 결국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렇게 성인이 된 지안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켜켜이 쌓아두지만, 효리를 양육하며 사는 바쁜 일상에서 감정을 마주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다 효리와 함께 청해에 살면서 은퇴한 의학박사 문희(김미경)를 만난다. 섬망증세가 있는 문희는 종종 지안을 딸로 착각하고 말을 건네는데 어느 날 지안은 자신을 딸이라 부르는 문희에게 이렇게 날 것의 감정을 토해낸다.
"우리 엄마 죽었어요. 자기 행복 찾겠다고 딸 혼자 버려두고 다른 남자 따라갔다 사고로 죽었다구요! 떠올리기만 해도 치 떨리는 인간 할머니 덕에 자꾸 떠올라 가지고 나 충분히 괴롭거든요!" (5회)
감정 뒤 진짜 마음을 만나기
이렇게 문희를 통해 엄마에 대한 감정을 마주한 지안은 한동안 문희를 피한다. 하지만, 효리가 갑작스레 쓰려져 입원했을 때 문희의 도움을 받게 되고, 문희가 딸을 먼저 떠나보낸 사연을 알게 된다. 이에 문희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지안은 마침내 감정 뒤 숨어 있던 '진짜 마음'을 만난다.
7회 딸의 유품을 받은 문희는 바닷가에서 위태하게 서 있고, 지안은 사라진 문희를 찾아다니다 이 모습을 목격한다. 지안은 문희를 구하러 가지만, 섬망 증상이 나타난 문희는 지안을 딸로 착각하고 "미안해. 엄마가 몰라서 그랬어. 엄마가 잘못한 거야"라며 마음속 말들을 쏟아낸다. 이에 지안은 마치 자신이 진짜 딸인 것처럼 이렇게 답한다.
"몰라서 그랬다면서. 그럼 이제라도 옆에 있어 주면 되잖아."(7회)
이는 지안이 실제로 엄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죽도록 미워했지만' 실제로는 '함께 있고 싶고 사랑했음'을 지안은 이 말을 내뱉고서야 깨닫는다. 그 후 지안은 한동안 먹먹한 자신의 마음을 마주한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무너져 내린 엄마를 지키기 위해 마음껏 울지도 못했던 스스로를 애도하고, 긴 시간 엄마를 기다리며 지낸 자신을 위해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렇게 감정을 수용하고 해소하며,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면서 지안은 엄마에게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지안이 자신의 엄마에 대한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고,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떠나보낸 이 순간에 효리와의 관계도 변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억눌렀듯, 오직 딸 효리를 위해서만 살았던 지안이 조금씩 '자기 자신'으로 서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엄마의 사정을 알면, 나 자신도 이해하게 된다
▲지안과 효리는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서 서로를 더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tvN
한편, 효리는 이런 엄마를 지켜본다. 그러면서 엄마가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떠난 자신의 엄마와는 반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효리를 붙들어 주려는 그 마음에 대해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운 자신의 감정을 수용한다. 그리고 청해에서 만난 이웃과 친구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면서 엄마에 대한 '진짜 마음'을 알아간다.
효리는 드라마 초반 지안이 청해에 집을 짓고 살자 했을 때 무척 반대한다. 이에 지안의 첫사랑이자 건축가인 정석(류해진)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저 때문에 엄마 인생이 자꾸 바뀌는 게 부담스러워요. 엄마는 엄마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고 늘 제가 먼저였는데 또 이런 선택을 한다니까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하고." (3회)
또한, 청해에서 만난 친구들의 "왜 이렇게 엄마에게 화가 나 있냐"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이 속 마음을 말한다.
"화난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건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화낸 거예요." (5회)
이처럼 효리 역시 엄마 지안에 대해 짜증 나거나 화가 나는 감정이 실은 걱정과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안에게 "아프다는 걸 안 후 가장 무서웠던 건 나만 바라보고 사는 엄마가 내가 죽기라도 하면 그때 어떻게 살지? 나는 그게 가장 무서웠거든" (8회) 이라고 솔직히 말한다. 그러자 지안은 미술 학원에 등록을 한 후 돌아와 등록증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만일에 정말 너한테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엄마는 엄마 인생 살 거야. 나한테 주어진 날들 아주 꽉꽉 채워서 하루하루 열심히 귀하게 살아갈 거야." (8회)
이에 효리는 안도하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찬찬히 고민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지안 역시 정석과 연애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효리 엄마가 아닌 '이지안'의 삶을 살아간다. 동시에 효리의 수술과 회복과정에 함께 하며 더 끈끈한 마음들을 이어간다. 드라마 말미 뇌종양 수술을 받고 회복한 효리는 다시 의대로 돌아가고 지안은 청해에 남기를 선택한다. 각자의 삶을 위해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었지만, 지안-효리 모녀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친밀해 보였다.
나는 사실 두려웠다. 아이가 어릴 때 엄마와 아이는 '공생관계'라 불릴 만큼 밀접하게 얽혀 있지만, 아이가 자라나면서 엄마와 아이는 점차 거리를 만들어간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이 거리가 느껴질 때마다 복잡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더 멀어질 아이와의 거리가 두려웠다. 그런데 지안-효리 모녀를 통해 이 거리가 엄마와 아이의 마음까지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됐다.
지안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까지 투사 돼 서로의 감정이 얽혀 있었을 때 효리와 지안은 편안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안이 이 감정들을 해소하고 엄마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효리와도 편안한 관계가 된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감정을 투사하지 않게 되자 서로를 더욱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
나 역시 이랬으면 좋겠다. 곧 성인이 될 아이의 삶을 힘껏 응원하면서, 나의 삶에도 충실한 그런 엄마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아이와 진심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나의 엄마에 대한 마음들을 들여다봐야겠다. 내 마음에 쌓여있는 나이 엄마에 대한 감정으로부터 편안해질 때 더 좋은 엄마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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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