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 DJ 아흐멧 >은 15살 소년의 이야기다.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북마케도니아에서도 외딴 마을 유룩에 사는 아흐멧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의 집은 이 마을에서도 가난하다. 전 재산이라곤 큰돈을 들여 마련한 양 스무마리, 그리고 오래된 차와 트랙터가 전부다. 양을 키우며 얻은 젖으로 치즈를 만들어 팔아 밥벌이한다. 아내가 죽은 뒤 홀로 두 아이를 책임지는 아버지는 양 스무 마리를 데려온 뒤로 아흐멧에게도 일을 하라고 요구한다.
영화는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공부하던 아흐멧이 집으로 불려 오며 시작된다. 아버지는 이제 때가 됐다고 말한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학업을 그만두고 일을 도우라는 얘기다.
▲DJ 아흐멧스틸컷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시골 마을 15살 양치기 소년
이쯤이면 영화가 아흐멧을 15살로 설정한 이유가 분명해진다. 국제연합(UN) 산하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은 최저고용가능 나이를 만 15세로 규정한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 세계 각국은 국내법으로 15살 이하의 노동을 원천 금지한다. 15세부터 성년 전까지는 연소근로자로서 특별한 보호 아래 노동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즉, 아흐멧은 공식적으로 노동할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부터 생업에 투입된 소년이다. 그것도 제 아버지에 의해.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감당할 수 없는 강행군이다. 매일 아침,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면 바로 머리에 찬 물이 양동이째로 부어진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스무 마리다. 양을 돌보는 일이 수월할 수는 없다. 그 흔한 양치기개 한 마리 없이 아들을 몰아 양을 치라는 게 될 말인가. 그러나 북마케도니아 유룩에서도 가난한 집의 맏아들 아흐멧은 해야만 한다. 그게 장남의 책무니까.
아흐멧에겐 동생이 하나 있다. 아직 어린 동생은 말할 나이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말하지 못한다. 아마도 선천적인 장애는 아닌 듯 보인다. 어머니가 죽은 그날부터였을까.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 듯한 어머니의 죽음이다. 말하지 못하는 아들을 홀로 챙기며 팍팍한 삶을 꾸려가는 일을 아버지라고 반겼으랴. 어찌할 수 없이 감당하는 그의 어깨 또한 갈수록 굽어만 가는 듯 보인다.
▲DJ 아흐멧 스틸컷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별세계서 날아온 어여쁜 소녀
아버지는 매일 아흐멧의 동생을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간다.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도를 알았노라고, 기껏 번 돈을 죄다 들고는 그에게 가는 것이다. 유룩에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 전문의는커녕 일반의 하나조차 대면하기 어려운 낙후된 시골 마을이 아닌가. 하물며 어느 날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고치는 일이야 저기 무당 비스무리한 토박이 치료사에게 가는 게 더 쉬운 선택처럼 보인다. 아버지가 가는 곳도 그런 곳이다.
< DJ 아흐멧 >은 아흐멧의 일상을 비춘다. 매일 아침 아버지는 동생을 차에 태워 치료사가 있는 곳으로 떠나 한나절이 지난 뒤에야 돌아온다. 그동안 집에서 양을 돌보는 게 아흐멧의 일이다. 또래처럼 학교도 가지 못하고 잠시 눈을 떼면 사라질 수 있는 양을 쳐야 한다. 온종일 똑같은 일상이 호기심 많은 열다섯 소년에겐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아흐멧에게 다가온 새로운 세상을 그린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새로움이 찾아든다. 마을 어느 집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있던 열다섯 소녀가 돌아온 것이다. 다름 아닌 결혼 때문이란다. 열다섯에 혼인하는 일이 옛날엔 종종 있었다지만, 이제는 흔하지 않은 세상이다. 조혼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발달을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전쟁에 휩싸인, 또 식민지를 겪는, 종교적 이유로 곳곳에서 이뤄졌던 조혼을 이제는 좀처럼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마케도니아라 해서 다른 것은 아니지만 낙후된 시골에선 아주 없는 일은 아니라고. 마을에서 유달리 예쁜 이 소녀가 아버지 등쌀에 못 이겨 결혼을 앞둔 건 그래서다.
▲DJ 아흐멧스틸컷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아동노동과 조혼, 그를 깨부수는 이야기
독일은 유럽에서도 클럽 문화가 활성화된 곳이라 했다. 최신 전자음악으로 어둑한 공간을 가득 채운 이들이 리듬에 몸을 맡긴다. 그런 곳에 유학을 다녀온 소녀다. 독일에서의 삶과 북마케도니아 시골에서의 삶 사이엔 닮은 것은 적고 다른 것은 많다. 소녀는 도저히 제 앞에 놓인 결혼이란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피하고만 싶다. 그래서 생각한 일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아흐멧과 소녀의 만남은 운명일까. 소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흐멧은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 이상까지도. 흥겨운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와 그를 숨겨 옮길 수 있는 트랙터까지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소녀는 마을의 다른 소녀들을 꼬드겨 축제 무대에 오를 공연을 준비한다. 아버지가 안다면 놀라 뒤집어질 공연을.
< DJ 아흐멧 >은 아동노동과 조혼이라는 지난 시대의 잘못된 풍습을 비판한다. 가부장제와 교조화된 종교가 인간을 옭아매는 모습을 비춘다. 그러나 그 방식은 결코 무겁지가 않다. 최신 전자음악과 댄스를 소재로, 또 가벼운 코미디와 청춘 로맨스물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종교적 이름 아흐멧의 앞에 DJ가 붙은 건 부조화지만 이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아흐멧도 DJ가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만 한다.
어찌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청춘 로맨스다. 소년이 소녀를 마음에 들인다. 음악을 매개로 좀처럼 맺어질 수 없을 듯 보였던 두 사람이 연을 맺는다. 가난한 소년과 부유한 소녀가, 생업의 무게를 진 남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여자를 구한다. < DJ 아흐멧 >은 청춘 로맨스란 익숙한 방식으로 구시대의 악폐습에 대항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해낸다.
스무 마리 양 가운데 잃었던 한 마리 염색한 양의 복귀는 이 영화가 얼마나 스타일리쉬한 작품인지를 보인다. 양치기 소년의 순박한 사랑이야기가 DJ와 전자음악과 맺는 조화가 그러하듯, 흔히 어울리지 않을 듯 보였던 두 가지 다른 모양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순간이 이 영화 안에 담겼다. 잘 만든 음악이 그러하듯, 조율된 다름의 어우러짐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 DJ 아흐멧 >은 그래서 음악적인 영화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포스터JIM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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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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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양치기 소년과 15살에 시집가는 소녀 앞에 흘러나온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