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의 계절이다. 짬을 내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았다. 단 두 편만 볼 수 있는 빠듯한 일정, 첫 영화로 <서바이빙 어스>를 골랐다. 그 제목이 끌려서다.
'Survivng Earth', 직역하자면 '지구에서 살아남기'가 된다. 80억을 돌파한 지구 위 인구수를 생각하면 지구에서 살아남는 게 영화까지 만들 정도로 대단한 일인가 싶어지기도 한다. 살아간다는 건 세상 더없이 흔한 일이 아닌가. 80억 인구나 해내고 있는 일을 구태여 영화로까지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일인가. 그러나 어떤 감독은 지구에서 살아남는 일이 영화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주인공은 블라드(슬라브코 소빈 분)란 이름의 중년 사내다. 영국 브리스틀에 살고 있는 그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 내전을 피해 이주한 난민 출신이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그 명명부터가 절로 마음을 무겁게 한다.
▲서바이빙 어스스틸컷
JIMFF
중동의 화약고, 10년 전쟁의 참극
인간도, 문명도 진보한다는 믿음이 민망하게 2025년 지구는 곳곳에서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나간다. 팔레스타인 말살정책을 펼쳐온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빙자한 학살극을 지속하고 있고, 국경도 맞대지 않은 서아시아 이란과도 드론 등 신무기를 동원해 전쟁을 일으켰다.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에 선 미국은 핵위협 제거를 명분으로, 주권국가를 선제 폭격하는 사태까지 일으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또한 3년 째 지속돼 사망자만 12만 명을 넘겼다. 죽고 다치는 건 군인만이 아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우크라이나 민간인 수십 명이 러시아 폭격에 사망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타진되기도 했다.
시계를 30여 년 전으로 돌려보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한국만 봐도 그렇다. 김영삼 대통령이 '지구촌'과 '세계화'를 외치고, 김대중 대통령은 독립 이후 반세기 간 끊어졌던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외교로 복원했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소련이 해체되며 냉전구도 또한 종식됐다. 세계는 하나가 되고, 전쟁은 끝나 인류 문명은 화합과 평화의 시기로 접어들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시절, 몇 개의 분쟁이 지구 가운데 있었다. 인류는 그를 대 평화의 시대 앞에 놓인 잔불처럼 여겼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그 대표적 사례다.
발칸반도를 흔히들 세계의 화약고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 지역은 작은 소련과 같았다. 발칸반도에 자리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은 오늘날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까지 여섯 나라의 연합체였다. 민족도 문화적 배경도 상이하지만 사상과 이념으로 묶인 공동체로 2차대전 이후 반세기 동안 존속했다. 사회주의를 근간으로 삼되 소련의 확장에 맞서 독자적인 체제를 유지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영웅이라 불러도 좋을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지도력은 스탈린 체제 하의 소련과 구분되는 지역패권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 뒤 여섯 나라의 복잡한 이해관계, 민족과 종교, 문화적 특성을 이유로 분열하는 상황을 막을 이는 없었다. 경제위기가 갈등에 기름을 부으며 작은 차이가 봉합할 수 없는 틈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세르비아주의라 불리는 민족주의정책을 펼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행보는 비세르비아계 국가들의 반발을 불렀다. 연맹의 패권을 쥐고 타자를 주변화하려는 세력과 이에 반발하는 세력의 충돌은 마침내 일부 국가의 탈퇴로 이어졌다. 그리고 시작된 전쟁이 흔히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 불리는 10년여에 걸친 전쟁이다.
▲서바이빙 어스주연 슬라브코 소빈(왼쪽)과 감독 테아 가직.
iMDB
공연은 엎어지고 가족은 갈등하니
영화는 이 전쟁이 남긴 상흔을 비춘다. 영국 서부 항만도시 브리스틀의 블라드는 하모니카 연주자다. 집안 대대로 전해져온 하모니카로, 나면서부터 이를 부는 법을 안다는 게 블라드가 말하는 가문의 내력이다. 제가 나고 자란 발칸의 음악을 애정하는 그다. 망명해온 타국에서도 그는 제 고향의 음악을 연주한다. 아직 영국에서 발칸밴드는 낯선 음악이지만 공연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그 매력을 알려간다.
블라드는 갖 성년이 된 딸 하나를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흑인 여성과의 사이에 낳은 딸이지만, 여자와는 갈라선 지 한참이다. 아마도 그 이유가 되었을 문제도 하나 있다. 블라드는 마약중독자였다. 참고 있을 뿐 중독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다는 게 마약의 무서움이 아닌가. 블라드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마약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실의 어려움이 불거질 때마다 그는 다시 마약을 하고픈 충동에 시달린다. 그 유혹이 너무나 잦다는 게 무엇보다 큰 문제다.
영화는 블라드가 꿈꾸는 밴드의 공연이 거듭 엎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발칸밴드의 음악은 아직 영국인에게 친숙하지 못하다. 인기도 없다. 그래서 다른 밴드의 앞에 공연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헤드라이너는 늘 다른 밴드의 몫이다. 이대로라면 가망이 없어, 블라드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독자적인 길을 걷고자 한다. 발칸밴드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 그곳에 서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포스터JIMFF
한 인간의 파멸에 지구를 가져다 붙인 까닭
일은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다. 의지만 가지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공연장을 빌리는 일부터 모객까지가 하나하나 어려움이다. 밴드 구성원들은 모두 발칸반도에서 망명해온 이주자들이며 약물에 중독됐던 이력까지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로, 벌이 또한 빤하다. 이들이 공연장 대관비를 내고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 연일 거듭된다.
<서바이빙 어스>는 그 결말에 이르러 이야기가 실화임을 전한다. 감독인 테아 가직이 제 아버지의 이야기를 한 편의 극영화로 재구성한 것이다. 극중 등장하는 딸의 모습이 감독 자신이 투영된 캐릭터다. 그녀가 아버지와 맺는 가깝지만 먼 관계, 애정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로부터 태어났다. 있는 그대로 먼 타국으로 망명 온 이들의 상처, 타지에서 삶을 꾸려가는 어려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강한 향수까지를 이 영화가 사실적으로 짚어낸다.
'지구에서 살아남기'란 제목은 그로부터 의미를 확인케 한다. 블라드의 불안정한 상태, 약물에 손을 대고 그로부터 파멸에 이른 상황까지가 결코 그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님을 영화가 보여준다. 딸의 입장에서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던 아버지는, 그러나 보듬어 주고픈 애처로운 사람이다. 내가 그러하듯 그 또한 나약했고, 삶으로부터 감당키 어려운 과제를 받았음을 감독은 이제와 이해한다. 늦었지만 여전히 사랑한다.
고국인 유고슬라비아의 분열과 해체에, 타국에서 마주한 버거운 삶으로부터 피격당한 제 아버지의 마지막을 가직은 '지구에서 살아남기'란 제목 아래 보여준다. 그건 그대로 인간이 간신히 살아남아야 하는 지구의 현실에 대한 저항이 된다. 더없이 강렬한 메시지가 된다. 이토록 개인적인 영화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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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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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하는 조국 떠나 밴드하는 남자, 그의 고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