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맞고 있는 산업적 위기, OTT 서비스가 극장가에 가하는 실체적 위협에도 영화제가 그 어느 때보다 각광받는 오늘이다. 책을 읽는 이도, 사는 이도 줄어만 가는 상황에서 북페어 만큼은 호황을 맞는 기현상이 영화계에서도 일고 있는 게 아니냔 반응과 수시로 맞닥뜨린다. 극장은 사라지고 손익분기점을 넘는 일조차 버거워진 한국영화의 현실 가운데서 영화제의 인기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혹자는 인스타 등 SNS 문화가 축제와 밀접하게 결합한 때문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영화제에 참여하는 것이 남에게 내보일 수 있는 세련된 경험이란 주장이다. 영화제는 그 자체로 컬트문화적 특성을 지역성과 함께 드러내는 축제로, 세련된 문화적 취향을 향유하는 계기이자 즐겁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장이 된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러해서, 이 시대 성공한 영화제는 영화 그 자체만큼이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고민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난립하는 영화제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영화 그 자체가 서기 위한 장은, 그러니까 투자와 제작, 배급의 영역이 갈수록 빈약해지는 현실은 내버려두고서 그저 일회적 축제로서의 영화제만 주목받는 일이 긍정적일 수 없다는 반응이다. 영화제에 걸리는 영화도 그해 제작된 작품 가운데 돌고 도는 것이 대부분이라, 이 영화제에서 본 작품을 다른 영화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단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영화제의 수가 볼 만한 작품 수보다 적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다. 수많은 영화제를 찾다보면 그와 같은 반응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는 의미 있는 행사다. 중앙으로의 쏠림이 가속화되는 2025년 한국에서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 행사인 때문이고, 위기에 처한 영화란 매체의 가능성을 다각도에서 실험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화에 우호적인 이들이 서로의 배경과 직역을 넘어 영화제란 현장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드문 기회란 점에서 그 자체로 소통의 장이 되어준다. 그렇다면 영화제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9월은 한국 영화제가 가장 뜨거운 계절이라 해도 좋다. 자타공인 아시아 최고이자 한국 제일의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달이며, 동시에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전국 각지 수많은 영화제로 관객들이 걸음하는 계절인 덕분이다. 한 풀 꺾인 더위를 뒤로 하고 매력적인 영화제를 찾아 이 시대 영화의 최신 경향을 체감하는 건 멋진 경험이 되어줄 테다.
[하나] 필름성수, 제6회 다양성동(洞) 영화제
▲필름성수포스터
필름성수
하나의 세계, 다양한 삶
인구수 900만 명을 훌쩍 넘는 메가시티 서울이다. 구 하나하나가 각 도를 대표하는 도시 못잖은 경제적, 산업적, 지역적 역량을 자랑한다. 내가 사는 양천구는 인구수가 42만 명을 넘긴다. 경상북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구미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산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울의 구들이 저만의 지역성과 역사성, 문화적 성격을 충실히 드러내고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시민들에게 이를 묻자면 아마도 대부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 않을까 싶다. 서울시민이란 인식은 있어도, 어디어디 구민이라는 인식이며 자부심을 가진 이는 얼마 없는 것이 오늘 서울의 현실인 것이다.
성동구는 이 같은 상황에서 모범적 반례가 될 수 있다. 한때 공장지대였으나 산업이 몰락하고 낙후돼 있던 성수동이 서울의 대표적 문화중심지로 번성한 건 그 자체로 흥미로운 사례다. '붉은 벽돌 지원사업'으로 탄생한 붉은 벽돌 건물들은 성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며 서울에서 건축이 지역 문화적 정체성을 이룬 드문 사례로 자리했다. 미술과 문학, 요식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신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적 중심지로 성동구가 제 입지를 굳건히 했다 해도 틀리지가 않다.
'필름성수'는 재단법인 성동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성동구가 후원하는 문화축제다. 성수아트홀과 메가박스성수, 네이버TV 등에서 다채로운 영화를 행사를 찾은 이들에게 내보이는 창구 역할을 자임한다. 국경과 세대를 넘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포부 그대로, 최신 장편영화부터 독립영화계에서 만들어진 다채로운 단편, 또 해외 작품들까지를 고루 상영한다. 특히 단편영화 공모전 본선 진출작 24편을 두고 대상 수상작을 가리는 경쟁부문까지 있어 영화계에서도 주목하는 행사다.
9월 8일부터 21일까지 경쟁부문 24편의 단편을 네이버TV를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15일부터 21일까지 오프라인 상영도 이어진다. 예매를 통해 전체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필름성수와 다양성동영화제의 분명한 매력이다.
개막작 격인 <카라바조. 영혼과 피>부터, 남미와 유럽, 아시아에서 들여온 다채로운 작품들, 또 한국 지역영화와 독립영화 단편들까지를 포괄하는 상영작 면면을 살펴보자면 영화제의 성격을 뚜렷히 규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부문에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유의미한 행사를 열어가고 있는 성동구가 서울, 나아가 한국 문화예술의 간판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겠다.
[둘] 제17회 디엠지(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17회 디엠지(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포스터
제17회 디엠지(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우리가 살고 싶은 하루
다큐멘터리는 이 시대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주요한 장르다. 현실을 기록해 전하는 다큐가 흔히 영화란 매체의 전부라고까지 받아들여지는 극영화의 맞은편에서 영화란 예술을 지탱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단 사실이 놀라울 때가 있다. 극영화와 언론 사이, 결코 넓지 않은 그 영지를 지탱하며 예술과 사회 모두에서 제 역할이 있음을 증명해가는 다큐와 다큐인의 수고로움이 이를 가능케 했다.
디엠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 영화제다. 다큐를 아끼는 이들이라면 EBS국제다큐영화제, 반짝다큐페스티발과 함께 이 영화제를 필참영화제로 기록해 두는 것이 보통일만큼 확고한 지위를 자랑한다. 과연 그럴 밖에 없는 것이 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143편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한국을 비롯, 전 세계에서 제작된 다큐의 최신 경향과 각 작품이 천착한 사회적 의제에 대한 고민이 깃든 가치 있는 영화인 때문이다. 영화란 매체의 양식으로 사실을 기록하는 다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올해 디엠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찾아봐도 좋겠다.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영화제는 11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 동안 CGV 파주야당과 메가박스 킨텍스 등에서 열린다.
[셋]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포스터
BIFF
30살, 새로운 도약
주목할 만한 영화제가 수두룩하게 열리는 9월이지만 역시 부산국제영화제를 꼽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국 간판영화제이면서도 도전을 거듭하는 부국제에겐 올해가 더욱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경쟁부문을 도입해 아시아 각국 14편의 작품을 선정,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갖추겠단 포부다.
경쟁부문엔 중국의 장률과 비간, 스리랑카의 비묵티 자야 순다라 등 아시아에서 주목받는 감독들의 신작이 포함됐다. 한국에선 한창록과 유재인, 임선애, 이제한 감독의 작품이 들어갔다. 다소 중량감이 떨어진단 평이 없지 않지만, 작품의 면면을 확인한 뒤에야 성패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다.
17일부터 26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 등 7개 극장 31개 스크린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엔 모두 64개국 328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공식초청작만 241편으로, 이중 무려 90편의 작품이 부국제가 월드프리미어, 즉 전 세계 최초 공개 자리다. 부국제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개막작은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로 어느 때보다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메타크리틱 90점을 넘긴 <사운드 오브 폴링>, 지난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콘티넨탈 25'>의 감독이었던 라두 주데의 신작 <드라큘라>,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곰상에 빛나는 화제작 <힌드의 목소리>, 7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그저 사고였을 뿐>, 심사위원대상작 <센티멘탈 밸류>, 감독상 <시크릿 에이전트> 등 국제적 화제작이 두루 포함돼 한국서 이들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첫 창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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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