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 사진
(주)마스트인터내셔널
숙명의 굴레에서 피어난 사랑
한 장면에서 '숙명'을 뜻하는 'ANANKE(아난케)'라는 단어가 벽에 큼지막하게 쓰여있고, 인물들은 숙명을 이야기한다. 흔히 사람들이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들 중 다수는 시대와 사회에 구속된 개인의 한계인 경우가 많다. 에스메랄다를 비롯한 집시들은 사회에서 배제된 이방인이고, 따라서 끊임없이 방랑해야 하는 숙명을 떠안는다.
에스메랄다뿐 아니라 뮤지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시대의 한계를 숙명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인다.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는 기형적인 모습 탓에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숙명을 지녔다. 프롤로는 성직자라는 신분 탓에 누군가를 성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했고, 페뷔스는 결혼을 약속한 여인만을 사랑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콰지모도, 프롤로, 페뷔스는 모두 에스메랄다를 사랑한다. 에스메랄다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숙명, 더 정확히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제약을 거슬러야 한다.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인 콰지모도는 감히 사랑을 꿈꿔야 하고, 프롤로는 스스로 죄악이라고 설파한 사랑을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야 하며, 페뷔스는 결혼을 약속한 이가 아닌 다른 여인을 마음에 품어야 한다.
에스메랄다를 둘러싼 세 인물의 고뇌가 담긴 곡이 바로 '아름답다(Belle)'이다. 뮤지컬에 프랑스에서 초연된 1998년부터 이듬해까지 44주에 걸쳐 프랑스 음반 차트 1위를 기록한 곡이기도 하다. 전무후무한 인기를 누린 곡일 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제약을 거스르려 하는 세 인물의 처절한 내적 갈등이 담긴 곡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숙명을 거스른 대가는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며 '개인이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프롤로는 숙명을 거부하고 사랑을 꿈꾸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끝없이 타락한다. 숙명이라는 이름의 힘은 여전히 강고해서 페뷔스와 에스메랄다의 사랑은 엇갈린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유일하게 아름다운 사랑이 있으니, 에스메랄다를 향한 콰지모도의 사랑이다. 이 사랑을 표현한 곡이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이다. 공연의 마지막 순간에 울려퍼지는 콰지모도의 노래를 들으며 가치와 규범이 격변하는 시대에 이들의 사랑은 어디쯤에 있는지 묻게 된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 사진(주)마스트인터내셔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