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하는 여성 이야기, 이 기획전이 던진 '불쾌한' 질문

[김성호의 씨네만세 1162] KOFA '경계를 감각하라!' 기획전 <인 마이 스킨>

한국 영화팬 사이에서 화제가 된 기획전이 있다. 영화팬의 성지라 불리는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약 보름 간 진행된 '경계를 감각하라!: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의 쾌락과 불쾌, 그 이후(이하 경계를 감각하라)'(8 월 19일~ 9월 3일)전이다. 세기말과 세기초 약 10년 간 프랑스에서 제작된 일군의 영화들에서 발견되는 선명한 흐름,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를 한국 극장서 체감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란 점에서 주목받았다.

기획전에 '경계'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명백하다. 이 기획전이 다루는 것, 또 이를 보기 위해 찾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이 오늘날 영화란 매체의 울타리 안에 여유롭게 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란 매체가 포함하지 못했거나 그 안에 들였다 해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소재들을 기획전에 든 작품들이 내보이고 있다.

때로 그것은 폭력이고, 범죄이며, 인간을 불편하거나 불쾌하게 하는 제 요소이기도 하다. 대중 가운데 상당수가 못마땅해 할 여지가 큰 지난 시대 영화를 이 시대 한국에 소개하는 작업이 의미 있다고 이 기관은 여겼던 것이다. '신체 훼손, 고문, 성폭력 등의 강한 표현이 포함된 작품이 다수 상영'된다며 '감정적·신체적 충격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오니, 관객 여러분의 신중한 관람을 부탁'드린다는 주의문구를 곳곳에 별도로 고지하면서까지. 대체 이와 같은 작품이 주는 미덕이 무엇이기에. 그것이야말로 '경계를 감각하라' 기획전이 던지는 질문일 테다.

인 마이 스킨 스틸컷
인 마이 스킨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20여년 만에 복원된 파격적 작품

모두 12편의 작품이 상영된 가운데서도, 마리나 르 방의 <인 마이 스킨>은 제법 주목받는 화제작이었다. 2002년 제작돼 '피부 깊숙이'란 제목으로 국내 발매되기도 했던 영화는 올해 프랑스 현지에서 4K화질로 복원됐는데, 이번 기획전은 한국에서 복원본을 처음으로 선 보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작품은 북미를 대표하는 장르영화제인 2003년도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제작 당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4K 복원은 물론, 해외 기획전에 초청 상영되는 등 여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무엇이 이 영화를 시간을 건너 살아남는 작품으로 만들었을까.

영화는 에스테르(마리나 드 방 분)라는 여성의 이야기다. 어느 날 파티 형태로 열린 회사 회식 자리에서 어둑한 마당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당하는 게 이야기의 시작이 된다. 영화는 그녀가 술에 취하여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비추는데, 밝은 곳으로 돌아와 살펴보니 이것이 꽤나 심각한 부상인 것이다. 다리 피부가 심각한 수준으로 찢겨 있었는데도 술에 취한 탓인지 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 얼마나 아무렇지 않았는지 에스테르는 그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던 터다. 동료들에게 다친 사실을 말하지 않고서 2차를 가자고 제안한 건 그녀가 상황을 어찌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어찌어찌하여 늦었지만 병원을 찾은 그녀다. 의사는 부상의 정도가 제법 심한 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도 심각한 부상이 가져온 충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할 뿐이다.

인 마이 스킨 스틸컷
인 마이 스킨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스스로 상처를 내는 이유

<인 마이 스킨>이 제 색깔을 드러내는 건 이후부터다. 상처를 입은 다리 부위의 피부는 에스테르가 술이 깨고 나서도 계속 둔감하기만 하다. 감각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참을 만큼 고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인은 크게 다치고도 바로 병원에 가지 않은 그녀를 탓하지만, 에스테르 스스로도 자신이 그런 결정을 한 이유가 무언지를 확신할 수 없다. 그저 그러고 싶었을 뿐이고, 그래도 될 거라 여겼을 뿐이다.

영화는 상처를 다루는 에스테르의 모습을 비춘다. 병원에서 감아준 붕대를 푸는 게 그 시작, 상처를 살피다 급기야는 자해에 가깝게 상처를 다루기까지 한다. 회사에서 마주하는 답답한 일상은 상처를 쥐어뜯고 벌리며 심지어는 새로운 상처를 내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기실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에스테르는 회사에서 꽤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불편한 구석도 적잖은 것이다.

특히 저를 이 회사에 추천해 데려온 친구를 제가 앞질러 나가며 질시를 사고 있다는 건 그녀에게 감당키 어려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가뜩이나 정답 없는 보고서를 쓰고, 동료들과 경쟁해야 하는 게 부담인 상황에서 제 잘못이 아닌 일로 유일한 의지처까지 사라지니 에스테르가 아니라도 마음 고생을 할 밖에 없는 일이다.

인 마이 스킨 스틸컷
인 마이 스킨스틸컷한국영상자료원

비정상성을 부각하는 까닭

영화는 이같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일상 가운데 에스테르가 보이는 이상행동을 부각한다. 이미 난 상처를 헤집고, 제 피부를 찢는 모습을, 급기야 새로운 상처를 내고 그를 감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상한 해방감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그녀가 스스로 상처를 내며 무언가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모습을 영화는 인상적으로 포착한다. 감독이자 주연인 마리나 드 방의 연기가 관객으로 하여금 극중 에스테르가 느끼는 불편한 감상을 그대로 체감토록 한다.

영화는 갈수록 깊어지는 에스테르의 행각에 마땅한 사유를 부여한다. 애인의 눈을 피하여, 또 직장 동료들의 시선에서 저를 감추며 갈수록 심한 자해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가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과 그 자체로 관객을 괴롭게 하는 행위의 조합이 영화 <인 마이 스킨>을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이 된다. 정말이지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이 하지 않는 행위를, 그것이 비정상이라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감행하고는 하는 것이다.

온 몸에 문신을 두르고, 혀나 눈알 등 흔치 않은 곳에 문신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이들이 그로부터 어떤 해방감이며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대중은 그들을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기고 구태여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기 일쑤다. 그러나 이 영화 <인 마이 스킨>은 그에 가까이 다가선다. 지극히 보통의 직장인처럼 보였던 에스테르가 이와 같은 행동을 이어갈 때 그를 긴밀히 따르며 관찰한다. 그 상황의 불편함과 함께, 우리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행위가 어떤 지점에서 불쾌함을 일으키는지를 확인케 하려 든다.

경계를 감각하라 포스터
경계를 감각하라포스터한국영상자료원

경계를 자각하도록 한다

영화가 명확하게 자해의 원인과 신체훼손이 가져오는 문제를 확인케 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 불편함의 정서를 부각해 관객으로 하여금 마주하게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인 듯 보인다. 다만 한편으로, 그 훼손의 이미지를 그대로 화면 위로 드러내지 않고 간접적으로 묘사한다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뉴 프렌치 익스페리미티의 경향을 드러내는 작품군 가운데서는 다분히 안전한 선택으로, 관객이 필요 이상 자해행위 자체의 감각을 마주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불편을 적절히 감각하고 그 근원을 따져보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관심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기획전을 주최한 한국영상자료원은 "몇몇 프랑스 영화가 신체를 다루는 방식은 불쾌하다"며 "이 불쾌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육체, 윤리, 나아가 주체의 경계를 자각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기획전 자체에 대해서 "이번 기획전은 어떤 경향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 틈과 균열에 귀 기울이는 자리에 가깝다"며 "감정의 피로가 짙어지고,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닫혀가는 지금, 이 불쾌한 이미지들은 어떤 윤리와 감각을 요구하는가"하고 관객 앞에 질문을 던졌다. 불편함과 기꺼이 마주하고 정말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자세,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영화예술이 지녀 마땅한, 그러나 돌아보지 못해 잃어가고 있는 미덕은 아닌가. 이번 기획전이 그와 같은 생각에 이르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나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마이스킨 마리나르방 한국영상자료원 KOFA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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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