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구조의 단정한 외형과 달리, 무대 안쪽은 압도적이다. 전면은 15미터와 23미터에 달했고, 위로는 9미터 높이의 천고가 뚫려 있었다
필립리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은평(서울무용창작센터)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대지 1631㎡, 연면적 2963㎡ 규모로 지어진 이 건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용을 위해 설계되었다. 상부에는 텐션 와이어 그리드 시스템이 설치돼 무대를 프로시니엄, 아레나, 런웨이 등으로 즉시 변환할 수 있었고, 최대 256석의 가변형 객석은 작품 성격에 맞게 배열을 바꾸며 관객과 무대의 거리를 자유롭게 조율했다. 천고 9미터의 공간은 무용수의 점프와 회전을 극대화했고, 조명과 음향은 무대 전체를 장악하며 몸짓의 감각을 배가시켰다. 무엇보다도 너도밤나무 소재의 댄스플로어는 무용수의 신체를 지켜주는 안전망이었다. 이곳에서 무용수들은 마음껏 몸을 던질 수 있었고, 관객은 그 몸짓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서울무용창작센터가 개막작으로 <드래곤즈>를 선택한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이 극장이 내세운 비전은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 모든 장르의 몸짓을 아우르는 무대"였다. 안은미컴퍼니의 <드래곤즈>는 그 철학을 가장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었다. 전통과 현대, 고전과 대중, 세대와 국적을 넘나드는 몸짓의 언어이다. 팬데믹 직전 아시아 5개국을 거쳐 진행한 리서치가 녹아든 이 작품은, 국경을 넘어 시대를 건너 결국 '우리 시대의 몸'을 만들어냈다.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 모든 몸짓을 환영하며 다양한 세대와 국적이 함께 춤추는 무대, 서울무용창작센터가 꿈꾸는 미래가 그날 무대 위에 선명히 드러났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 안은미 안무가는 커튼콜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숨이 차오른 목소리였지만 또렷했다.
"무용 전용 공연장이 은평구에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다. 앞으로 전 무용인들이 이곳에서 마음껏 자신의 작품을 펼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곳은 무용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곳이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들이 이곳에 서길 바란다."
관객들은 다시 한 번 환호로 답했다.
뜨거운 감동의 여운 로비에서 계속돼
▲서울무용창작센터의 개막페스티벌을 장식한 <드래곤즈>의 안은미 안무가가 공연을 마치고 로비에서 포즈를 취했다.필립리
공연을 마치고 로비로 내려오자, 열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프로그램북을 손에 든 관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작품 이야기를 나누었고, 젊은 학생들은 안은미 안무가에게 사인을 받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카페에는 늦은 밤까지 웃음과 대화가 이어졌고, 한쪽에서는 무용 서적을 넘기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극장은 지역과 예술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무용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하는 생활공간이었다.
"Every Body, Every One."
밖으로 나오자 외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 위에서 본 몸짓과 그대로 겹쳐졌다. 모든 몸, 모든 사람을 위한 무대. 서울무용창작센터의 첫날이 던진 약속은 분명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무용수의 몸을 지켜내는 댄스플로어, 장르를 자유롭게 담아내는 무대 시스템, 관객과 호흡하는 가변형 객석, 누구에게나 열린 배리어프리 설계. 이곳은 오직 무용을 위해 태어난 집이다. 실제로 지난 4일 개막식에서 서울문화재단은 "레지던시 및 연습실로 운영 중인 '서울무용센터'와 함께 서북권 일대를 무용의 거점 벨트로 형성하여 한국형 K댄스하우스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은미컴퍼니의 <드래곤즈>는 그렇게 무용 전용 공연장에서 첫 불을 밝혔다. 9월 6일 은평구 수색동의 밤하늘에 울려 퍼진 박수와 환호는 단순한 환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100만 무용인의 염원을 담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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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