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더스트 투 더스트>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03.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로부터 케냐로 운반되는 중고 의류가 단순히 땅에 쌓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를 더 제시한다. 엄청난 양의 폐의류가 매립지와 주변 환경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고,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키며, 결과적으로 기후 변화의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세키네 고사이 감독은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쓰레기 더미가 생태계 일부를 파괴하고, 지역의 물순환 체계를 교란하며, 장기적으로 가뭄까지 악화시키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버려진 옷더미를 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의 마지막 모습이 불러오는 환경적 대가를 목격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케냐의 오지 마을에서 드러나는 가뭄의 현실은 영화가 전달하는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 중 하나다. 패션 산업이 만들어낸 대량 생산, 대량 폐기의 구조가 지구적 차원의 환경 위기와 맞물리면서, 그 피해는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향한다. 디자이너 나카자토 유이마가 직접 그 마을들을 방문해 현지 주민들의 삶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기후 위기'라는 추상적 단어를 구체적 현실로 바꿔놓는다. 물이 말라붙은 대지, 농사를 포기한 채 생존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산업의 편리함과 소비의 풍요가 만들어낸 결과임을 드러낸다. 다큐멘터리는 이 모든 현실을 패션이라는 산업의 한복판에서 발생한 윤리적 질문으로 되돌려 놓는다. 소비자의 선택, 산업의 구조, 그리고 기후 위기까지 이어지는 이 복잡한 고리는 결국 우리가 매일 입고 벗는 옷과도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04.
"사실 패션업계는 인간의 물욕을 자극해야 성립할 수 있는 산업이에요."
케냐로부터 돌아온 나카자토 유이마는 자신이 목격한 현실을 단순한 문제의식을 가지는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창작의 실천으로 옮기고자 한다. 파리 패션위크를 불과 84일 앞둔 시점에서, 이미 준비해 두었던 컬렉션을 전면 폐기한 것이다. 기존의 화려한 디자인은 케냐에서 본 현실 앞에서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대신 재활용 섬유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완전히 다른 방식의 컬렉션을 준비하기로 결심한다. 이는 단순히 스타일적인 변화가 아니라, 산업 구조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한 디자이너가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디자인의 틀을 모두 깨뜨리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세밀하게 따라가는 일이 된다. 한 예술가가 사회적 책임을 창작의 언어로 옮기고 실천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나카자토 유이마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세이코 엡슨(Seiko Epson) 사의 원료 재생 방법과 디지털 날염 기술을 활용해 폐의류를 비직물(non-woven) 시트로 변환하는 것이 하나다. 소재를 변환시킨 후에 적합한 형태의 디자인과 제작 방식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가 남는 대신 저품질의 옷을 재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하나는 스파이버(Spiber) 사의 최첨단 바이오 기술을 활용한 섬유를 사용해 지속 가능한 직물을 개발하는 일이다. 마치 술을 빚는 것처럼 미생물로 하여금 단백질을 만들도록 하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 최종적으로 자연 분해가 가능한 직물이 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시도는 단순히 친환경적이라는 차원을 넘어, 대량생산 체계에 대한 대안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에 가깝다. 다양한 소재가 의류 소품에 쓰이는 까닭에 현재로서는 모든 원료를 한 번에 분리할 수 없어 재활용이 어렵고 자원 순환율 또한 낮을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당장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의 자원으로도 삶을 유지하던 아프리카 사막 지대 목축민들의 생활 양식을 떠올려 보면 패션이 과잉의 산업으로만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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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유이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어요. 우리에게 길을 알려줄 디자이너들이 필요합니다. 유이마처럼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여주면 모두 올바른 길을 쉽게 찾아내게 될 겁니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한 나카자토 유이마는 결국 2023년 SS컬렉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폐의류를 새로운 패션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의 도전을 많은 평론가와 동료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영감이 된다. 이처럼 그의 여정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의 호기심이 아닌,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드러내는 활동에 가까워진다. 이는 분명 디자이너 자신이 속한 산업의 어두운 측면, 그 잔해를 직접 목격하고도 고개를 돌리거나 과거에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방향을 바꾸면서까지 변화를 시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무런 말 없이 쓰레기 산, 폐의류 매립지를 바라보는 어느 유망한 디자이너의 모습만으로도 큰 울림은 분명히 있다.
또 하나, 이 작품의 중요한 성취는 예술의 창작성과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이 서로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변화를 시도했다고 해서 나카자토 유이마가 제작한 패션이 환경에 대한 메시지만을 담은 상징물이나 구호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독창성 속에서 여전히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미학을 함께 견지하기에 모두의 관심과 응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걸음을 딛게 되는 예술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또 한 번 의미를 확장한다. 예술과 책임이 서로를 소진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할 수 있는 방향을 향해서다.
디자이너 나카자토 유이마는 말한다. 과거 패션이 사회를 바꾼 역사는 여러 번 있었다고 말이다. 샤넬이 바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이 치마 대신 바지를 입기 시작했던 것도 그 역사 가운데 하나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것이 바로 그때부터라고 한다. 지금 그에게는 또 한 번의 역사가 여기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패션업계의 새로운 변화가 사회를 바꿀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그의 새로운 시도가 패션이 이번에도 그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의 행보를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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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