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불태워》에 나온 체사레 파베세의 사진.
시네마토그래프
<너는 나를 불태워>는 이탈리아 작가 체사레 파베세(1908~1950)의 <레우코와의 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파베세는 미국 문학을 번역하면서 동시에 소설가·시인으로 활동했다. <달과 모닥불>은 전후 사회의 상실을 다뤘고, <레우코와의 대화>(1947)는 신화적 인물들이 나누는 짧은 대화를 통해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탐구했다.
그러나 그는 종전 후에도 좌절과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50년 8월, 로마의 한 호텔 방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머리맡에는 <레우코와의 대화>가 놓여 있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구한다.
됐지? 너무 떠들지 말기를."
이 간결한 문장은 그의 고독을 그대로 담아내는 동시에, 자신과 타인, 세상을 향한 마지막 요청으로 읽힌다.
마티아스 피녜이로는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으로, <로잘린>, <비올라>, <프린세스 오브 프랑스>, <허미아와 헬레나>, <이사벨라>, <시코락스>에 이르는 '셰익스피어 연작'으로 주목받았다. 고전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언어의 리듬과 파편을 이미지로 옮기는 실험을 이어온 것이다.
신작 <너는 나를 불태워>는 셰익스피어 대신 파베세와 사포를 호출해, 언어가 스크린 위에서 타오르고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면 구석에 등장하는 각주는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관객에게 "영화를 읽고 있다"는 감각을 환기시킨다.
"너는 / 나를 / 불태워"라는 문장이 어절 단위로 쪼개져 이미지와 결합할 때, 언어와 영상은 서로 충돌하며 긴장을 만든다. 언어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이미지는 그 불꽃에 휩싸여 변형된다.
사랑은 불태움에서 애태움으로
▲《너는 나를 불태워》의 마지막 장면. "너는 나를 애태워"라는 문장이다.시네마토그래프
이 영화는 아르헨티나, 미국, 그리스,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된 파편적 풍경을 이어 붙여 다국적 감각을 자아낸다. 16mm 필름의 시적 질감은 바다의 흔들림, 햇빛의 번짐, 거품의 소멸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너는 나를 불태워>의 러닝타임은 64분. 줄거리를 좇는 대신 언어와 각주, 이미지의 실험을 이어가기 때문에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영화의 울림이 살아난다. 사포의 시가 파편으로만 전해지듯, 영화 역시 파편적 이미지와 언어로 사랑과 고독을 말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너는 나를 애태워"라는 문장을 남긴다. 불태움으로 시작된 언어가 결국 애태움으로 바뀌어 돌아온다. 불꽃처럼 격렬히 타올랐던 사랑은 마음속에 잔열처럼 남아, 오래도록 가슴을 조이는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너는 나를 불태워>는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언어와 이미지, 신화와 번역이 서로를 불태우며 만들어낸 긴장은 독창적이다. 사포의 파편적 목소리와 파베세의 고독한 생애가 스크린 위에서 만날 때, 관객은 단순한 신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받는다.
불태움과 애태움 사이에서, 우리는 사랑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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