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홈커밍>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03.
이 작품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만으로 유입된 동남아 이주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 대한 이해가 영화 <홈커밍>의 의미가 단순히 중심인물인 렝딩만이 아니라 그의 새로운 공동체가 되는 무에타이 체육관의 태국인 코치, 이주 노동자에게까지도 닿아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어서다.
실제로 이들은 대만 사회의 제조업, 건설, 어업, 돌봄과 같은 기본 산업을 지탱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3년 말 기준 등록 인원만 해도 75만 명대에 이른다는 추정이 있을 정도. 특히 그중에서도 태국 이민 노동자들은 1990년대 대형 건설 수요에 힘입어 많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도적 안팎에서 임금과 언어, 고용 이동 제한과 같은 구조적 장벽이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고 한다. 극 중에 등장하는 샤몽 코치 역시 과거 고국에서 전력 관련 전공을 수료한 뒤 일자리를 얻어 대만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1999년의 일이다. 이후 법이 바뀌면서 이주 노동자에게 더 이상 관련 일이 주어지지 않았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배경을 전제하고 보면, 이 다큐멘터리는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지, 어떤 집단이 선행하는지와 같은 낡은 구도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게 된다. 체육관의 태국인 코치와 동료는 대만 청년 렝딩의 결핍을 일방적으로 채워주는 타자가 아니라 일상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주체로 읽힌다. 양쪽 모두가 서로에게 이탈하지 않을 수 있는 경계가 되어주는 것이다. 사회에서 요리사로서 배울 수 없었던 노동의 규율이 렝딩에게 주어지고, 본업을 바꿔야 할 정도로 이주 노동을 둘러싼 불안정한 현실을 대신할 수 있는 장소가 샤몽에게 그렇게 주어진다.
04.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았고, 지지해 주지 않았어요. 그냥 여기 와서 진짜 힘들게 훈련했죠."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하나 있다. 이 작품의 한가운데 무에타이라는 스포츠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 대상을 결코 스포츠로 정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승패와 기록이 아닌 기술과 관계의 축적, 그리고 문화적 실천의 매개가 될 수 있도록 초점을 고정시킨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장르적으로도 유의미하다.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가 취할 수 있는 클리셰를 자연스럽게 비껴가면서 체득된 문화와 감정을 사회적 연대의 언어로 치환하고 있어서다.
동시에 무에타이는 문화적 교합의 대상이 된다. 태국에서 비롯된 규칙과 규범은 대만이라는 공간과 언어와 함께 뒤섞이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렝딩이 딛고 서 있는 자리다. 자국의 규범으로는 형성되지 않았던 정체성과 의식이 타국과 타자의 기술을 만나며 재배열되고, 이는 다시 자신의 새로운 규범이 된다. 체육관에서 일어나는 것이 기술적 전수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배우는 이와 가르치는 이, 대만 사람과 태국 사람, 청년과 어른의 모든 경계가 훈련과 삶을 함께 나누는 사이 모호해진다. 기존의 스포츠가 아닌 새로운 관계의 문법으로의 확장, 다큐멘터리 <홈커밍>이 보여주고자 하는 무에타이의 진짜 모습이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홈커밍> 스틸컷EBS국제다큐영화제
05.
"모두가 가족이야. 또 하나의 집이지."
후반부에서 렝딩은 지난 6년간 자신이 머물렀던 체육관을 떠나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결심한다. 정체된 발전적 가능성과 고정된 임금이라는 제도적 현실이 이유 중 하나지만, 실질적으로 그 현실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은 공동체가 제공한 자기 효능감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코치 또한 그의 결정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보내주고자 한다.
어쩌면, 바로 이 지점에서 <홈커밍>이라는 타이틀의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 가정은 그저 자신이 태어난 공간, 부모에 의해 선택된 장소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습득된 규율과 규칙, 정체성과 자아는 모두 개인이 가지게 될 하나의 역량으로 자라나게 된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에 만족하지 않으며 내일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근원적 자리가 바로 집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렝딩이라는 인물의 서사가 바로 그 과정에 있다. 비록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궤적을 가지게 되기는 했으나,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그가 받아들이고 성장한 모든 시간이 자신의 새로운 삶을 시험하기 위한 또 하나의 외출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번에는 가출이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시작은 일그러진 가정이 아닌, 바로 여기 체육관에서 이루어졌다.
06.
이 작품에서 사건의 과장이나 인물의 영웅화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대신 작품은 인물의 사소한 일상과 관계와 같은 장면들을 집요하게 기록한다. 그 속에서 관객은 서서히 변하는 청년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리고 평범한 삶의 질감은 사회 전체의 문제로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큐멘터리 <홈커밍>은 그렇게 개인의 성장기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체육관이 이루어낸 수많은 일들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일들은 단순히 한 체육관 내부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집'이란 무엇이며, '함께 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속한 세계를 돌아보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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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